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이 별로 없었다.
일찍 한 결혼으로 집에서 주부로만 산 세월 덕분인 것 같다
아니,엄밀히 말하면 나의 꿈을 모르고 살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들이 성장하여 제 몫을 다하는 성인이 되면 소위 그것이 대학입시라는 종착역일지라도 그것으로 내 꿈을 이루는 것인양 살았던것도 같다.
꼭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워낙에 엄마들이 하는 역할이 많은 세대에 살아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그렇게 살았던거 같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갔다.
내가 사는 미국에선 대학 입학과 더불어 많은 아이들이 집을 떠난다.가깝게는 집에서 차로 대여섯 시간 떨어진 거리부터 멀게는 비행기로 5-6시간의 비행시간이 필요한 곳으로 간다.
어려서 내 옆에서 방실거리던 아이가 기숙사에서 쓸 짐들을 챙겨 떠날때 뿌듯함보다는 분리불안을 느끼는 아이처럼 내가 더 힘들었다.
원하던 대학으로 가는것이고 차로 6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생활권으로 가는 것인데도 그랬다.
그 아이가 가고 나니 내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남편과 아들이 내 곁에 남았지만,이민생활에서 딸이 나의 친구들을 대신해 보내 주던 밀도있던 시간들을 그들이 해줄수 없었다.
이민생활을 하다보니 딸과 엄마라는 역할보다 친구처럼 소소히 음식과 여가를 즐길 일이 많아졌었고 우린 꽤나 잘 지내는 모녀였다.
서러웠다.
갑자기 내가 딸을 키워온 18년의 세월이 갑자기 어디론가 몽땅 빨려들어간듯이 아무 기억도 생각도 안나고 허전함과 서러움과 왠지 모를 불안만 반복 교차되고 있었다.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심 데면데면 무반응의 3종 세트를 지니고 있는 남편 탓인가 싶어 하루가 멀다하고 시비를 걸어도 내 우울과 허무의 근원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를 닮은 아들은 내게
누나가 없으니 엄마의 과도한 관심이 쏠리는게 부담스럽다며 선을 그었고 이미 평정을 잃은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은 체 떠돌고 있었다..
결혼한 이후로 느껴본 가장 큰 상실감이었다.
헤쳐나갈 길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녁에 가끔 마시는 맥주가 아주 조그마한 위로를 주었다.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이었다,이 또한 지나갈 것이므로..
그러다 Fat tire 라는 맥주가 눈에 띄였다.
라거의 시원함속에 에일의 부드러움이 숨어있어 아주 맘에 들었다.그러다 우연히 라벨에 쓰여있는 문구를 본 순간, 나의 작은 꿈이 생각났다.
그 라벨에 이 맥주의 이름은 유럽을 자전거로 여행하던 추억을 기리는 의미라고 쓰여있었다.
결혼하기전의 나는 세계 어디론가를 여행하고 싶었다.더 넓은 세계에 가면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외국에 나와 살지만,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진 않는다.그저 이 곳은 그냥 또 내가 살아가야하는 현장이 된 것이다.
내겐 여전히 외국에 가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거기에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거란 기대감 때문은 아니다.
이제는 안다.
산다는 건 고통중에 한 번씩 생기는 기쁨을 맛보는 과정이란 걸 말이다.
난 그저 내게 조그마한 위로를 주는 ,내 젊은 날의 즐거웠던 시간일때는 빠지지 않던 .이제까지도 그 즐거움을 주는 맥주가 아주 많다는 유럽 나라들을 직접 가서 그 맥주들을 만나보고 싶다.그리고 그 쌉싸름한 맛을 보고 싶다.
이렇게하여 내게 작은 꿈이 하나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