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희기념 가족여행 첫날

가족이지만 쉽지 않아.

by 바람코치 신은희

각자 분가해서 살고 있는 인원이 2박 3일의 일정을 맞춰 동일 날짜에 여행을 떠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3월부터 예약하고, 삼 남매가 예산을 나누고, 가족여행 계획표도 만들고 정말 정성껏 준비했다.

코시국이라 작년엔 거의 두어 번 만났나 싶었던 친정가족과의 여행이라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인원수도 걱정되었지만 강행한 이유는 2가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1. 내 남편의 퇴사 이전 일정은 주로 주말 출장이 많았고 그것도 짧은 게 3박 4일, 길면 10박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친정식구들과 여행 일정 맞추기가 어려웠다. 시댁 식구들은 결혼 10년간 임신 중인 두 해 빼고는 매번 여행을 모시고 갔는데 우리 가족과는 비즈니스 일정상 못 간다는 게 너무 서운했다. 그런데 작년에 퇴사하게 되면서 이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둥

2. 올해 친정아버지는 70세 시다. 70이라는 나이는 옛말로 드물다는 의미의 '고희'라고 불렀다. 70까지 건강하게 사신걸 축하하는 의미로 고희연을 여는 것이다. 과학과 의학의 기술이 발달한 요즘도 죽음의 시간은 답보할 수 없다. 작년부터 내 지인들의 부모상이 줄지어 있었기에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래서 아버지가 원하시던 가족여행을 강행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고 쓰고 '고난도 감정노동'이라 읽을 수 있을 만큼 가족과의 여행은 사적인 거리를 중시하는 내게 쉬운 이벤트가 아니다.


친정 엄마와의 관계야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둘도 없는 베프이자 소울메이트이지만 아빠나 우리 삼 남매 제 각각은 정말이지 초예민하고 각자의 개성이 유별난 사람들이어서, 대할 때마다 겹겹이 싸인 베일 속 무언가를 통과해야 하는 에너지 소모가 느껴진다. 오히려 겉보기엔 조용한 시댁 식구들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 했다.


재밌는 건 그 예민한 사람들의 배우자도 역시나 예민하고 그 자녀들도 못지않게 초예민한 성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고, 시선에 신경 쓰고, 인정에 목마르고, 폐 끼치기 싫어하고, 자존심 강하고, 저 세상 YOLO를 추구하고, 겉보기엔 유쾌하고 털털하지만, 집으로 오면 그 가면을 쓰고 있던 시간의 에너지 소모로 지쳐서 서로를 (저도 모르게) 할퀴는 그런 사람들의 집단!

듣기만 해도 피곤하지 않은가?

내 탄생의 근원이니 떼려야 뗄 수 없고, 너무 사랑하지만 내 사적 공간의 여유가 확보되지 않으면 정말 탈진된다.




물놀이도 하고 바비큐 파티도 하고 노래방 기계로 릴레이 노래자랑도 하고 밖에 나가서 별 보며 불꽃놀이도 하고 다시 노래도 부르고.... 적어만 놓으니 꽤 즐거운 시간들처럼 보이지만, 시시각각 왠지 모를 불편함이 올라왔다.

나의 루틴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독히 가부장적이고 독재적인 스타일의 아버지와 시시각각 마주하는 순간이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쉽지 않은 탓이었다.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 숙소 써칭 하고 동생들과 협의하고 여행 스케줄링하고 신경 쓰던 내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다. 근데 여행 5일 전 동생이 이혼하려 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고, 부탁이 힘든 나라는 사람에게 5월에 찍은 가족사진에서 그 남편만 기술적으로 지워줄 수 있는지 억지로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으로는 여행 전날 극적으로 화해해서 우리 가족여행에 결국 그 상대가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내내 마주한 것이다.



아... 이런 상황, 나만 불편한 걸까?​


서로 속내는 숨기고 겉으론 하하호호 심하게 유쾌한 에너지를 경쟁적으로 뿜어내는 이런 상황이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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