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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Sep 28. 2023

울퉁불퉁한 길로 가도 괜찮다는 것을 알 때

행복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선명한 빨간색 두 줄, 원치 않았던 결과였다. 코로나가 집요하게 안 걸린 사람을 찾아다닌다더니 대세에 따라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 공허한 눈으로 테스트기를 바라보며 짧은 신음을 토했다. 동시에 회사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떠올랐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낙담하려던 찰나에 옆에서 남편이 의외의 말을 건넸다.


 “다들 걸리는 시기에 자기도 같이 걸려서 오히려 다행이다. 코로나인데 심하게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아서 감사하고! 이참에 잘 쉬면서 단단해지면 좋겠다.”


 코로나에 걸렸는데 다행이고, 감사하고, 단단해지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너무 예쁜 말이잖아! 남편의 언어에 감탄했다. 언어는 관점으로부터 나오니까 남편의 관점에 감탄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남편은 평소에도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감사하다”, “다행이다”, ”오히려 잘됐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얼핏 보면 감사할 만한 게 있나 싶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치 시들어 가는 농작물 속에서도 씨앗을 보며 다음 수확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이런 남편의 곁에서 나는 모종의 안정감을 느꼈다. 팬데믹의 혼돈 속에서도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니까. 


 되돌아보면 인생이 항상 좋을 수는 없는데, 나는 내 인생이 좋은 일로만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나는 고통을 자주 거부했다. 울퉁불퉁한 길로 가도 괜찮다는 걸 알지 못했다. 늘 좋은 것만 추구하는 내 태도는 험한 길을 만났을 때 나를 속절없이 무너지게 했다. ‘맙소사. 내가 이런 길을 만났다니, 믿을 수 없어!’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갈구하는 태도는 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문득 행복지수 1위라고 알려진 덴마크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들은 아마도 삶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대였다. 오히려 삶에 대해 매우 낮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고,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산다고 했다. 그들은 언제든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실패를 잘 견딘다고.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방어적 비관주의’라고 명명했다. 


 나는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늘 행복을 좇는 나와 달리 그들은 울퉁불퉁한 길도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심지어 원래 그 길을 가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덴마크 사람들의 인생을 엿보면서, 행복과 불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내가 깨달은 의미는 이랬다. 


 행복해지려는 자, 불행할 것이다. 

 불행을 기꺼워하는 자, 행복해질 것이다.


 내게 온 코로나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아픈 건 정말이지 별로고, 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건 여실했다. 그러나 코로나 덕분에 방치했던 나를 더 돌볼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분주했던 마음도 정리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코로나가 나를 찾아와줘서 정말로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행복할 ‘역량’이 있는 사람은 단순히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에 다양한 굴곡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인 듯싶다. 얼핏 보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의미를 캐내고, 다듬어서 보석으로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평탄한 길이 더 좋다. 그러나 이제는 울퉁불퉁한 길을 조금 걸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산다. 평탄한 길도 좋지만, 성장의 동력과 삶의 의미는 오히려 울퉁불퉁하고 거친 길에서 찾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은 울퉁불퉁한 길이 우리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비밀을.  


사진: UnsplashAmel Majan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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