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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Oct 26. 2015

맨땅에 헤딩하라

돌파구 노트

젊었을 때 반드시 맨땅에 헤딩하는 경험을 해보자. 맨땅에 헤딩을 해본 사람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탄탄한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말의 일이다.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돌아와 보니 자동응답기에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지도 교수께서 세계 로봇 축구 대회를 처음 만드시는데, 나에게도 학부팀으로 참여하라는 권유를 하시기 위해서 연락하신 거였다. 로봇의 '로'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가면 꼭 미로 찾기 마이크로 마우스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바로 참여하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고등학교 때 전국과학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던 친구들과 함께 총 네 명이 다시 모여 로봇 축구팀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학교 매점에서 네 명이 모여 첫 미팅을 했다. 네 명 모두 로봇에는 근처도 가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로봇의 바퀴는 구형으로 만들어 전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하고, 공을 감지하기 위해서 로봇은 컬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공을 차기 위해서 킥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그때 당시의 기술과는 전혀 동떨어진 결론을 냈었다.

  

지도 교수님의 배려로 다른 동아리 방의 일부를 공유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동아리 방은 정사각형이었고 네 면의 벽을 따라 책상이 놓여 있었다. 우리 팀 네 명이 처음으로 동아리 방에 갔을 때에는 이미 네 면 중 한 면의 책상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나머지 세 면의 책상에서는 다른 동아리 멤버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멘붕 그 자체였다


동아리 방에 들어간 첫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팀 네 명이 들어가 벽을 따라 놓여 있는 책상에 앉으니 모두 벽만 보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서로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무슨 대화를 나눌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 순간의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멘붕 그 자체였다. 


책상 위에 뭔가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내 컴퓨터를 옮겼다. 그래도 여전히 네 명은 벽만 보고 앉아 있었다. 답을 찾기 위해 먼저 부품 구매를 시도하기로 했고, 날짜를 잡아 네 명이 기차를 타고 서울 청계천으로 갔다. 네 명 모두 청계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디에서 무슨 부품을 사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일단 두 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부품을 사보기로 하고 흩어졌다. 가게마다 다니면서 막무가내로 로봇 축구를 설명하고 그런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부품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가게는 서로 짠 듯이 건성으로 들었고, 잘 모르겠으니 다른 집을 가보라는 말만 하는 것이었다. 정말 막막했다.


드디어 한 가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설명하는 우리도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로봇 축구의 공으로 사용되는 주황색 골프공을 센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아주머니께서 컬러 센서가 있으니 그걸로 공을 찾아내면 된다고 하시면서 부품을 보여주셨다. 크기는 새끼손톱 만했는데 색깔을 센싱 하여 R, G, B 값으로 뽑아준다고 설명해 주셨다. 우리도 무릎을 탁 치며 드디어 실마리가 풀려간다고 생각하고, 들고 간 10만 원 중에서 거금 6만 원을 주고 컬러 센서 하나를 샀다. 그 날 네 명이 하루 종이 발품을 팔아서 산 것은 손톱만 한 컬러 센서 하나였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다음 날 컬러 센서를 들고 동아리 방으로 가서 책상 위 컴퓨터 옆에 컬러 센서를 놓았다. 그리고 우리 네 명은 다시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뿌듯했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우리의 전 재산인 컬러 센서는 분실되면 안 되기 때문에 다음날 빈 명함 케이스를 구해와서 그 안에 넣어 두었다. 아마도 일주일 간은 네 명이 벽 보고 컬러 센서 보고 하는 일을 반복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물론 컬러 센서는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후 임베디드 잡지를 사서 개발용 마이크로 컨트롤러 보드를 하나 구입하면서부터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로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기 시작했고, 실제로 설계와 PCB 제작, 프로그래밍 등을 어떻게 하는지도 하나씩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1월 중순에 동아리 방에 처음 들어와서 5월에 제 1회 국내 대회가 열리기까지 동아리 방에서 먹고 자고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다. 내 평생에 이렇게 제대로 맨땅에 헤딩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국내 대회가 열리는 날 아침 모든 팀들은 대강당에 모여서 마지막 정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팀도 처음으로 로봇 3대를 무선 통신 시스템과 연결하는 시도를 하였다. '우와 성공이다!'를 외치며 우리 네 명은 얼싸안고 좋아했다. 대회를 주관하시는 지도 교수님께서 우리 소리를 듣고 달려오셨다. 축구가 잘 되는지를 물으셨고, 우리는 기쁜 목소리로 드디어 로봇이 무선으로 움직인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우리 팀 로봇의 수준에 실망하셨지만 나는 그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사상 첫 대회였던 만큼 모든 팀들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9개의 참여팀 중에서 단 2개 팀만이 잘 보면 로봇들이 축구를 하는 것 같이 움직였다. 바로 결승전만 하고 첫 국내 대회는 끝이 났다. 


같은 해 11월에 제1회 세계 대회가 열렸다. 첫 국내 대회에서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라지(MIRAGE)라는 이름으로 정식 동아리를 만들고 국제 대회를 위한 로봇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비전 시스템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 축구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로봇 하드웨어는 세계의 어느 팀들보다 견고하게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아 공로상을 받았다. 


미라지(MIRAGE) 축구 로봇


우리 팀이 9:8로 승리하면서 대이변의 신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듬해 6월에 제2회 세계 대회가 열렸고, 우리 팀은 1대 1 경기 종목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4강전에서 만난 MIT 출신의 벤처 기업 뉴튼팀은 1회 대회 때부터 무패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었는데, 우리 팀이 9:8로 승리하면서 대이변의 신화를 만들게 되었다. 

3:3 경기를 위해서는 한 팀에 3대의 로봇이 필요하다


맨땅에 헤딩하며 준비한 1년의 기간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준비한 대학교 4학년 1년간의 시간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지에서 시작하여 완성된 로봇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개발하면서 실력은 어느 누구보다 높아졌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나의 역량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젊었을 때 반드시 맨땅에 헤딩하는 경험을 해보자. 맨땅에 헤딩을 해본 사람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탄탄한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회사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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