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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May 04. 2023

죽기 좋은 날

은 아직 오지 않았어

죽음「명사」 죽는 일.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늘도 상가(喪家)엘 다녀왔다. 내 나이가 드는 것도 서러운데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만난 늙어버린 엄마 아빠께 괜한 어깃장을 놓았다. 영정사진은 뭘로 해드릴까,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 생각해 보셨냐, 단 돈 천 원 가지고도 분란이 생길 수 있는 게 자식새끼들이다. 그러니 자꾸 나눠줄 재산이 없다고만 하지 말고 미리미리 정리해 놓으시라니까. 


또래인 친구와 선후배 본인상을 마주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이 더 이상 드물지 않다는 사실이 더 암울하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부모님, 아직 한창 크고 있는 아이들, 순간순간을 억지로 버티고 있을 배우자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상가엘 가면 나의 부재로 인한 내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죽지는 않죠?”


어렵게 조직검사 결과를 말하는 의사 선생님께 명랑하게 물었다. 대답을 원한 건 아니다. 암이어도 죽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자 믿음이다.


그 많은 신체부위 중에 유방이라니,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가슴은 그냥 떼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심각성이 쉬이 와닿지 않는다. 무언가 단단한 게 만져질 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먹고 마시는데, 움직이는데, 생각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물며 죽기라도 할 테냐. 검사 결과를 직접 보고, 듣고서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도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암 이래. 근데 아프진 않아.", “안 아픈데, 오히려 치료를 시작하면 좀 아프지 않을까.”, “음... 아직은. 앞으로 아파질까 봐 치료 중이야.”

“응, 아파. 암이야.”라는 담백한 대답을 두고 구질구질하게 몇 마디 더 붙이는 건, 정말 안 아파서 그렇다. 오묘한 유방암 같으니라고. 그러나 아무렇지 않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둔다면 암세포는 자라나 폐와 간과 뼈와 뇌로 전이가 되겠지. 그럼 정말 죽어버리겠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같은 나인데, 암 진단과 함께 어느새 죽음은 내게 바짝 다가왔다.

조금은 두렵다.




"엄마는 159살까지 살 거야."


왼쪽부터 故루이스 칼망(122세), 故다나카 가네(119세), 마리아 모레라(115세) 할머니



100살은 너무 진부하고, 80살은 너무 적다. (2021년 기준 40세 여성의 남은 기대수명이 47.4년*이라는데, 그 이상은 살아야 덜 억울할 것 같다.) 120살에 가자니 아직 우리 아이들이 100세에도 못 미친 어린(!) 나이이다. 너나 나나 다 늙은이가 되어 서로 홀홀거리며 실없는 농담을 하다가 누가 먼저 가도 더 이상 슬프지 않으려면 내가 159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책이라고 느껴도 상관없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두려워할까 나의 욕심충만한 예상 수명으로 선수를 쳐버린다. 엄마는 159살까지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


*2021년 생명표 (통계청) 

**기네스에 오른 최고령은 프랑스의 루이스 할머니로 사망 당시 나이가 122세였고, 그다음으로는 일본의 가네 할머니 (119세), 현재 생존해 있는 최고령은 스페인의 마리아 할머니로 겨우(!) 115세다. 거 참 이거 잘하면 기네스에도 오르겠군...  




죽음은 탄생과 함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초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탄생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세상을 떠나는 것만큼은 내 의지를 반영하고 싶다. 이왕이면 아이들이 더 이상 엄마의 품을 찾지 않을 때, 충분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 때 떠나고 싶다. 아이들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내가 더 살고 싶기 때문이리라. 죽은 후에도 내 영혼은 자유롭게 구천을 떠돌 수도 있겠지만, 육신 없는 영혼이 다 무슨 소용이람.  

**여기서 죽음이 공평하다는 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를 말한 것뿐이다. 죽음을 맞는 방법과 시점은 결코 공평하지 않은 것을 나도 안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폴과 에이미


"비디오게임에서는요, 다른 사람이 죽으면 게임이 계속되는데 내가 죽으면 게임이 종료되잖아요?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You know, how in video games, like, when other people die, the game keeps going, but then when you die, it’s game over. I think life’s like that.)"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의 폴의 말처럼 내가 죽으면 게임 끝이다. 이왕 태어난 거 조금 더 놀다 가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을 더 보고 더 만지고 더 끌어안고 싶다. 아아. 나에게 이렇게 삶의 의지가 충만한 적이 있었던가.


암튼 지금은 죽기 좋은 날이 아니야.




*커버 사진 : 영화 <신세계> 이중구(박성웅역)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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