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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탈출 Oct 30. 2018

내 안의 괴물

악의 평범성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각종 살인 사건, 강력 범죄 뉴스들을 보며, 몇 년 전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서 ‘몬스터’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겹쳐진다. 


 에피소드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마을에 연쇄 살인이 발생했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십 대 소년이다. 자기 마음을 고백했다가 거절한 여자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또 다른 유부녀(주인공 주부 중 한 명)에게 마음을 고백했다가 역시 거절당하고 또다시 우발적으로 그 딸을 그 유부녀로 오해하고 목을 조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까지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쳐 죽게 하고 시신을 유기하기에 이른다. 단순히 이 사건들만 보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일 뿐이지만 드라마 후반에는 묘한 반전이 펼쳐진다. 소년이 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아빠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자신을 정서적으로 학대한다. 동네 아줌마들(드라마의 주인공 주부들)마저 하나씩 마음에 상처를 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타인이 가하는 말의 폭력과 상처 속에서 소년은 점점 비뚤어지고, 결국 극도의 분노,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인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소년은 후회하며 울지만, 한번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은 점점  쉬워진다. 소년은 점점 그렇게 괴물이 되어간다. 

 이 에피소드는 ‘괴물은 다른 괴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라는 멘트로 끝이 난다. 


 또 다른 미드 <브레이킹 배드>에서는 고등학교 화학교사인 주인공이 마약왕으로 변신하며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아내는 늦둥이를 임신하고, 첫째 아들은 소아마비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대출은 여전히 갚아나가야 하고, 세차장 아르바이트 일도 못돼 먹은 사장의 갑질로 고달프다. 학교에서는 막돼먹은 아이들의 무시와 말썽으로 선생 노릇을 계속해야 하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다 우연히 마약단속 수사관인 동서의 체포 작전을 우연히 따라갔다가 마약 제조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너무 허술해 보이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현장을 보고 자신의 화학 지식으로 꽤 괜찮은 수준의 마약을 제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게 잠시 가졌던 생각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을 넘어 유럽에까지 악명을 떨치는 마약왕 되어 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 에피소드들은 점점 폭력과 피칠갑의 강도를 더해가며 아주 흥미롭게, 때로는 병맛스럽게, 하지만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며 그려진다.

 극 초반에는 평범하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한 화학교사가 마약왕이 되는 과정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여기서의 이해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정도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충분히 그런 결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괴물을 한 마리쯤 품고 살아간다. 그 괴물을 얼마나 잘 통제하고 조련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그 괴물이 불시에 뛰쳐나와 난동을 부릴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더구나 내가 처한 상황이나 타인의 부추김으로 괴물이 풀려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간신히 이해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렇게 말한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악은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언제든 뛰쳐나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의 내면에서 괴물 끌어내기를 부추기는 오늘날, 더 조심해야 할 것은 내 안의 괴물만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 안의 괴물을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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