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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Jun 23. 2022

대응할 수 없음

대응할 수 없는 교사들의 시대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설문 참여 부탁을 받았다. 자녀가 사범대생인데 과제 해결을 위해 현직 교사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있다 보면 학교, 교육청, 무슨무슨 의원의 자료 요청 등으로 설문을 작성할 때가 많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밀고 당기고, 수업하고, 날아드는 공문 쳐내기 바쁜 마당에 설문지 너부렁이가 대체 뭐란 말인가. 뜬구름 잡는 얘기로만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가끔 의미 있는 설문 조사에는 솔선하여 참여하기도 하고, 어찌 되었건 일단 설문지를 받으면 최대한 성의껏 대답하려고 한다. 현실이 왜곡되어 수치화되는 것은 또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귀찮고, 17년째 따박따박 답하고 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고, 애석하게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바쁘다. 선생도 쉬는 시간을 기다린다. 10분 쉬는 시간 동안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목도 축여야 하고, 수업 중 쏟아진 업무용 메신저도 확인해야 한다. 이 3가지를 다 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중간에 관리자로부터 호출을 받거나, 학부모 또는 업무 관련자에게 연락이 오게 되면 3가지 중 한두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혹은 우리 반 녀석이 찾아와 누구랑 누구랑 싸웠다는 속보를 전하기라도 하면 게임오버다. 그 와중에 설문지 문항을 체크하는 데 시간을 쓴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그런데 과제라고 하니 마음이 좀 달랐다. 일종의 측은지심이랄까. 막막한 과제를 받고 허둥지둥 대던 나의 쭈구리 대학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학생이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사 대상자들을 찾기도 어렵고, 일일이 부탁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쩌면 후배 교사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교사꿈나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승낙을 했고, 수고를 덜어주고픈 마음에 주위 친한 동료 교사 세 분에게도 부탁을 했다.           


 먼저 문항이 모두 주관식이라는 데 적잖이 당황했다. 현직 교사가 생각하는 학교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렵다. 잘못하다간 설문지에 속풀이 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속풀이 하기 딱 좋은 질문이었다. 문제다, 문제다~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등딱지에 문제를 짊어지고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는 거북이 교사들이 어디 한둘일까. 입 밖으로 꺼내면 불평불만 가득한 인간이 되고, 삶은 좀 더 외로워진다. 바뀌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하라는 대로, 타종 소리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일상적 모욕 상태’가 지속되는 것처럼.     


 다음날 동료 교사들이 보낸 메일을 열어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이 적중했다. 역시는 역시 역시군. 그들의 속풀이가 사뭇 진지하여 더 웃음이 났다. 요약하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학생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학생 활동중심수업을 하라고 하면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불멸의) 대학 입시 제도는 바뀔 생각이 없다(결국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 슬퍼지는 입시 위주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뭐니 뭐니 해도 수업을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공문들을 하사하는지, 공강 시간에는 공문 처리, 보고서 작성하느라 교재 연구는커녕 교과서 들춰볼 시간도 없다.

대한민국의 인권 의식은 날로 높아지는데 교권은 갈수록 추락하여 교사들이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한다. (그래도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냐며, 좀 웃고 다니라고 교사 힐링 연수를 시키는데 단체 연수받다가 스트레스 폭발한다)   

  

 현재 소속된 지역도, 학교도 다른 네 명의 교사가 유사한 불만(?)을 품고, 유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교사들끼리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도 꺼내지 않는 문제들이다.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누구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변을 토할 수밖에 없지만, 뒤끝은 항상 씁쓸하다. 회포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더 가불 하여 팍삭 늙어버린 것 같다.            


 설문지 3번 문항이었을 거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계십니까?'

 누군가 대답했다. ‘대응할 수 없음’

 극도의 사실주의, 리얼리즘을 찰떡같이 표방한 답변이 가슴을 후벼 팠다.


 학습 부진 학생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는 학습된 무기력이다. 교사들에게도 학습된 무기력이 존재한다. 말해봐야 입만 아픈 현실이다.      


 그러면 도대체 학교는 무슨 수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잘 돌아간다. 저들 세 명의 동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교사들이다.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김 교사는 수업에 남다르게 진지하고 학습지 하나 만드는 데도 온 정성을 쏟는다. 김 교사에게 초과근무는 일상이다. 백 교사는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아이들이 접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온 열정을 다한다. 주어진 일이라면 제 몸 불사르는 우직함으로 감당했기에 한때 ‘소’라 불리기도 했다. 박 교사는 최근 교사들에게 기피업무 1호가 되어버린 ‘담임’을 자처해서 맡겠다고 한다..      


 가끔 인터넷 기사에서 양심을 팔아버린, 파렴치한 교사들을 보게 되면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은 애써, 애를 써서 모든 순간을 꽃피우고 있다. 교사로서 라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미 실격인 자와 꽃다운 순간을 함께해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다행인 건 흔하고 널린 일은 기사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쁜 교사들이 기사화된다는 건 그런 자들이 몇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평범하고 착실하게 학교를 지키고 있는 김 교사, 백 교사, 박 교사와 같은 다수의 교사들은 기사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생각하지만, 가끔 나쁜 교사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래서 김 교사, 백 교사, 박 교사 같은 교사들도 깡그리 손가락질당하고 욕먹을 때마다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응할 수 없는’ 문제들은 순간순간 뱉어내는 한숨의 빈도와 비례한다. 무자비한 대학입시제도 속에서 무한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협동하고 배려하는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며, 오늘은 또 어떤 심정으로 교단에 서야 할지를 고민한다. 경쟁과 좌절 내재된 채 어른이 된 아이들이, 언젠가 불쑥 자신의 이중성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리하여 겪게 될 혼란은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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