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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

미국생활

by BreeZE

미국에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내가 느끼는 미국 사람들은 알뜰하다.

알뜰하다고만 표현하기엔 좀 이상하고

물건을 오래 아껴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야 자고나면 바뀌는 것이 유행이고

그만큼 빠른 생산 배송 소비의 패턴이 만들어져 있다.눈 뜨면 새로운 물건이 눈에 뜨이고 클릭 하나면 반나절만에 내 눈앞에 놓일 수 있는데 신제품의 유혹을 어찌 못 본 척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참 한심할 정도로 배송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물론 비용을 대면 하루만에도 오지만 그러자고 수십불을 지출할 수는 없잖은가.

그러다 보니 직접 나가서 물건을 구매하게 되지만,원하는 사이즈니 디자인이 항상 있어주는 것도 아니다.운이 좋으면 한번에 찾기도 하지만 세일 하지 않는 가격으로 제값을 다주고 사기엔 비쌌다.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얘기들이긴하다.

결국 세일할 때 온라인 주문으로 구매 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지만 쉬핑비를 내지 않는다면 10일 정도는 기다려 줘야 한다.아마죤 같은 경우는 프라임 멤버쉽이라고 일년에 90불 정도를 내면 2-3일의 배송을 해주기도 한다.그러나 그것도 돈이 따로 드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물건을 사는 일이 간단치는 않다.마음에 드는 것을 싼 가격으로 제 때에 사는 것은 계획적인 구매가 아니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보다 물건이 흔한 미국이지만 각 시마다 8- 10%의 세금까지 붙은 물건을 함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그러다보니 좋은 물건을 계획적으로 구매하여 오래쓰는 일이 당연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다 생긴 티셔츠가 있었다.누구에게 주자니 마땅치도 않았고 그냥 밍밍한 티셔츠인데다가 사이즈도 맞지 않고해서 누구라도 가져가라고 문 밖 박스에 놓아두었더니 옆집 미국 할머니가 가져가셨다며 땡큐카드를 예쁘게 써서

인사를 전하셨다.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싼 가격의 셔츠 하나에 그런 인사를 하시다니..

한국에서 체육대회 같은 곳에 가면 기념품으로 주는 그런 셔츠였는데 말이다.

실링팬이 고장 나서 쓰레기통에 버려놓은 것도 한 시간 내에 누군가 가져갔고 고장이 나서 방치해 놓았던 자전거도 집 밖에 세워놓으니 가져가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하던 백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런 순간이면 내가 제대로 소비생활을 하고 있는건지 잠시 당황스러웠다.내 필요가 아니라고 내어놓은 물건을 두말없이 가져다 수리해서 쓰는 그들이 나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일이지만,

버리기 좋아하고 사기 좋아하는 내게 반성할 시간은 항상 주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세상을 일찌기 경험하고 빨리 쓰고 버리는데 익숙한 세대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자발적 가난을 택하지 않으면 쓰고 버릴 물건은 너무 많이 주위에 널려있다.반면,내 취향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사고 처분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물건들이 재활용되어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가정마다 빼곡히 차 있는 수많은 연장과 박스들의 용도를 알게 된것이다,Garage sale이 매일매일 어디서인가 열리고 내가 소중히 쓰던 물건들을 단 돈 $1에 팔아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알뜰함.그것이 더이상 구질구질하지 않고 너무나 소중한 미덕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물건을 쉬이 사고 금방 질려 쓰지 않던 내가 좀 더 오래두고 쓸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한 번 산 물건엔 예전에 느끼지 못한 애정을 듬뿍 느끼게 된 것이다.

버림으로써 가벼워 지는 게 인생이라지만

오래된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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