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나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라는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언가에 홀려서 운전대를 잡고 헤르만헤세의 '치유의 그림들' 전시장으로 달렸다. 내가 중학교 때 데미안으로 울림을 줬던 그 작가는, 몰랐는데 그림도 그렸던 것이다.
헤세도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나이가 사십이었다. 그 후로 죽을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그의 그림이 서정적이고 좋았지만 벽면에 붙여진 저 글자들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그래, 난 예술가야. 근데 왜 여지껏 생각만 하고 살았니?'
그리고도 1년이 흘렀다. 나란 사람은 쉬이 바뀌진 않는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꿈이 화가였다. 친구들도 "너는 미대 갈거지?"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어릴 때 우리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큰딸인 나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다. 미술을 지속하게 되면 뭔가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이 될거라는 생각에 괜히 스스로 접었다.
얼마 전 코칭을 받는데 갑자기 그 내면아이가 튀어나와서 말했다.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었는데 못 그렸었어요"
내 입밖으로 나오는 말을 내가 들으면서도 놀랐다.
'너 그렇게 그림 그리고 싶었어?'
망설이다가 12월을 몇 일 안 남겨뒀던 시점, 고민하던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를 등록해버렸다. 공심재에서 진행하는 오또잉! 커리큘럼이 어찌나 세세하고 네달간의 여정이 어찌나 섬세하던지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1월4일, 오늘이 클래스 첫날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첫날답게 바로 그리기보다는 그리는 마음에 대한 글과 영상을 첨부해주셨다. 첫번째 영상은 그림유투버? 이연님의 영상이었는데 이 말이 내 맘을 사로잡았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불안은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해결된답니다. 그림그릴 기분이 아니야 할때 그려보세요. 그림으로 말한다는건 멋진일이예요..낙서가 쌓이면 표현력이 됩니다." (영상 멘트 순서와 약간 다를 수 있음)
그래, '막연히 내가 그림 그릴 수 있겠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선이라도 하나 그어봐야지. 4B연필과 잠자리지우개는 준비됐으니 내일은 내 손으로 하얀 종이 위를 춤춰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