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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코치 신은희 May 08. 2021

피카소 보러갔다가 피봐쏘

아홉살 딸의 생선

이번 해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같이 사는 우리 딸의 탄생 9주년이기도 했다. 갤러리 투어 좋아했던 엄마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딸을 위해 일타쌍피 선물을 슈퍼얼리버드로 신청했으니, 바로 피카소 전이었다.

 

내 예상 시나리오는 완벽했다(늘 상상은 그렇지 아니한가).  딸이 오전 수업을 마치면 픽업해서 기분좋게 오월의 햇살을 맞으며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 대중교통을 두번 갈아타야 하지만 1시간20분 쯤이야 (이미 내겐 다 컸다 싶은) 아홉살 딸과는 도란도란 대화 나누며 순식간에 지나갈 줄 알았다. 평일인데다 코로나 상황이니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한적하게 미술관을 함께 거닐며 그림감상도 호젓하게 하고 돌아오면, 딸도 나도 넘 만족스런 데이트이리라.



현실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1차 복선은 초등학교의 재량휴업일.

어린이날 부터 지금까지 쭉 집에서 놀고계신 어린이느님들. 텐션 높은 이 고객님들 덕에 이미 40대 엄마의 에너지레벨은 간당간당.


2차 복선은 오늘 아침폭우! 

와~ 천둥번개에 미친듯 쏟아지는 1시간여의 바깥날씨를 보고 있자니 전의가 자꾸 새어나갔다. 둘째 유치원 데려다 주고 올때 이미 폭삭 젖어버린 탓도 한 몫.


3차 복선, 아니 이건 복선이라기보다 그냥 사건현장이었다. 예술의전당까지 여차저차 갔다.(그 사이의 많은 소소한 해프닝은 할많하않.) 한가람미술관으로 들어서기 전, 들려버린 한 엄마의 통화내용이 심상치 았다.


"어떡해, 큰일났어. 오전에 올걸 그랬나봐. 정말 일 났네."


우리가 사건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10분경.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은?


'와~ C, 대국민 눈치작전 대실패다!'

무슨 명절 놀이공원 줄 서듯이, 뱅글뱅글 눈앞이 어지러웠다. 온라인 티켓 예매자도 얄짤없이 줄 서야 한다. 굽이굽이 줄의 끝을 따라 2층 라운지까지 빽빽하게 뱀 모양으로 똬리를 튼 사람들. "1미터 간격 유지해주세요~" 라고 외치던 현장스태프가 불쌍해질 노릇이었다.


1미터 간격 유지하고 섰다간 4층까지 줄이 올라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1층 내려와서 안 사실인데, 매표소서 티켓팅하고 줄 서야한다!!! 스태프가 대신 잠깐 서 준덕에 얼른 티켓팅하고 돌아옴ㅠ)


덕분에 피카소 작품 관람하기 전에 오랜만에 사람구경 실 했다.

내 기준에서 괜춘하다 싶었던 웨이팅 방식은 책을 가져온 사람이었다. 긴 줄에도 여유로운 느낌으로 책에 몰두하는 모습이 심히 부러웠다. 그 다음으론 애들 없이 혼자 오거나 취향 맞는 사람끼리 온 부류. 하아, 북새통에 멀리 앉혀놓은 딸 주시하랴 줄 따라 가랴 정말 여기 왜 왔지? 하며 있던 피카소에 대한 애정도 사라질 판이었다.


줄은 생각보단 빨리 줄어드는 편이었지만, 2차전은 입장해서 시작이었다. 온라인 도슨트 구입을 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당췌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비키질 않는다. 게다가 한가람미술관 1층 전시실은 오목하고 아늑한 느낌의 방들로 구성이 되어있어서 한적할 땐 모르겠지만 오늘은 병목현상이 지대로였다. 안내하는 분의 "자유롭게 관람하셔도 되요~~~" 라는 메아리에 힘입어 키작은 딸을 델고 상대적으로 한산한 작품 사이를 비 사이로 막 가듯이 관람했다.


나도 우아하게 차려입고 와서 여유롭게 도슨트 들으며, 천천히 산책하듯 갤러를 거닐고 싶었다. 하필 난, 아홉살 딸의 생일 선물로 이 전시회를 택했고, 8월 말까지인 이 전시회의 오픈 완전 초기에 방문하는 우를 범했으며, 비가 온다는 핑계 하에 점심 이후에 도착 한 것이 큰 실수 아닌 실수였다.


스무살 때 파리에서 피카소 박물관 갔을 때랑은 정말 달랐던 오늘의 관람 소감.


1. 사후 140년 지나도 다른 나라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가 대인기를 끈다는걸 알면 피카소의 기분은 어떨까?


2. 반 고흐가 살아생전에 이처럼 좀 유명했다면 어땠을까?(갑자기? 응...최근에 영화 '소울''미스터 터너'를 연달아 본 탓이...)


3.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정말 피카소가 좋아서 온 걸까, 이 전시회에 방문한 자신을 포스팅하는게 기대되는 걸까?(벗어나지 못하는 1인 여기 추가요.)


4. 과연 이 전시회가 아홉살 딸의 생일선물로 적합한걸까? 괜히 피곤한델 엄마욕심으로 데려온건 아닐까?


5. 피카소의 작품세계는 그의 여성편력만큼이나 정말 넓고 깊었구나~ (작품과 그의 직업가치관, 예술혼은 존경! 사랑이라는 미명은 아쉽)




물론, 오늘의 내 소감은 엄청난 대 인파에 휩쓸려 극도로 피곤하고 예민해진 성깔에 덧대진 패브릭처럼 얼룩져있을 수 있다.


피카소 전은 좋았다.

만약 이 포스팅을 본 후, 가시려는 분께는 7,8월을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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