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과 마주하기

워너비코치

by 바람코치 신은희

오늘 코칭은 시작 전에도, 시작 후에도 착잡했다. 시작 전에는 해야 할 일들에 신경쓰느라 마음이 분주했고, 진행 중에는 자꾸 나의 생각이 올라와서 괴로웠고, KPC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정리해 둔 스텝이 꼬여서 멘탈이 흔들렸고, 코칭 후에는 나의 꼬였던 스텝과 흔들린 멘탈을 고스란히 복기하며 부끄러웠다.

나의 강점 제 1순위는 공감이다.

이 한 문장만 봤을 때는 좋아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나의 지나친 공감능력이 시시때때로 독이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코칭을 할 때는 자기자신을 내려놔야 한다고 배웠다. 나(ego)를 내려놓고 고객의 상황에 깊이 들어가서(적극적 경청) 함께 존재하는 파트너십(코칭 프레즌스)을 발휘하는 것이 진정한 코치라고 배웠다.

현실의 나는 뭘 그렇게 많이 안다고 코칭 상대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에 비견하는 내 경험이 순식간에 기억나서,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그의 깊은 마음과 의미를 헤아리기 보다는 '어머, 이런 걸 알고 싶은게 아닐까?' '어어~ 그럼 안 되는데...' 라든가 '이건 내가 알려쥬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수시로 코칭프레즌스에 끼어든다.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 정말 이 시간에 나와 이야기하고 싶은 그 속마음을 깔때기 식으로 점차 탐구해나가도 모자를 시간인데 자꾸 사심(=ego)이 떠오르니 미칠 지경이다.

이는 내가 업무적으로 정신없이 바쁠 때 더 자주 발생한다. 내가 분주한 것의 척도는 내 입안의 구내염 갯수로 알 수 있다. 아! 생기는 속도도 카운팅 되겠다. 요즘은 한 이틀 사이에 구내염이 가까운 위치에 연달아 너댓개가 자리잡았다. 입안은 쓰라리고 속마음은 더 쓰라리다.

공통된 속마음은 '더 잘하고 싶어서' 인데 이거,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일까?

아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까?


그 누구(무엇)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더 많이 인정 받아야만 하는 것,
이것이 에고이다.
-책 '에고라는 적' 26쪽

작년에 읽었던 책 #에고라는적 에서 위 문장을 읽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고 그래서 SNS 죽순이고, 그래서 완벽을 추구하며, 늘 타인을 의식하며, 타인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인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살았었다. 이제 자각을 하고 배우기도 했으니 변화되었냐고?

Nope!

사람이 참 그렇게 쉽게 바뀌는 동물이 아닌 것을......

나는 매번 같은 수렁에 빠진다. 자꾸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자라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이른 성공에 도취당할 뻔한 자신의 에고를 관리하기 위해 다음의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너는 지금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지금 굉장한 인물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흥분해서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냥 지금처럼 꾸준하게 나아가라."

인정한다. 나는 자주 내 상상 속에 살았다. 아니 상상으로 만든 내 성공이미지 속에 빠져 살았다.

피아노를 배울 때는 혼자 있으면서 마치 주변에 수많은 관객들로 둘러쌓여 환호받는 기분으로 쳤고, 강의를 준비할 때도 나도 모르게 나는 참 잘난 강사다 하는 상상에 빠져 '이 강의를 하면 참여자들이 엄청난 좋은 충격을 받겠지?' 하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리허설을 했던 나는 자만했다. 아! 글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은 느낌이 좋은데? 이건 정말 수많은 하트와 댓글을 받겠지?' 하고 발행했지만 1시간 간격으로 아무리 리로드해도 0이라는 숫자와 마주할 때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혹자는 내가 참 겸손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나는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 속에 갇혀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게 나의 에고라는 적 아니었을까?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업적이나 예술적 성과는 그런 말들과 분주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공허나 불안을 정면으로 맞서는 데에서 탄생한다.
- 책 '에고라는 적' 54쪽

그래서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질렀다. 읭?

와 같이 고요한 공허함, 침묵, 스페이스 등을 이전보다 더 자주 맞아보기로 했다.

맞이할지 (두드려) 맞을지는 모르는 거지만, 경험해 보기 전에는 더 모르는 거 아니겠는가?


어젯밤, 내 불안과 정면으로 맞서봤다.

바로 남편과의 대화! (따라서 지금 이 시각-02:00-까지 잠 못 들고 이 장단임)

목요일 밤 11시에 3시간 풀로 진행되는 영화인문학 강의가 끝나고, 꼬.꼬.무. 를 보며 잠깐 그 역사 속 현장에 몰입했다가 남편과 독대를 시작했다. (평상 시엔 말많은 남편, 보다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자기말만 하는 남편과 대화하는 게 너무 피곤해서 강의가 끝나도 혼자 계속 방에 앉아 일을 하다 남편이 자면 자러 들어가기 다반사.)

남편 - "주식이~~~~~~ 부동산이~~~~~~~~ 내 취미가~~~~~~ (한참 일장 연설 하신 후에)

It's my turn, finally~

"여보, 나는 당신이 그런 데 쏟는 관심만큼 우리 애들한테도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내가 볼 땐 평소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단, 애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서 돌아와도 안부인사도 안하고, 계속 자기 취미활동만 하잖아. 당신 취미는 존중하고 싶지만, 당신은 싱글이 아니고 애들 아빠니까 애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제발 조금이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그동안 계속 쌓아두던 말을 느릿느릿 걱정하며 풀어나갔다. 왜냐하면 남편 성정이 말끝마다 ~C~C 하는데다 내 얘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자기자신을 제외한 우리가족에겐 관심이 별로 없어보였었다. 그래서 속상하고 섭섭했던 밀린 감정을 쏟아내었다. 그랬더니 남편 왈,

"그건 오해야.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맘 속에 담아두지 말고 솔직하게 먼저 물어봤어야지. '나는 이런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식으로 먼저 물어봤으면 좋았잖아. 나도 아이들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남편 말을 듣는 순간, 아뿔싸! 싶었다. 그동안 나는 남편만 잘못하고 있고, 남편이 자기 생각만 한다고 꿍해서는 정면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을 은연 중에 피하고 싶어했었다. 그 결과, 결혼 10년 넘게 나는 남편이 원하는 것을 왠만하면 거의 들어주고(내가 불편하더라도) 그냥 넘어가고 하는 속앓이를 이어오게 되었다. 속으로 끙끙 싸매기보다 진작 이야기로 풀어보고 속 시원히 대화를 나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이것 또한 내 에고 아니었을까? 나만 억울해, 나만 고생해, 너는 속편해~ 라는 잣대가 말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니 11시반에 시작한 대화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너무 피곤하지만 속은 개운하다.



아까 코더코 시간에 코치님께도 유사한 말을 들었다.


"그건 코치의 에고예요. 무언가 직관이 올라왔다면 혼자 추측하고 넘긴 다음의 말을 건네지 말고 먼저 솔직하게 물어보시는게 나아요. 예를 들면, '저는 듣다보니 ~~~게 느껴지는데, 혹시 이 말을 들으시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와 같이요."


불편한 감정, 당신 내면 깊숙이 가정하고 있던 생각들이 도전받을 때 느끼는 방어적인 감정들에 의도적으로 당신을 노출시켜라.
-책 '에고라는 적' 145쪽

늘 뼈때리는 조언은 아프다. 불안과 맞서는 상황도 아프다.

아프지만 청춘이니까, 가 아니고 아픈만큼 성장할 수도 있는거니까!

앞으로 나는 나를 불안한 상황에 조금 더 자주 노출시켜 보려 한다. 읽으며 불편한 생각이 드는 책을 보고, 내 취향이 아니고 불편한 기분이 드는 영화도 보고, 불편해질까봐 꺼리거나 삭였던 대화를 솔직하게 하는 등 숨겨왔던~나~~의 (Ego) 아닌 진심을 터놓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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