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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탈출 Nov 02. 2018

기적의 신 vs 질서의 신

과학이 말하는 신과 종교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의 책 <초공간> 말미에 과학과 종교에 대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인데, 과학 전도사의 명성에 걸맞은 쉽고 명쾌한 설명이다.


신의 의미를 두 가지로 분류할 것을 권하고 싶다. ‘기적을 일으키는 신(기적의 신)’과 ‘질서를 창조하는 신(질서의 신)’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신은 주로 질서의 신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주로 ‘기적의 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자와 성직자(또는 일반 대중)가 신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면 의견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다. 각자 머릿속에서 다른 의미의 신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의 신은 기적을 행하고, 타락한 도시를 파괴하고 적군을 쳐부수고, 파라오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고, 순수하고 고결한 사람들을 위해 잔인한 복수를 서슴지 않는다.


과학자와 성직자(또는 일반 대중)가 종교적 문제에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저마다 완전히 다른 의미의 신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과학은 재현 가능한 관측 결과에 기초한 학문인 반면, 기적은 발생빈도가 너무 낮아서 재현이 불가능하다(재현 가능한 것을 기적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기적은 평생을 통틀어 기껏해야 한 번 정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기적의 신은 과학적 탐구 대상이 아니다. 나는 지금 기적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학의 영역 바깥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종교가 원시 종족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간 이유는 종교를 수용한 종족이 진화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지능이 높아지면서 우두머리의 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지능이 높으면 매사를 논리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런 능력은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해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개인의 지능을 제어하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으면 이탈자가 생기면서 집단이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진 개인은 생존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종족의 결속이 위태로울 때에는 지적능력을 접어두고 규율을 따르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즉 신화를 보유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점점 똑똑해지는 원시인류를 제어하고 결속시키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기적의 신은 신화를 통해 우주에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을 설명해준다. 질서의 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에게는 기적의 신이 질서의 신보다 훨씬 위대하다.

-미치오 카쿠 <초공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종종 언급하는 ‘신'은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과는 엄연히 다르다. 인간의 생각이 투영된 수염 기른, 자애로운 (때로는 분노와 질투에 넘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과학자들에게 신은 만물의 운행 법칙을 관장하는 존재다. 차라리 우주를 아우르는 법칙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런 면에서 미치오 카쿠가 말한 대로 ‘기적의 신’과 ‘질서의 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아주 적절하다.


인류는 수십만 년 진화과정의 대부분을 ‘기적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았다. 불과 지난 몇백 년 동안에 간신히 자연의 질서를 일부나마 파악하고 우주의 비밀을 아주 살짝 들춰보는 단계에 와있다. 하지만 종교가 말하는 순진한 신화와 날조된 기적, 꽉 막힌 교리로는 이 세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앞으로 인류 문명의 최선봉은 과학과 이성이 이끌 것이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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