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은 스타트가 좋았다.
첫날 저녁부터 그림 수업을 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올 1월부터 다시(?라는 표현이 맞나...초등학교 졸업 이후론 제대로 4B연필 잡은게 처음이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여덟달을 채웠다. 하지만 뭔가 더 배우고 싶고 채우고 싶은 열망이 계속 끓어올랐다. 유투브에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뭔가 더 찐한 교감을 나누고 싶었달까?
그래서 재작년부터 눈여겨봐왔던 드로잉프렌즈 클래스를 기적적으로 등록했다. (계속 시간이 안 맞았기 때문.)
온라인 클래스에서 처음 뵌(처음이지만 처음같지 않았던 페친 구면)장진천 선생님의 모든 말씀이 어쩜 그렇게 구구절절 내 마음 속에 꽂혀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유투버가 이연 인데, 그의 신간을 낭독하시는 모습을 보다보니, 차라리 장쌤이 책을 내주시면 사서 보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인상깊은 첫 수업시간이었다.
"왜 이 클래스에 오셨냐고 하면 대부분 '그림 잘 그리고 싶어서 왔다' 고 하세요! 그런데요~ 그림은 잘 그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예요. 우리는 그림을 점수로 평가받아 왔기에 '잘 그려야 된다' 는 마음이 크죠. 그래서 그림 좀 그려보고 싶은데 한 번 앉으면 그리고 싶은 그림 찾다가 자정이 넘어버려요, 완벽하게 그릴려다가 진 다 빼고요. 그럼 오래 못 그려요."
이거슨,,,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제 발 저린 말씀들이었다. 내가 그랬다. 너무너무 잘 그린 것만 보여주고 싶어서, 못 그렸다고 생각되는 건 SNS에 업로드 하지 않았으니... 그뿐인가 잘 그리려다 보니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다 그리고 나면 근육 경직은 보너스였다.
"이 클래스는 스킬을 많이 가르쳐 드리진 않습니다. 진도도 빠르지 않아요. 기술은 배워서 된다기보다 많이 할수록 느는거예요.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림에 기술이 아닌 메세지를 담고
점수보다는 빈도수를 높이는 것
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여기까지 듣는데 머리가 망치로 얻어맞은듯 띵했다. 나의 강박적인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그림인데 그리면서 자꾸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너무 잘 그리고 싶은데, 내가 그리고 싶은대로 안 그려지니까 괜히 자책이 늘었다. 난 그림 그리기가 정말 좋은데 왜 좋은걸까?
장쌤은 그림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마다 욕구가 다른데, 누군가에겐 무언가 몰입하는 시간이 좋아서 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사실 이게 원하던 취미가 아닐수도 있다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나의 욕구를 들어주는게 먼저라고 하셨다.
특히 인상깊었던 말씀은
한 번에 다 그릴라고 하지 말라
였는데 한번 앉은 자리에서 끝장내는걸 좋아하는 성향인 나에겐 다소 낯설었다. 엉덩이력으로 공부하듯 그림도 그렇게 집중해서 끝까지 그려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림을 매일 그리고 싶지만, 뭔가 각 잡고 그릴라고 하니 자꾸 셋팅이 필요하고 지난주처럼 일이 바쁜 날들의 연속인 주중엔 아예 그림 그릴 엄두도 못 냈었다. 그런데 지난주의 나는 수업을 하루 들었잖은가? 그리다 말아도 되고, 잘 못 그려도 된다. 그리고 싶은 내 마음이 충족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매일 바라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을 그렸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스케치만 하고 멈췄다.
다음 다음 날, 시간이 되어 채색도 했다.
그 다음날은 화이트 마카로 별도 찍고, 하얀 은하수도 뿌려주었다.
느리게 완성한 나의 그림,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서 기분 좋았다.
사실 이 수업이 내가 완벽히 원하던 수업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스킬적인 측면에서도 성장하고 싶고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8주 수업이 끝나면 내 영혼이 기분좋게 살찌워져서
그림을 더 자유롭게 그리고, 더 느낌있게 그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그게 지금의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을 그으며 조금씩 나만의 면을 채워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