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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탈출 May 24. 2019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을까?

과학적 사고가 중요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점술가의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가고, 사이비 교주의 꾐에 빠진다. 사후 세계를 체험했다는 이야기에 감동하고 초능력자의 신기한 능력에 열광한다.
 왜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쉽게 믿을까?



  1. 위안이 된다


 마이클 셔머가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렇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바로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느낌이 좋다, 편안하다,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셔머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듯한 ‘크레도 콘솔란스 Credo Consolans’라는 말을 쓰는데 그 의미가 곧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라는 뜻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믿는다. 사람들의 이런 본성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교가 번성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된다.



 2.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이런 이상한 것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점을 볼 때 불안한 사람에게 안심이 되거나 희망을 주는 점괘를 말하는 경우, 사이비 교주가 헌금을 바치면 곱절로 돌아온다고 말하는 경우가 딱 그렇다.

셔머는 점쟁이들의 수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점쟁이들은 대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연애에서 무언가 긴장감이 감지됩니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매달리는군요’
‘당신의 직업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재정적 압박이 있군요’
이런 식의 진부한 말들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혹 헛짚기라도 하면, 심령술사는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심령술사는 가끔씩만 맞히면 된다. 사람들은 심령술사가 못 맞힌 건 잊어버리고 맞힌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며, 가장 중요한 건 심령술사 말이 맞기를 그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3. 단순하다


 이상한 이야기들은 아주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상살이를 단순하게 설명해준다. 단순한 만큼 쉽게 끌린다. 점쟁이는 고달픈 삶에 대한 설명을 ‘올해 액운이 끼었다’라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부적’으로 손쉽게 해결해 준다. 사이비 교주는 ‘신이 주신 단련의 기회다’라고 설명하고 ‘기도와 헌금’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예를 봐도 그렇다.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생물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하지만 창조론은 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믿기만 하면 된다.



 4. 각개격파


 셔머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허황된 믿음의 사례들을 하나씩 각개 격파해 나간다. 임사체험, 외계인 조우, 창조론 등등에 대한 사례, 현황과 역사, 그에 대한 반박을 아주 디테일하게 서술한다.

먼저 임사체험에 대해서는 뇌의 착각일 뿐임을 명확히 한다.


“임사 체험 동안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들이 기억되어 시각 이미지로 전환되고, 그다음 다시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근거로 체험하는 사람의 종교에 따라 임사체험 중에 만나는 대상이 달라지고(기독교인은 하나님, 불교도는 부처님을 만나는 식), 신체에 투여된 약물이나 마취제가 환각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언급한다. 임사체험 중에 흔히 경험하는 유체이탈에 대해서도 뇌가 청각으로 받아들인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사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시각화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창조론에 대해서는 굉장히 전투적으로 서술한다.


“창조론의 바탕에 깔린 가정들은 진화생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에 대해 양면 공격을 가하고 있다. 첫째, 만일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불과 만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주론, 천문학, 물리학, 화학, 지질학, 고생물학, 고인류학, 초기 인류의 역사가 모두 무효가 되어 버린다. 둘째,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해서 한 가지 종만이라도 창조했다고 인정하는 즉시, 자연법칙들은 물론 자연의 운행에 관한 추론들이 모두 공허해져 버린다. 어느 쪽이 되었든, 모든 과학이 무의미해진다.”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과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으로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야 누가 뭐라 않지만, 창조론을 교과서에 싣고 공식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창조=과학’이라는 주장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각종 사례들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이런 허황된 믿음을 반박하는 논리가 통쾌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읽는 내내 인간은 참 어리석고 나약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이런 이상한 믿음을 갖고 오랫동안 살았었고 앞으로 또 빠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물론 이런 나쁜 믿음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인간의 이런 쉽게 믿는 본성은 수십만 년 진화의 결과, 즉 본능에 가까운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이 말이 더 와 닿는다.


“내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 온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통탄하기 위해서도, 모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 스피노자


이런 부정적으로 치우친 본능을 이성으로 이겨내며 합리적,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개개인의 노력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과학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도구 중 하나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 참모습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의 과학은 모두 원시적이고 유치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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