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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Oct 31. 2020

불 같이 흔들려서 불혹인 거죠?

지그와 지그와


 외할머니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고, 지금은 엄마가 자주 하시고, 나도 가끔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지겨워 지겨워.

 나는 잔잔한 호수를 좋아하고, 넓게 펼쳐진 하늘과 평화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좋아하고, 조용하고 따뜻한 카페를 찾아다닌다. 언제나 내면의 평온을 갈망한다. 마흔이 되면 그리될 거라고, 갈팡질팡 헤맬 일은 없을 거라고, 미혹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불혹이라고.

 두 달 뒤면 불혹인 나는 상점 앞 바람 인형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바람 불 때마다 흔들흔들, 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더욱 흔들흔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흔들흔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춤을 춘다고 하겠지만 바람 인형은 언제까지 흔들리며 살아야 하나 지겹고 고달프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불혹은커녕 혹혹혹 수많은 혹을 장착하고 살고 있다.

 일희일비는 기본이요,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불안에 내 몸을 맡겨 버리니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흔들리며 사는 피곤한 인생의 연속이다.

 엄마는 모든 것은 이 세상 하직하는 날 끝날 거라고 하셨다.


 나이를 먹으면 간이 더 커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소심해지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험한 일을 겪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수록 단단해진다고 했는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쫄면서 살다가는 간과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불 같이 흔들려서 불혹이었구나.


 책에서 읽었던 인생의 진리들은 읽을 때뿐, 내 인생에 적용이 안 된다. 나에게 닥치는 일들이 마치 처음인 것 마냥 새롭다. 분명 전에도 겪었던 일 같은데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이 당황하고 비틀거린다. 어찌 보면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긴 세월을 비틀거리면서도 또 어영부영 살아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훅 치고 들어온 직장 동료의 무례함에 잠을 설치고, 오늘은 평소보다 뜨끈뜨끈한 딸아이의 이마를 만지고 심란하다. 요 며칠 기운 없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이곳저곳 안 쑤시는 데가 없으시다며 동네 병원을 마실 가듯 들락거리시는 엄마를 보며,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절친과의 대화를 마치고, 때가 되어도 소식이 없는 생리 현상까지도...


 나이가 더 들면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자신이 없다. 차라리 흔들리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애초에 인생은 흔들리며 사는 것.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사는 것.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것이 그리 초라한 일이 아니라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조금은 품격 있게 흔들리고 싶다. 흔들리는 그 순간에 태연해질 순 없겠지만 우리는 원래가 흔들리며 살아가게끔 태어났으니 흔들리는 순간순간을 진득하게 응시하고 음미하고 싶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나부끼고 있는 가련한 벗들의 손을 잡아 주겠다. 바람에 장단 맞춰 함께 나부끼며, 휘청거리는 것인지 춤추는 것이지도 모를 잔치를 열겠다. 그렇게 한 세상 버텨 보는 거지 뭐. 가을바람 맞이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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