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총 다섯번을 잠에서 깼다. 우리 숙소는 돌담밭 이층집인데 목조주택이라 바람의 압력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밤사이 혹시 내가 오즈의 나라로 가버리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바람에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심했다.
나는 다 큰 어린이니까 참을 수 있었지만 아직 자라는 어린이인 우리 아이들은 밤새 일어나서 내 방문을 열고 수시로 무서움을 표시했다. 첫날부터 넘어가지 않으리! 란 마음으로 단디 네 번을 으르고 달래어 재웠지만 마지막엔 결국 더블침대에 셋이 꼭 껴안고 잠든게 새벽 6시반...
오늘은 조금 더 자고 싶었는데, 1층에서 혼자 잘 잤으리라 사료되는 남편의 다소 거친 "일어나!!!"라는 기상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칼같이 8시 반에 우릴 깨운 남편. 아뿔싸~ 이 기상시간을 회의시간에 제의한 건 나였다. 그걸 가차없이 적용하는 FM남편 앞에 속절없이 당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젯밤 내가 혼자 부르짖었던 민주주의의 정의가 혼란스러워졌다. 다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유채꽃밭으로 갈 준비를 단행했다. '그래 노오란 유채꽃을 보고나면 기분이 좋아질거야~룰루랄라'
제 아무리 바람소리가 거칠어도 나가면 낫겠지 했던 나의 생각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현관문을 열었다가 문짝과 함께 바람에 세차게 내동그라진 후에 비로소 여기가 삼다도라는 것이 실감났다.
어찌저찌 출발을 했는데 차창 앞쪽에 작은 물방울들이 내리 꽂히길래 불안해졌다. 분명 일기예보에선 1시부터 강수량 63%, 이전엔 20%미만이라 잠도 못자고 나섰구만 비오믄 안돼~라는 텔레파시를 하늘로 보냈다.
우리의 목적지는 '성산유채꽃재배단지' 였다. 짱구네도 있고 일출봉유채꽃밭도 있고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다지만 블로그 등 사진 상 봤을때 가장 넓고 포토존도 아기자기한 곳이 그 곳이었다.
그럴때 있잖은가? "목적지에 도착하셨습니다" 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종료멘트가 너무 갑작스러울 때. 오늘이 딱 그랬다. 목적지라는데 주변에 뭐가 없다? 이렇게 유채꽃이 조금이라고? 황망한 마음에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고픈 생각이 앞선 엄마와 달리 너무 센 바람애 당황한 아이들은 차에서 내린지 5분도 안되어 칭얼댔다. 그때부터 계속 반복된 애들 작사작곡 후크송 '엄마 집에 가요~" OTL.
그래 어디를 둘러봐도, 1000원 지불장소도, 사진찍는 사람들도 없다면 내~ 앵글로 해결해보리! 삼각대를 비장하게 장착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성산일출봉 근처에 세워 놓은 뒤, 세심하게 각도를 조정했다. 블루투스 리모콘으로 찍고 확인하고를 여러번 반복한 후 벌써 지쳐버린 우리가족들.
나도 사정없이 내 뺨을 때려대는 바람이 너무 아팠지만 그보단 사진 욕심이 더 컸다. 애들을 세우고 썬그리도 씌우고 빨간베레모도 씌우고 손 흔들라 했다가 마스크 잠깐 벗고 찍자고 하는 사이 아이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하지만 나는 인생사진욕심에 눈이 멀었다. 계속 셔터를 누르는 내게 아들은 "엄마, 그만 좀 찍어요!" 라고 소리질렀고, 딸은 "엄마, 꼭 이쁘게 나와야 해요?" 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검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우리딸, 엄마가 너무 많은 요구를 해서 힘들었지? 미안해. 엄마가 사진찍는 걸 너무 좋아해서 미처 너희들 바람까지 못 챙겼네. 많이 서운했지?" "아녜요 엄마. 엄마 사진찍는거 좋아하시는거 알아요. 저는 그저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꼭 사진에 우리가 이쁘게 나와야 좋으신가 해서요." "음...... 네 말 듣고 생각해보니 사실 그것도 엄마 욕심이었던 거 같아. 너네는 있는 그 자체로 이쁜데 엄마는 왜 자꾸 '(남들 눈에)이뻐보이는 것' 만 생각하고 요구했을까......" "엄마, 그럼 카메라 저 줘보세요. 저도 찍고 싶어요---엄마, 입 내밀어 보세요~ 엄마 돌아보세요~ 엄마 이 꽃 제가 찍었어요."
아이들이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관찰하며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나도 편안해졌다. 나는 왜 그렇게 사진, 그것도 보이기 위한 or 멋져보이는 사진에 집착할까? 모든 사물과 생물은 있는 그대로도 충분한데. 나는 왜 자꾸 그것들을 정형화된 프레임에 가두었을까?
이런 깨달음 이후에도 신은희 씨는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될때까지 미친듯이 셔터를 눌러댔다고 한다...
덕분에? 렌트카 유효시간이 하루밖에 안남았지만 3시경에 속히 귀가했다고 한다.
오늘은 그래서 유채꽃밭만 갔냐고? 그럴리가. ㅎ 15일은 세화오일장이 열리는 장날이다. 시장이 있는 곳엔? 내가 있지! 이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