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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Jan 19. 2021

애매함이 특색이 되는 시대

30호의 올어게인이 주는 의미

요즘 가장 즐겨보는, 아니 일주일 중 처음으로 월요일을 기다리게 한 프로그램은 #싱어게인 이다. 나 스스로도 워낙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데다 한때 직장인 밴드 보컬로 3년간 버스킹 하며 현실의 벽도 체감했던 터라 '찐 무명전', 무명가수전이라는 컨셉에 첫 화부터 끌렸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 그렇듯이 사연 없는 팀 없고, 호불호도 생기기 마련이다. 응원하게 되는 가수도 있고 심사평에 강하게 저항하게도 된다. '이 방송국 놈들~'하면서.


특히 큰 저항이 생겼던 장면은 (나에게는) 지난 3라운드의 30호 무대에서 나왔다. 원곡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TV로 전파를 받아 보는 사람들조차 락 페스티벌 무대로 보내버렸던 ♪치티치티뱅뱅♬ 무대에 심사위원들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족보가 어딨는 음악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현장에서 무대를 직접 보고 받은 충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다.

누구한테는 지르라고 하고 누구에게는 지르지 말라하고, 특색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특별하면 이상하다고 하는 진짜 이상한 경연심사의 세계. 어쩌면 이런 심사위원들의 눈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극심한 경쟁사회의 축소판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 괜한 반발심이 드는 걸 지도.


오늘 4라운드 경연에서도 역시 기대되는 건 30호의 무대였다. 지난 화에서 보여줄 듯하다 안 보여줘서 애간장을 태웠건만, 오늘도 편집을 참 기나게 했다. 여하튼 라임 형광색의 아우터에 개구쟁이 느낌의 헤어밴드를 한 30호의 모습은 등장부터 탄산수 같았다. 아~ 시원해.


시작 전 인터뷰에서 "나만의 색깔을 살리면서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30호 가수. 무대에선 노래 부르기 직전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애매한 사람입니다.
늘 경계선에 서 있었어요. 대중적이지도 않고... 하지만 그렇기에 그 애매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 좋게 올라왔지만, 이 밖에 수많은 72호님들을 위해 미리 주단을 깔아놓겠습니다.

이런 참가자의 말에 받아치는 MC 이승기의 멘트도 참 특색 있었다. "애매한 게 이렇게 임팩트 있을 거면 저도 그냥 애매하게 살래요."

출처: JTBC

무대는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내가 저기 화면에 뿌려지는 물감 같은 효과가 되어 그를 빛내고픈 마음이 들만큼 좋았다. 하지만 더 뭉클하고 좋았던 부분은 그 이후 장면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를 비롯, 다양한 멘트로 그를 칭송했다.

"너 누구야? 정말 잘하는구나?" "인정!"
"보통은 자신의 개성을 희미해지게 하면서 대중적이 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데 30호님은 처음으로 둘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요즘 내 최애 심사위원인) 작사가 김이나 씨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스스로를 애매하다고 하며 너무 겸손하게 자신을 억제하지 않아도 돼요. 이제는 칭찬과 사랑을 받아들이세요. 30호 가수님은 충분한 사람이에요." (방송에서 들은걸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거라 오차가 있을 수 있음)

이에 폭풍눈물을 쏟았던 30호 가수의 마음을 나는 왠지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맞는 건가. 내가 길을 잃은 건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괴리가 큰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구하고 싶은 나의 가치관.

그러면서도-너무나 당연한-'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이 이심전심으로 와 닿았다.


지금까지의 세상은 애매한 사람, 즉 경계선에 있거나 뚜렷한 특색이 없는 사람을 반기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겐 한 우물만 파라고 혼내거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사람에겐 낯설다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등 돌렸다.


내가 30호 가수에게 이렇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건 나 또한 호기심 천국 기질인 데다 '나는 정말 전문가라 할 수 있는가' 늘 반문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저쪽으로 확 넘어간 것도 아니고 이쪽에 푹 담근 것도 아니고 양발을 양쪽 아니, 사방에 문어발처럼 뻗치고 있는 나.


세상은 하나만 몰입해서 파도 부족하니 더 늦기 전에 얼른 선택과 집중을 라고 재촉한다. 이게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이다. 때문에 나도 내가 늘 애매하고 경계선에 서 있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건 뭘까? 생각하다가도 내가 시도하고 싶은 건 백만 개라 그 괴리를 차마 좁히기 어려웠다.


그래서 30호 가수의 올어게인은 내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애매하다 바라보는 그의 실험적인 음악세계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이제는 그가 지나온 길을 인정하고 수용해도 된다는 아낌없는 지지도 받았다.

덕분에 위안을 받았다. '이제는 이런 애매함(?)도 '특색' 혹은 '개성'이라 인정받는 시대가 왔구나'라는 기분 좋은 설렘이 일었다.

억제해왔던 자기 자신의 진짜 개성을 더더욱 표출해낼 그의 다음 주 무대가 벌써 기대된다.


무엇보다 무대 밖 72호들인 우리의 찐 인생도 기대된다. 애매함도 장르로 재해석되는 시대. 우리 각자가 가진 고유의 특별함이 평범해지지 않기를...나의 특별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내일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우리에게도 생기면 좋겠다. 참 아름다운 밤이다♬♪♬



#바람코치 #난다신 #사유의숲 #자기수용 #아티스트웨이 #우리는이미충분한사람이다 #우리는모두특별한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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