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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탈출 Apr 22. 2019

행복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일까?

행복과 불행은 둘이 아니다


삶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행복’이라는 답이 유일한 모범답안처럼 된 지 오래다.
방송, SNS, 책, 등등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행복만이 인류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지상과제가 된 듯하다.

하지만 과연 행복이 절대적인 인생의 목표이고 의미일까?

금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켄 윌버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과 관련짓지 않고는 결코 쾌락을 인식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주 편안하고 즐겁다고 느끼더라도, 불편함과 고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결코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쾌락과 고통이 번갈아 교차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쾌락과 고통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둘의 상호대비와 교차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세기에 걸쳐 긍정적인 것은 강조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해온 결과로서 인류가 더 행복하고, 더 만족스럽고, 더 평화롭게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훨씬 더 많다.”
- 켄 윌버 <무경계>



잘 생각해 보면 행복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도 있다. 마치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행복만을 바라지만, 삶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불행과 고통도 함께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게 현실이다. 행복만을 느끼며 살 수는 없다. 삶도 죽음이 있기에 삶이고, 죽음이 없다면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듯이.

매일 행복하게만 지낼 수 있을까? 매 순간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 오히려 때로 느껴지는 불만과 고통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행복감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매 순간 즐겁고 기분 좋을 수는 없다. 때로 느껴지는 괴로움, 불쾌감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만 한다.

그럼 삶의 목표가 행복이 아닌 불행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행과 고통을 피하고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행불행이 완벽히 나눠진 것이 아니란 뜻이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 고통과 즐거움, 쾌락과 불쾌…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이런 목록은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행복한 개와 불행한 개가 따로 없듯, 만족한 고양이와 불만에 찬 고양이도 없다. 착한 나무와 못된 나무가 있지도 않고, 윤리적인 꽃과 비윤리적인 꽃도 따로 없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불행의 반대가 아니다. 행복과 불행은 하나다. 인간의 관념이 둘을 따로 생각할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가 둘을 규정하면서 우리의 생각까지 여기에 길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보이는 걸요?’라고 한다면, 항상 행복한 사람은 없으며, 지금 행복한 사람은 불행해질 것이고, 지금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 질지도 모른다, 고 답할 수 있다. 사실 행불행을 따로 떼어서 말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둘은 하나다. 아니 본래 둘이 아니므로 하나라고 할 필요 조차 없다.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다. 행불행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행불행, 하루 중 순간순간 변하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행복한 순간을 순수하게 기쁜 맘으로 즐기되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으며, 불행한 시기를 묵묵히 견디되 결국 지나갈 것임을 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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