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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Sep 07. 2021

터널을 빠져나오는 방법

95미터 간격으로 비상구 설치해두기

대부분 온라인 강의이지만 한달에 한 두번은 꼭 장거리로 강의여행을 떠날 일이 생긴다. 재밌는 사실은 가서도 온라인스튜디오실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한다는 점이다. (네?)허허허허허.

그래도 영화를 매개체로 치유인문학을 강의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쁨이다. 강의 준비활동이 곧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영화보기가 되니 말이다. 평소 질문이 많은 나이기에 인문학 장르는 참 매력적이고 애착이 가는 분야다.


오늘 강의장으로 가는 길엔 비도 억수로 퍼붓고, 터널도 6군데 이상 통과했다. 처음엔 신나서 음악 크게 틀고 목청 터져라 노래 부르며 가다가 목이 아파서 노래부르기를 멈췄다. 곧 또 목을 쓰며 열강해야 할 터였다.



무소음 상태가 되니 이번엔 내가 지나가고 있는 터널을 관찰하게 되었다. 모든 터널이 같은 모양은 아니더라. 어떤 터널은 짧고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 쓰고 그냥 콘크리트벽 투성이라 읽는다) 위주이고, 어떤 터널은 지나가는 도중에 사이렌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진 알수 없으나, "정신집중"?? 이런 말 같았다. 운전 중 졸지 말라는 얘기겠지.


너무 명령조인 저런 사이렌소리보단 알록달록 조명이 계속 바뀌어서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컬러풀 터널이 더 좋았다. 오늘 새롭게 발견한 터널은 9월 초 개통된 곳이었는데 조명도 색다르고 널찍널찍 환해서 터널같지 않았다.


특히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중간중간 보이던 비상구!

더 재밌는건 비상구가 95미터 간격으로 설치돼있던 점이었다. 사람 표시는 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 자동차 표시는 자동차도 빠져나갈수 있는 비상구 같았다.


영화 터널을 인상깊게 봤던 터라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비상구를 찾곤 하는데 95미터 간격마다 비상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인생 속 고통의 터널에도 이런 비상구가 많이 배치돼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삶의 기본값이 고통이라지만 빠져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거나 삶의 목표가 없으면 이내 무기력해지고 살아야하는 의미도 상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매번 같은 고통의 구덩이에 빠지더라도 어디쯤에 탈출구(비상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만 한다면, 멘탈 살림살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아주 심하진 않지만 나에겐 완벽주의에 수반되는 잦은 강박증과 폐소공포증이 경미하게 있다. 꽉 막힌 곳은 답답하다. 하지만 사방이 막힌 느낌의 터널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숨막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이 터널이 언젠가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터널은 양쪽이 뚫린 구조이므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엑셀을 밟으면, 계속 걸으면?)언젠가는 (때론 빠르게)빠져 나갈 수 있다. 문제는 그 안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을 수도 있다는건데... 그럴때 95미터 간격으로 배치된 탈출구가 요긴하겠다.


내가 언제쯤 분노가 터질지, 내가 언제쯤 기분이 다운되는지, 내가 언제쯤 토할것 같은지... 나를 잘 관찰해두었다가 그 간격에 맞는 나만의 비상구를 설치해두면 어떨까?



오늘 내가 강의장으로 올 때 통과한 터널은 편도 6개가 넘었다. 하지만 왕복으로 셌을때는 12개가 아니었다. 돌아올 땐 다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터널이, 아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터널이 너무 길고 끝이 안보인다고 느껴질땐, 95미터 간격의 비상구를 설치해보거나 다른 길을 선택해보는건 어떨까?


내 멘탈살림살이도 훨씬 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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