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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Jan 23. 2021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떼는 말이야, H.U.S.H.

요즘 요일 구분은 드라마 같은 TV프로로 하는거 아닌가? 금, 토는 '허쉬' 를 보는 재미로 산다. 기레기 스토리라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시청률도 높진 않지만, 적어도 내겐 옛날 생각 나는 소재다.


라떼는 말이야~


사회생활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어쩌다 인턴기자 생활을 캐나다에서 하게 됐었다. 번역기사를 시작으로 한 달 계약직이었던 인턴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6개월간 비즈니스 취재기사 쓰는 수습까지 하다 왔다.


사실 진짜 현장에서 뛰시는 현직 기자분들께 비하면 아주 새 발의 피 같은 경험담이겠지만 내 인생에 있어선 꽤 비중있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첫 사회경험

첫 월급

첫 취재

첫 르포기사

첫 단추...

등등 내 사회생활의 뜨거운 거름이 되어준 경험들이었다.


특히 내가 멋도 모르던 인턴 시절에 PC방에서 며칠간 잠복취재해서 써냈던 장문의 글이 의외로 호평을 받아 두 세 차례에 걸쳐 르포 기사 시리즈로 지면에 실렸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다.


현장이 두려울 때도 많았지만, 망설였던 다른 인턴기자와 달리 나는 못먹어도 일단 고! 를 선택했고, 선배들 눈칫밥 먹어가며 어깨너머로 실리는 기사작성법 등을 요령껏 터득했다.


내가 시간들여 조사하고 취재해서 심혈 기울여 쓴 기사가 데스크에서 킬Kill 당하거나 칼질 당하는건 순식간이어서, 나는 일했지만 지면에 내 이름 석자가 나가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었다.


나름 첫 독립해서 정말 자주독립적으로 지 펜끗발 믿고 살던 시기라, 자존심은 쓸데없이 높고 내공은 (지금 생각해보면) 하잘것 없었던 나. 편집장님이 얼마나 얄밉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약속 잡고, 외부 취재하고, 밤새 마감쳤던 경험 등은 한국에 돌아와 사회생활하는데 좋은 초석이 되었다.


드라마 허쉬를 보면 자꾸 그 때가 생각난다. 혈기왕성하고 뭣모르고 소신만 내세우고팠던 20대. 오늘 11화 방영분에선 정말 심장쫄깃하던 대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하여간, 문을 여는 곳마다 물음표 투성이라니까.


그렇다. 이제 갓 수습 단 신입 이지수 입장에선 도대체 왜 상부지시가 이렇게 떨어지는건지 '속셈' 은 알고 싶지만 깊은 계산은 어렵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년팀장 정세준 은 "취재한대로 소신껏 쓰면 되야..." 라며 지수를 다독인다. 사전적으로 '소신'이란 굳게 믿고 있는 바, 생각하는 바. 를 뜻한다. 하지만 신입에게 '소신'이란 무엇인가? 가져서는 큰일날 생각이다. 내 논조, 내 생각대로 썼다간 킬 당하거나(기사를 아예 못 내보내는 것), 회사(언론사)입장에 맞춰 내 소신과 다르게 편집당하기 일쑤다.


데스크 격이랄 수 있는 편집국장은 말한다.

"내가 어떤 기자인지는 내가 쓴 기사로 말하는거야"

이 말에도 실제와는 다른 우가 있다. 내가 쓴 기사로 말하려면 일단 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기사를 썼어도 글로 애쓰는 사람 따로, 말로 조지는 사람 따로다. 결국 실리는 글은 회사 입장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급쟁이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취지에 맞게 직장인들의 보이지 않는, 하지만 너무 만연한 신경전을 참 잘 다루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특히 언론사 배경이다 보니 팩트 체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현실에서도 중요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뉴스는(혹은 이 글은) 과연 사실인가 사기인가?
정보인가 홍보인가?

진실은???


P.S.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는 H.U.S.H.의 뜻은 이렇다.

H e said
U said
S he said
H ysterically...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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