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여성의 경력성장' 에 대한 콘텐츠 개발을 하면서 재미있는 이론을 발견했다.
만화경 이론
이 그것이다.
1. 만화경 이론이 뭔데?
미국의 경영학자 리사 마이니에로(Lisa Mainiero)와 셰리 설리반(Sherry Sullivan) 등은 2005년 발표한 논문에서 여성이 경력개발에 임하는 태도를 만화경 이론(Kaleidoscope Career)이라고 명명했다.
경력성장초기에는 '내가 이 커리어를 택할 경우 충분한 도전과 기회가 따를 것인가?' 라는 질문을 품고 경력을 선택한다.
이 단계에선 만화경 속 색종이 조각 중 빨간색 Challenge(도전) 조각이 두드러진다.
경력성장중기에는 '이 커리어를 택할 경우 내 삶의 여러 부분이 균형을 이루어 조화롭고 통합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것인가?' 라는 질문이 경력 선택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 단계에선 만화경 속 색종이 조각 중 파랑색 Balance(균형) 조각이 두드러진다.
경력성장후기에는 '이 커리어에서 내가 진정 '나' 일 수 있는가?' 라는 성찰을 통해 경력을 선택해나간다.
이 단계에선 만화경 속 색종이 조각 중 노랑색 Authenticity(진정성) 조각이 부각된다.
2. 내가 생각했던 나의 커리어로드맵
내가 지나온 커리어를 돌아볼 때에 20대 초반에 세운 얼개는 이랬다.
20대 때는 많이 도전하고 경험해서 내가 찐으로 몰입하고 싶은 분야를 찾을 것! 3,40대 때는 그렇게 찾은 커리어 분야에 매진해 볼것! 4,50대 때는 그 커리어를 확장해 내 브랜드 파이를 키울 것! 60대 때부터는 하고 싶은 거 더 도전해볼 것!
20대 땐 정말 다양한 도전을 했다.
캐나다한국일보 인턴기자를 시작으로, 섬유무역회사 기획실-IT홍보마케팅팀-스포츠마케팅대행사 해외사업팀 을 거치며 사이드잡으로 영문번역일도 짬짬이 했었다.
일하다 만난 사람과 결혼 후 펼쳐진 30대에는 원랜 40대부터 해야지 했던 직업상담분야로 전직(준비기간 약 1년10개월)해서 프리랜서 강사-시청일자리센터-취업포털 신규사업팀-대학 취업지원관-1인 기업(a.k.a. 인디펜던트 워커)으로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왔다.
이제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니 이미 선택은 했고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커리어가 2022년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1인 기업으로 5년을 지내오며 나름 나만의 라이프사이클을 구축하고, 나만의 진정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마! 이게 바로 나다! 싶은 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콘텐츠 개발자로서의 로드맵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즉, 위에서 언급한 경력모델 중 A단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3. 나의 경력은 A일까? B일까?
매일 밤새면서 일하고 있는 나...
가족 얼굴도 제대로 못 마주하고 마감기한에 쫒기는 나...
뼈빠지게 일했는데 제 때 안 들어오는 강사료...
악화되는 건강에 걱정 섞인 핀잔이 느는 남편...
엄마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볼멘소리만 하는 아이들...
계속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를 일삼는 일부 거래처들...
에 지쳐버렸다.
사실 번아웃 된지는 3년이 다 되가는데
제 때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하반기엔 아예 '자기돌봄데이' 를 매월 1일 지정해놓고 지켜왔지만, 지난 11월엔 업무가 폭주하는 바람에 온몸이 악 소리를 냈다.
홧김 반 진심 반으로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조직에 다시 들어가는 상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자율성과 주체성을 중시하는 나에게 40대에 다시 시작하는 조직생활이 어떨지 고민도 된다.
하지만 건강이나 가족과의 균형(Balance)을 위해선 입사가 현재 상황에선 최선이 될 수도 있다. 40대 쯤엔 퇴사를 바라거나 나만의 일을 개척해나가려는 움직임들이 많은 편인데 나는 도리어 입사라니 실소가 삐져나온다.
죽자고 완벽을 기해 만들어놓은 콘텐츠들로 내년 밥벌이가 보장된 상황에서 다 접고 들어가는 상황도 웃프다.
물론 새로운 일터에서 새롭게 만들어갈 커리어가 기대되기도 한다. 청년담당관으로서 시의 청년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운영하는 일이라 시야가 더 넓어질 수도 있겠다.
4. 필요하다면 직접 만들어 버리는 사람
[참고이미지1] 만화경 이론 좋다고 만화경도 사서 만들어 버리는 나란 사람 ㅎ
아마 2021년 12월은 그간 해왔던 내 커리어에 대한 미련과 1월부터 새롭게 시작될 커리어에 대한 기대가 시시때때로 교차하는 달이 될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축구경기도 보는 것보다 내가 직접 축구를 뛰는게 좋았다. 누군가 멋지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걸 보면, '와 멋있다' 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멋지게 마스터해야지' 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개발 중인 콘텐츠 작업이 진행 중이라 예전 자료들을 찾아보는데, 과거의 나! 왜 이렇게 교안들을 잘 만들어뒀니! 그 당시엔 심한 자기검열과 자기비판으로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했다.
바라건대,
이제 남은 29일은 나의 퍼포먼스를 인정, 칭찬해주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쉼과 건강 재정비를 하는 균형의 나날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