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다
사계절이 있고 눈.비가 번갈아 내리는 곳에 살 때는 흐린 날은 그저 느낌없는 ,곧 비가 온다던지 눈이 올거라는 전조로만 여겨지는 그저 그런 회색 빛깔이었다.
그런데 일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살다보니 이 회색은 회색 이상의 의미를 주는 회색이다.
여기에 비라도 내리면 진짜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 이상의 축복이다.
오늘이 그런 회색이다
좋다.
나랑 다른 외국에 사는 친구랑 긴 통화를 했다.
그 애도 외국 나도 외국
내가 예전에 살던 한국을 기준으로 보면 둘 다 외국에 산다.
우연찮게 이민들을 갔는데 그래도 같은 대륙이다.
한국에서 아이 낳고 기를때는
동네가 달라도 한 번씩 얼굴보고 수다떨고 하는 절칠인데,
사는 곳이 다르다보니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 얘기를 하는데도
서로가 어리둥절했다.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보니 당연한 건데도 예전처럼 긴 수다를 마치고 나면 허전했다.
뭔가 아귀가 안맞는 문을 억지로 닫은 듯
얘기를 하긴 했는데 안한듯한
애매한 긴 통화를 했다.
처음엔 친구가 변했는지 알았다.
그렇지만 그 애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해야하는 수닷거리들이 항상 가득차 있는지라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보니 공감을 서로 하지 못해 생긴 분위기라는걸 알았다.
사는 곳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니 비슷하지만
적지않게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서로의 이야기에 무작정 수긍할 수는 없었던 거다.
그렇지만 친구와 나와 함께 쌓은 깊은 공감대가 있었기에 곧 서로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었다.
오늘도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나라 걱정 까지 긴 대화를 마치며 밥이라도 한 끼 뚝딱 먹고 헤어지는거리면 얼마나 좋으냐며 서로의 처지를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터전을 바꿔보지 않았다면
사람의 소중함을 덜 알았을 것 같다.
그와 반대로 터전을 바꿔 적응하다보니
사람의 변덕스러움과 냉정함도 느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배우의 수상식 소감처럼
사람이 함께 모여 같이 잘 살때
내 인생의 작은 순간들은 더 빛이 났던것 같다.
아들이 머리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옆에 앉으신 할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들어오실 때부터 수줍은 태도가 내가 여기서 보던 어르신들의 그것과 달라서 잠시 관심을 끌었던것같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멈추니 말을 살살 걸어오신다.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여기에 처음 오셨는데 미용사가 아들 머리를 잘 자르는것 같다며 당신은 남편 치과에 따라 왔다가 처음 들렀다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들이 머리 정리를 마쳐
예쁘게 손질하시라며 일어서는데
당신은 이곳에서 먼 동네에 사신다며 잘가라 하셨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거리가 꽤 있는 곳이었다.
그 순간 왠지 가슴이 찡해왔다.
어떻게 사셨을지 내 나름의 상상이 펼쳐졌다.
어눌한 한국말과 더 익숙해 보이는 영어
가만가만 당신이 사는 곳을 말하는 목소리에
내 모습이 오버랩된 것도 같다.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말도 통하지 않고 낯설기만 한 이곳에
그래도 자리잡고 적응해가는 내 모습이 ,
한 번 씩 한국에 나가
누군가와 얘기하다가
내가 하던 말
"난 멀리 살아요".
그 소리와 오버랩되었다
날씨와 내 맘이 참 잘 어울린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그리움은 회색이 아닐까싶다.
뚜렷이 기억나지도 않지만
선명하게 지워지지도 않은
회색빛 무채색.
내 그리움은 회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