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모습을 보면 그 에너지가 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켜서 좋고, 랩 하는 모습을 보면 창의적인 라임과 세상을 디스 하는 크리티컬 씽킹에 무릎을 팍 치게 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전율에 눈물이 난다.
지난 시즌에도 눈물 펑펑 쏟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싱어게인2가 어게인(다시) 시작됐다.
한국어에서 수동태는 없지만, 이 무대는 '시작됐다'고 표현하는게 맞다. 수동태로 삶을 살아가던 이름 있는 무명의 영혼들이, 드디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2화를 보며 뭔가 찌릿했다.
'저건, 나의 이야기다.' 싶었다.
특히 이 파트부터.
"왜 자신을 초식동물 같은 가수라고 하셨어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저는 발톱도 없고 이빨도 없는 초식동물 같아서요."
(기억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원래 말씀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예술가다.
근데 생존이라는 현실의 정글에 내던져지면서 각자 다른 양상으로 삶을 버텨나가야 한다.
나는 강사 씬에서 그룹원으로서 5년, 혼자 7년 총 12년을 버텼다. 직장인 밴드 보컬로도 3년간 활동했었던 나는 순수 가수로만 공연하며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생계라는 현실 앞에 사회인을 선택했지만 늘 한편엔 공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래서 강의를 또 하나의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전 리허설하고, 장비 체크하고, 핀 조명 신경 쓰고, 무대 동선 확인하고, 공연 시작하고선 관객들을 바라보며 함께 호흡한 것처럼 강의도 종합예술이라 생각하고 기획-개발-진행해왔다.
강의 차 마이크를 잡으면 노래하는 것 같아 좋았고, 실제로 강의하면서 노래도 몇 번 했다. 강단이 곧 나의 무대였고 내 공연장이어서 즐거웠다. 사실 낯가리는 '외향형 가면을 쓴 나'이지만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면, 그 희열에 애드립도 술술 나왔다. 강의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나의 공연, 아니 강의에 백 프로 만족한 적은 없었다. 교육담당자도 참여자들도 다 좋았다고 해도 나는 더 원했다. 더 준비하지 못한 나를 책망했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늘 가슴 한켠이 돌덩이 얹은 듯 답답했고 점점 뻐근해졌다. 사람들은 나보고 '왜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만 좀 내달리라'는 충고도 많이 했다. '브레이크가 안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번아웃이 자주 왔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늘 나의 잠을 내어주고 결과물을 향해 내달렸다.
난 왜 그렇게 나를 갈아 넣으면서까지 나를 증명하려고 애썼지?
오늘 싱어게인2 무대를 보며 깨달았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전자처럼 살아왔구나.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나'를 증명해내고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늘 조마조마하고 안간힘을 쓰는 오디션 출전차처럼 아등바등 살았구나.
최근에 어떤 계기로 공공기관에 입사지원서를 내면서 못내 서러웠다. 2010, 2011, 2017~2021년까지 내가 홀로 다양하게 자립해왔던 이력은 공적으로 증빙된 서류가 없기 때문에 철저히 경력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강사 씬에서 활발하게 육아휴직도 없이 고군분투해왔는데, 나름 이 정도면 많이 불리는 이름이 있는 강사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관에선 프리랜서의 근무시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로지 페이퍼에 적힌 시간만이 내가 실제로 존재한 시간으로 인정되었다.
무대에 설 때마다 혼신을 다해 본인을 증명해야 하는, 언제나 신인일 수밖에 없는 20년 차 무명가수, 17호 가 '일어나'를 부르는데 왠지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았다.
34호: 무명이 슬픈 이유는 계속하지 못하게 될까 봐예요. 재야의 고수 팀이 제일 많다는 건 그만큼 훌륭한 분들이 많다는 거잖아요. 알려지지 않은
강의를 의뢰받을 때마다 혼신을 다했던 건, 계속 강의를 하고 싶은데 이게 마지막이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흥미로운 건, 내가 만든 예전 자료를 데이터 참고 삼아 다시 뒤져보니 그때도 참 지금처럼 잘 만들었더라.
남들 다 하는 거 하기 싫고, 따라 하는 건 더 싫어서 늘 각색하고 자료도 늘 최신 데이터로 업데이트해서 새로 만들어왔다. 같은 주제의 강의를 반복한 적은 많아도, 한 번도 같은 강의를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젠 지쳤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애썼는데 더 내놓으라고 종용하는 생산성 위주의 사회에 지쳤다. 비대면으로 강의하며 현장에서의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 없고, 검은 화면만 바라보고 얘기하는 강의 씬에도 지쳤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자신의 길을 끊임없이, 묵묵히 만들고 걸어갔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내년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조직에 대한 기대는 없다.
하지만 이 세월을 버텨 온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있다. 어떤 씬에서든 나는 결국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