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다'라고 끝내고 말기에는 그 과정들이 험난했지만 워낙 오래된 얘기니 그냥 '했다'로 시작하려 한다.
그 과정을 풀어쓰다 보면 난 적어도 강산이 두 번 변한 그 예전의 것들을 소환할 거고 그러면 너무 옛날 사람 같은 서글픔이 들 것 같아서다.
난 요새 가끔 그냥도 저절로 서글프므로.
우리 부부는 참 다르다.
틀린 사람은 둘 중 누구도 없겠지만,
뭐 하나 함께 맞는 것이 없다.
유일하게 이 남자랑 잘 맞는다고 느끼는 부분이라면, 난 닭다리를 좋아하고 남편은 가슴살을 좋아해서 한 마리의 닭을 먹을 때 딱 좋다는 게 유일하다. 그나마도 먹성 좋은 아이들 먼저 차지해서 내가 먹으려면 닭다리는 남아있지 않아 소소한 기쁨을 느낄 기회도 줄었지만 말이다.
결혼 전에는 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다.
빨리 내 가정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 서둘렀는지, 이 남자와 안 맞는 부분이 많다는 걸 잘 못 느꼈다.
아니면 남편의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살아본 결과 남편은 상당히 강한 목표 지향형 인간이다.
만일 등산을 간다고 치자.
난 가다가 좋은 경치를 만나면 그곳이 나의 목적지가 되어 좋아진 기분에 내려오는 걸 서둘러 파전을 먹으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고 남편은 그 전 날 일찍 잠들어 컨디션을 조절하고 목적지로 정한 곳을 향해 전력투구하는 스타일이다,
이렇다 보니 난 항상 욕구를 거절당하는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된다.
신혼 때, 참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
아침에 눈 떠 한 이불속에서 밍그적거리며 느긋한 신혼놀이를 하며 잠을 깨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데 눈을 떠보면 이 남자는 없었다.
체력을 단련한다고 득달같이 일어나 아침 등산을 가고 없는 것이다.
주말은 주말대로 퇴근 후는 퇴근 후대로 남편은 항상 그만의 할 일이 있었다.
그때는 바깥일을 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그런 일들은 마땅히 이해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지만 남편은 함께 나누는 시간이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본인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 역시, 회사일은 절대 우위로 존중해 주었고 거기서 파생되는 골프니 술자리니 주말의 약속도 암묵적 동의로 우대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잠시의 시간이 생겨도
우린 함께할 얘기가 없었다.
어쩌다 생긴 시간에 함께할 무언가의 얘깃거리를 찾는 수고도 하기 싫었고 매일매일 생겨나는 사건들을 일일이 나열해 얘기해주는 친절도, 동떨어진 생활을 이해해주는 이해도 하기 귀찮았다
그만큼 다른 시간 속에서 살다 보니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오해만 단단히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참 싫었다.
아마 계속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그 생활을 이어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만 누구나 그렇다는 핑계로 내내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그것이 남편의 개인 성향이라 하더라도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주는 평범한 일상이라 자위하며 그렇게 살았을게다.
어쩌다 보니 외국에 나와 산다.
떨어져 보니 보인다.
내가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무성의하고 온기 없는 삭막한 시간이었는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드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시간 속에서 난 감동을 잃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나만이 상실의 시간을 산 건 아닐 게다
워낙에 다른 우리였지만, 그 시간을 좀 더 성의 있게 채웠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20년간 이어온 결혼생활이 허망함을 줄 때 , 예전의 기억에서 이 허전함을 메워줄 소소한 기억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
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
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님 즐거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