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제법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짧은 나의 생각으로 세상의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스스로 판단하고, "이런 일은 이런 결과가 나올 거야!"라고 나 스스로 결정해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거 뭐 안 해봐도 뻔하지 않나?" 마인드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어제는 집에서 커피를 볶았다. 가끔 집에서 안사람이 산 원두를 볶곤 한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씩 집에서 커피를 볶다 보면 원두에서 생긴 껍질들이 온 집안에 날린다. 그래도 다 볶아진 커피를 갈아서 마시면 내가 방금 로스팅한 커피가 어떤 맛일까? 스스로 궁금해하면서 맛있는 이유를 찾아내곤 한다. 그런데 어제 로스팅한 커피는 덜 볶아졌는지 산미가 너무 강하다. 실패했다.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든다.
항상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별거 아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어떤 맛이 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다. 덜 볶아진 커피에서 나는 텁텁한 느낌을 솔직히 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더 약간의 좌절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맛을 보는데 커피 한 모금과 약간의 창피함이 같이 입으로 들어온다.
삶이란 게 내가 아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치 알고 있었던 일처럼 어리석게 구는 경우가 있다. 영화를 보다가도 주인공이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서 으스대는 것처럼 말이다. 아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결국 그렇게 되잖아." 내가 한 말들이 맞는 것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으쓱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별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바로 너머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은 늘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었는데, 난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고 미리 포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100년을 살았다고 한들 100년 이후의 삶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그냥 아는 척하는 것뿐이지.
앞으로 있을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척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다 아니깐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을 살면서 "미리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해두지는 말아야지."라고 말이다.
어떤 곳이라도 목적지로 가는 길도 미리 알고 있다고 건방을 떨면서 아는 길로만 다니는 바보처럼 살지는 말아야겠다. 어딘가를 향해서 가는 것을 너무 많이 포기했나 보다. 그냥 일단 출발하고 천천히 걸음을 시작하고 싶다. 길을 가던 중간에 처음에 갈려도 했던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목적지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걸어가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만나면 그냥 그것을 천천히 즐기면서 걸어야겠다. 미리 "난 저기까지 가지 못할 거니까."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보다는 즐겁지 않을까? 새로운 목적지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목적지를 바꾸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보자.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었나 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남들이 보는 시선도 모두 너무 많은 것들에 신경을 쓰면서 살았나 보다. 그냥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곳이면, 일단 출발해 보아야지 새로운 것들이 눈에 가슴에 들어오고 내 마음도 조금은 뛸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