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수영 시작한 지 5개월. 이제야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수영 중급반에서 접영까지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맨몸으로는 수영이 잘 되지 않았다. 항상 킥판(수영 배울 때 손으로 잡고 쓰는 스티로폼 판때기)이 있어야 그나마 편하게 수영을 했다. 킥판이 없어도 할 수 있긴 했지만, 킥판이 없으면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고 숨쉬기도 불편해서 금방 지쳐 걸어 다니기 일쑤였다. 특히 자유형과 접영은 더 어려웠다.
하지만 강사님의 한마디에 많은 것이 변했다.
“물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물에 몸을 맡겨라!”
이 한마디에 내 짧은 수영인생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머리로만 말고 몸으로 배워라.
물을 이기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는 이전에도 강사님에게서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지만, 제대로 듣고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몸으로는 따라가지 못했다. 몸으로 이 한마디를 체득하고 보니, 역시 글이나 말로만 배우는 것과 몸과 체험으로 배우는 것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머리로만 이해한 건 아예 배우지 않은 것과 같은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이래서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것과 실무에서 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하는가 보다.
굳이 뜨려고 하면 더 가라앉는다.
힘을 빼고 움직이면 몸은 자연스레 뜨기 마련인데, 굳이 뜨려고 발버둥 치니 더 힘들고 오히려 점점 가라앉는다. 물과 싸우려 하지 말고 물이 나를 돕도록 해야 한다. 몸을 띄우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물에 몸을 맡기니 물이 내 몸을 받쳐주는 느낌이 들면서 물의 흐름에 맞춰 흘러갈 수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물의 흐름에 내 몸이 맞춰 흘러가는 것을 글라이딩이라고 한다. 팔을 한번 돌리고, 발을 한번 찬 후에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물속을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것이 글라이딩의 핵심이다. 이 글라이딩을 제대로 익히면 모든 영법에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힘을 써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오히려 저항을 받는다.
몸이 물과 부딪히는 저항을 최소화해야 오히려 속도가 나고 힘도 덜 든다. 팔을 돌리는 동작에서도 최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게 손날로 입수가 돼야지 손바닥으로 수면을 치면 안 된다. 저항 때문에 속도가 줄고 힘도 더 든다. 고개도 수면 위로 지나치게 들지 말고 물에 맡기듯 충분히 잠기도록 해야 오히려 저항을 덜 받고 숨쉬기도 편하다.
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편안해지면, 물은 이제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게 된다. 숨을 쉴 수 없게 코를 막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저항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내 몸을 띄워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존재로 변한다. 이렇게 물이 편안한 대상이 될 때, 수영은 더 이상 어렵지 않고 즐거운 운동이 된다.
세상만사도 이런 게 아닐까.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지나치게 발버둥 치다 보면 오히려 가라앉게 되니, 인생에서도 세월의 흐름, 상황의 변화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된다. 이렇게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인생을 더 매끄럽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수영을 통해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