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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Jul 02. 2022

산을 오르다 발견했어요



 삶이 숙성되어 가면서, 고쳐 말해 나이 들면서,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좋아졌다. 발견해내고자 애써서 발견한 것들이 아니라 어영부영 살아가다가 툭! 하고, 아! 하고, 오! 하고 알아차리는 것들. 생활 속 소소한 발견들은 보약처럼 기력을 보충해주는 것 같다. 멍-하던 머리가 맑아지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희열을 느낀다. 내가 말하는 ‘발견’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로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진짜로 지렁이가 똥을 누었어. 오 대박! 만세 하면서 자는 남편의 팔을 내리니 코를 골지 않잖아 나이스! 꽃 이름이 ‘존넨쉬름’이라니? 대박대박! 박 부장님께 선물하고 싶네. 같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데 최근 등산을 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몇 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산에 오르다가 최근에는 거의 매일 아침 등산을 하고 있다. 3월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고 한 달을 비틀거리며 지내다가 바닥난 체력을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동네 뒷산이지만 내게는 비루한 육체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을 거칠게 반복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숨을 쉬고 있지 않았어!    


 그동안 나에게 ‘숨’이란 무엇이었던가. ‘숨’이라기보다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최소한의 이동, 횡격막과 갈비뼈의 보일 듯 말 듯 한 미세한 퍼덕거림이랄까, 자발적 숨죽임 상태의 지속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직장에서의 일과 가정에서의 육아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가다 보니 제대로 숨 쉬는 법을 잊은 것이다. 좀체 숨 쉴 여유가, 숨 쉴 틈을 찾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직장과 가정에서 내 생각과 욕구를 삼키며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숨조차 당당하게 뱉어내지 못하고 삼키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렇게 모아진 숨은 가끔 한꺼번에 분출된다.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동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숨을 모아서 한숨으로 내뱉는 것도 의도한 바는 아니고, 내 한숨의 정확한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나는 숨을 차곡차곡 모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겨우내 양식으로 삼지만 나는 모아둔 숨을 묵직한 한숨으로 한방에 사치스럽게 내뱉는 것이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서야 알았다. 내 숨소리를, 들숨과 날숨을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로 들을 수 있다. 숨이 차서 아고고 소리가 절로 나오긴 하지만,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침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깊은숨을 들이마실 때면 속 근육이 땅기는 것도 같고, 내장들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몸 안의 근육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어서이다. 그런데 산을 오르며 숨쉬기를 지속해서 하다 보니 폐에 공기를 가득 담아도 아프지 않다. 갈비뼈가 부풀어지면서 폐가 빵빵해질 때의 느낌이 좋다. 폐 안에 맑은 공기를 한가득 불어넣는 느낌. 오롯이 내 숨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순간이다.     


 알록달록 꽃무늬 등산복을 입은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얼쩡거리고 있는 나를 잽싸게 앞질러 가신다. 이 구역 베테랑들이시다. 다부지고 생기 넘치는 움직임, 늘 부러운 눈길로 보게 되는 산속 롤모델이라고나 할까. 나의 롤모델들의 표정에 행복이 가득이다. 매일 초록의 숲속에서 나무와 새와 바람을 만나고 ‘나’라는 존재를 어느 때보다 생동감 있게 실감하는 님들의 표정! 세상사에 찌든 속세의 나와 동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기 그 자체! 그래서 오늘도 나의 롤모델을 따라 힘차게 숨차게 산길을 오르며, 생생하게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안 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마음이 쭈글쭈글해질 때라도 숨은 제대로 쉬고 살아야지. 숨 ‘죽이는’ 것보다 숨 ‘넘어가는’ 게 훨씬 낫다.     


 저기 아래서 덩치 큰 청년이 헐떡거리며 올라온다. 얼마 전부터 종종 보이는 뉴페이스다. 동네 뒷산이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질 테다. 땀범벅에 발갛게 익은 얼굴로 육신의 한계치를 경험하고 있는 낯선 이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낀다. 시인 김수영은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자고,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고 했다. 뒷산에 갓 입문했을 때의 나와 꼭 닮은 동지에게 숨이라도 마음껏 뱉자고 말하고 싶다. 낯선 동지의 들숨과 날숨을 지지한다. 이 곳에선 괜찮다. 양껏 숨 쉬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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