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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May 07. 2023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지랄 맞은 일

커밍아웃, 또는 암밍아웃 #1

커밍아웃(coming out) 성 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
아웃팅(outing)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강제로 밝혀지는 일.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커밍아웃 (coming out).

본래 성소수자들이 본인의 성지향성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의미했으나,  요즘에는 무언가 꺼려지는 일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에도 많이 쓰인다.  암 환우들은 암과 커밍아웃을 합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암밍아웃’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커밍아웃이나 암밍아웃이나,  죄지은 것도 아닌데 쉽게 말이 꺼내지 진 않는 건 매 한 가지다.




조직검사 후 암을 진단받기까지 일주일, 암을 진단받았으나 ‘큰 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보름, 큰 병원에서 상담을 마치고 MRI, CT, 뼈스캔, 초음파 등 각종 검사를 진행하는데 일주일, 결과에 따라 암의 아형(兒形, subtype)과 그에 따른 치료 계획이 나오기까지 또 다른 일주일.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한 달 이상을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수술을 먼저 하는 경우라면 수술대에 올라가기까지 또다시 한 달 남짓한 기간을 기다려야 했겠지만, 나의 경우 다행히(?) 항암치료를 먼저 하게 되며 기다림의 시간이 다소 줄어들었다.)


만약 이 시기에 커밍아웃을 한다면, 예상되는 대화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나 암 이래.” “아이고, 어떡해. (&대충 위로의 말) 수술은 언제야?” “몰라.” “항암치료도 해야 하는 거야?” “몰라.” “치료하는데 얼마나 걸려?” “몰라.”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하는 거야?” “몰라.”


그밖에 아무리 많은 질문을 해도 답은 “몰라” 한 가지뿐. 대화를 나눌수록 답답한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사이다를 달란 말이다


아마도 암 환자들이 가장 마음 졸이며 보내는 시기가 바로 이 ‘암인 듯 암 아닌 암 같은’ 때일 것이다. 태초의 혼돈과 같은 어둠 속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어두운 그곳에서 날 살려줄 동아줄을 기다리는데, 어디서 내려올 지도, 줄은 커녕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없을 지조차 모르는 불안한 상태다. 말은 못 하고 생각은 많아진다.


가장 답답한 건 난데, 말을 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이 더 답답해한다. 그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고 식음을 전폐하더니 (정확히 말하면 술을) “으이구, 작작 좀 마셔요.”라는 갈굼을 멈추고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요.”라며 세상 시니컬한 입장을 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불행은 나눌수록 줄어든다지만, 사실은 행복은 나눌수록 질시받고, 불행은 나눌수록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게 진리가 아니겠는가. 숨길 건 아니지만 자랑할 것도 못되므로, 무엇보다도 쏟아질 질문 폭탄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최소한의 사람들에게만 조용히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말할 땐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할 가장 첫 번째 사람이었다. 혼자서 쭐래쭐래 조직검사를 받고 집에 돌아와 이야기했다. 높은 확률로 악성일 거라 했더니 ‘아닐 거야.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라며 애써 부정하며 별말 없이 재택근무를 이어갔다. 모르지 뭐. 아무도 모르는데 가서 혼자 울었을지도.


두 번째는 학부형으로 만났지만 이내 술친구가 된 동네언니였다. 병원소개부터 마음의 위로까지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다. 언니도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다.


세 번째 커밍아웃 상대는 나와 너무 달라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십 년 지기 친구다. 위스키 바에서 만난 그녀는 키핑해 놓은 위스키를, 나는 버진 피나콜라다를 마셨다. 이제는 술을 못 먹게 됐다고 고백했더니 나를 꼭 안아주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건 오히려 가장 쉬웠다. 휴직에 필요한 아주 소수의 회사 사람들에게만 말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여러분, 잠시동안 안녕. 돌아올 때까지 제 책상을 잘 지켜주세요.


대략적인 치료 계획이 나온 이후에는 서서히 여러 사람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에게 차분하게. 암이라는 병이 서로에게 있어서 어떠한 장애로도 작용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암에 걸린 십 대 소년소녀의 인생과 사랑이야기를 담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안녕 헤이즐>이란 이름으로 개봉했다


부모님께 ‘암밍아웃’ 하는 것은 개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세상에서 나이 열여섯에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지랄 맞은 일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암에 걸린 자식을 갖는 거다. (There is only one things in this world shittier than  biting it from cancer when you're sixteen, and that's having a kid who bites it from cancer.)

-John Green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The fault in Our Stars)> 중



내 나이 비록 열여섯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매우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점 하나 차이일 뿐인데 >에서도 언급했지만, ‘암’이라는 단어는 곧 죽음으로 연결되는, 상상 이상의 공포를 안겨준다. 특히 자식이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자식을 앞세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덜컥 들 수밖에 없을 거다. 이만한 불효가 또 어딨겠는가. 물론 난 159살까지 살 거지만…


언제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충격이 덜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고민은 싱겁게 끝났다. 믿었던 큰 딸로부터 아웃팅(outing)을 당했기 때문이다.




소근소근@네이버스티커


몸이 좀 안 좋았을 뿐 별 일은 없다며 말을 아끼는 내가 하도 수상했던 우리 엄마는 나 대신 손녀를 추궁하기 시작했고, 입 싼 해맑은 우리 큰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암을 진단받았음을 그대로 고한 것이었다.


한 달음에 우리 집까지 달려온 엄마에게 나는 “우리 집에 꿀단지를 숨겨놨나… 왜 남의 집에 말도 없이 막 오고 그래”라며 모르는 척 말을 건넸고, 엄마는 “다 알고 왔으니 딴 소리 하지 말아라,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며 안타까움에 나를 타박했다.


뒤이어 “언제 수술하는데?” “몰라.” “수술은 언제야?” “몰라.” “항암치료도 해야 하는 거야?” “몰라.” “치료하는데 얼마나 걸려?” “몰라.”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하는 거야?” “몰라.” 로 이어지는 답답한 대화가 한 바퀴 돈 후에야 서로 몰라서, 모르게 해서 불안했던 마음은 비로소 한 꺼풀 해소됐다.



“아니, 왜 다 모른대?”

“모르니까 모르지, 그러니까 계획이 나오면 말할라 그랬지. 아, 거 노인네 성격은 급해가지고… “

“병원은 또 언제 가는데?”

“다음 주.”

“같이 가줄까?”

“아니.”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라.”

“응.”

“……”

“엄마, 나 안 죽으니까 걱정 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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