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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an 14. 2024

채우기보다는 비우며 사는 삶의 가치

단순화할수록 행복해진다

 “당신이 상품을 위해 아무것도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상품입니다.”


 미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 딜레마, The Social Dilemma>를 보면,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콘텐츠에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어떻게 개인의 편향된 사고를 강화시키는지 나온다. 영화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의 개발자는 우리를 중독에 빠지게끔 만들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우리의 관심이 그들에게는 상품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를 묶어두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는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고, 우리를 계속 한쪽 방향으로 몰아간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일상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득하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너무 훌륭한 나머지 우리가 관심 있을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우리 앞에 가져다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옆에서 누군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정신없이! 더 복잡하게! 이런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욕망하도록 부추긴다. 


 나 또한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그러다가 ‘이제 그만 봐야겠다’라고 겨우 정신 차리기도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또다시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새로운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먹이를 찾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하이에나처럼, 도파민을 일으킬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하기 위해 미디어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진리가 있다. 바로, 쾌락에는 끝이 없다는 것. 하나의 쾌락이 충족되면, 이다음엔 또 다른 쾌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쾌락의 늪에 한 번 발을 담근 순간, 우리는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헤어 나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소셜 미디어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포털 사이트나 쇼핑 플랫폼도 알고리즘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서 ‘쇼핑 중독’에 빠지기 쉬운 환경을 제공한다. 여행이나, 만남도 마찬가지. 온라인상에서는 갖가지 여행 정보가 쏟아진다. 마치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우리를 안달 나게 만든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루트도 다양해지고 만남도 쉬워졌다. 온갖 소개팅 앱이 있고, 모임 앱도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게 만들고, 이 행위에 중독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 인생의 복잡도도 높아졌다. 


 내 인생도 이런 기술의 발달에 부응하여 30대 초반까지는 몹시 복잡했다. 직장에서는 맹목적으로 더 많은 업무를 소화하려 했고, 집에 오면 고자극의 콘텐츠를 즐겼고, 주말이면 쇼핑에 빠져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들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욕망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알 수 없는 두통과 복통이 계속 지속되어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내게 조금 특이한 처방전을 주었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몸이 한번 심하게 아프고 나서부터는 지나치게 많은 욕망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을 정리하고 비워내기로 했다. 직장에서 일을 벌이길 좋아하는 습관, 쌓아두기만 하고 안 쓰는 물건, 나를 좀먹는 관계, 의미 없는 술자리, 자극적인 콘텐츠로 의미 없이 버려지는 시간 등.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삶이 점점 단순해졌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있었는데, 오히려 정리하고 비우고 나니 후련함과 해방감이 들었다. 더불어 단순한 삶 속에서는 소소한 일도 내게 큰 기쁨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비우니까 풍성해졌다. 


 단순화하는 삶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자, 나는 내 삶에서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어떠한 행위를 했을 당시에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행위가 끝나고 나서 내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내게 진짜 좋은 사람은 만나고 나면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내 기분에 좋은 영향을 준다. 마치 좋은 와인을 마시고 나면, 와인잔에 좋은 잔향이 계속 남아있듯이. 진짜 좋은 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보고 난 후에 찝찝한 기분을 들게 하는 게 아니라,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나를 힐링시켜 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에 따라 내가 추구하는 삶의 규칙도 몇 가지 정했다.   


    다독과 속독보다는, 한 권의 책이라도 충분히 음미하며 읽을 것.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아갈 것.  

    많은 여행지를 분주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여행지라도 제대로 살아볼 것.  

    새로운 콘텐츠에 파묻혀있기 보다는, 매일 한 줄이라도 내 생각을 일기에 쓸 것.   

    의미 없이 인간관계를 확장하기보다는, 결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것.   


 그리고 나는 오늘도 더 풍성한 삶을 위하여 구호를 외친다. 

 더 적게! 더 느리게! 더 정신 있게! 더 단순하게! 



사진: UnsplashNordWood The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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