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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Sep 13. 2020

당신이 글을 써서 나는 배가 아팠다.

쓰지 못하는 자의 자기 방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천적으로 눈이 두 개, 입이 하나인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선천적인 것 같다. 글쓰기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선천성 그리움(함민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태어났고, 유유자적 멍 때리기를 취미 삼아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월요일이었다. 90년대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모여 조회를 했고,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시작 전에 각종 대회 시상을 했다. 전날 밤 받아쓰기 40점 맞는 꿈을 꾸다가 울면서 깼는데 엄마는 꿈은 반대라고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날 조회대 마이크에서 울려 퍼졌던 "장려상 3학년 2반 권지연연연.."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생애 첫 글짓기 상을 받은 날이었다.


 그때부터 내 글짓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나는 책을 읽진 않았지만 놀기를 학교 옆 도서관에서 놀았다. 어린이 자료실의 어린이용 의자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4학년 때부터는 방과 후에 남아서 글짓기 연습을 했다. 글짓기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몇몇 학생들이 남아서 매일 다른 주제로 글을 썼다. 사실 그때는 시켜서 한 것이지, 재밌지도 않았고 가슴이 아닌 머리를 쥐어짜 내며 글을 썼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한창 운동회 연습을 할 때도 교실에 남아 글짓기 연습을 했다. 꽤 많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과장도 자랑도 아니라 매주 월요일 조회 시간마다 상을 받으러 나가는 것이 민망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글쓰기는 내게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에 가는 것과 같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친구들과 노는 것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진득하게 글을 써 본 기억이 없다.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건 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흙'을 소재로 시를 썼던 것이다. '흙은 말없이 세상을 바라본다'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 수미상관 구조의 시였다. 그게 다였다. 나는 글을 쓰지 않았고, 책도 읽지 않았고,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시면 '작가'라고 적었다. 많은 학생들이 장래희망란에 의사, 교사라고 적었던 것처럼 고민하지 않고 '작가'라고 적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조금씩 내 생각을 개인 홈페이지나 싸이월드에 글로 남겼다. 20대의 폭발하는 상념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글로 옮겼을 뿐 의도적으로 쓰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장래 희망에 '작가'라고 적었던 나에게 '작가'는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재능도 없는데 굳이 쓰려고 하지 말자.'라고 생각한 어느 때부터 이 책, 저 책 읽기 시작했고, 그때부터였다. 종종 나는 배가 아팠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나는 후루룩 읽고 싶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떠돌던 단어들, 이야기들을 다른 누군가의 글에서 마주했을 때, 반가움보다는 배가 아팠다. 배가 아파서 책장을 덮었다. 약 올랐다.

내가 썼어야 했다. 일이 바빠서, 육아로 정신이 없어서, 친구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다시 보기 드라마 정주행도 해야 하고... 그래서 쓸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썼어야 할 글처럼 느껴졌다.  


 나도 쓰고 싶었다.

 마음속 장독대에 묵혀 둔, 발효되다 못해 곰팡이가 필 것만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지만, 나는 겁이 많았다.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겁났고, 타인에게 내 글을 보이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나 스스로가 내 글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내 글에 내가 실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배가 아팠다.


 배가 아파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생각을 했다. 못 살겠고 나는 아팠다.

 그러다 아픈 이유가 용기가 없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공을 들여서 글쓰기에 체력과 정신을 쏟기로 작정할 용기가 없었던 건 결국 게을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게으른 겁쟁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충동적으로 툭 용기를 던져 보자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에 수백 개의 글이 쏟아지고 있는 브런치에서 한낱 점에 불과한 내 글이기에 오히려 안심이다. 나는 오랜 시간 별거 중이었던 글쓰기에 적응 중이고, 점에 불과한 내 글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글쓰기와 친해지는 적응기를 거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둥둥 떠다니는 수백 개의 글들 속에 내 글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쨌거나 나는 쓰고 있으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글쓰기에 대한 선천성 그리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글쓰기에서 만큼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써 내려가야만 의미가 있다.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듯, 써 봐야 알게 되고 글과 친해지게 되고 일상에서 글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숨 쉰다. 고로 내 배는 안전하다. 약 오를 필요도 배 아플 이유도 없다. 내가 글을 써서 당신이 배가 아프다면 당신도 아마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아프고 게으른 겁쟁이는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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