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너는 너
소셜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훌륭한 편집자이자, 연출자다. 어쩜 그리 다들 자신의 삶을 완벽해 보이도록 하는 능력이 뛰어난지. 어느 순간부터 소셜 미디어, 특히 인스타그램이 피로하다고 느끼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관심이 끌기 위한 행위는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게시물을 올리는 입장에서도, 올라온 게시물을 보는 입장에서도.
내가 20대 때, 소셜 미디어는 종종 나를 함정에 빠뜨리곤 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나보다 잘 사는 친구를 보면 부러웠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음식을 먹는 친구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부러워하는 마음은 자주 질투로 바뀌었다. 내 삶의 모습과 다른 사람 삶의 모습에서 차이가 크다고 느껴질수록 마음은 더 뾰족해졌다. 그리곤 애써 부정했다. 저렇게 좋은 곳에 놀러 다니고, 삶이 좋아 보이는 건, 분명 본인은 무능력한데 부모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을 거라고. 지금은 호화로워 보이지만 언젠가는 크게 자빠질 거라고. 이런 시궁창 같은 생각을 하면서 색안경을 단단히 꼈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만 같았다. 소셜 미디어를 하면 할수록 잘 사는 이들에 대한 르상티망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은연중에 좋아 보이는 것만 올리고 있었다. “나는 매일 명품을 올리는 너희와는 달라.” 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명품을 안 올리는 게 아니라, 못 올리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로. 어쩌다 좋은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보다는 어떻게 사진을 ‘있어 보이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까를 고민했다. 여행에 가서 수영을 할 때도 온전히 수영을 즐기기보다는 어떻게 내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이 예쁘게 나올 수 있을까를 과도하게 신경 썼다.
어느 날에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존재하되, 드러내지는 말라’던 유럽의 어느 브랜드 모토와는 달리 나는 존재 이상으로 나를 드러내고 있었다. 뒤늦게 발견한 내 모습이 몹시 창피했다. 그래서 이전에 올렸던 게시물을 다 삭제해 버리고, 한동안은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직장에서 마케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소셜 미디어를 하게 되었다. 과거에 소셜 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나름 즐거웠던 기억도 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게시물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좋아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올리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게시물 하나를 올리는 데에 꽤 많은 고심이 필요했다. 나의 소중한 순간을 남기며 공유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남들이 질투할 만한 건 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했다. 심각할 때는 게시물 하나를 올리는 데에 1시간 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곤 애꿎은 남자 친구를 괴롭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진 여러 장을 두고 이 사진이 나은지, 저 사진이 나은지를 묻다가, 아까는 맘에 안 든다고 했던 사진에 다시 미련을 두었다가, 배경은 별로인데 내가 잘 나온 사진은 어떠냐고 묻다가, 반대로 배경은 잘 나왔는데 나는 아쉽게 나온 사진이 더 나을지를 묻다가, 결국 남자 친구가 “마음대로 해~ 자기 마음에 드는 걸로 해야지.” 라고 말하면, 더 성의 있게 봐달라며 성가시게 굴었다. 참지 못한 남자 친구가 대체 게시물이 뭐라고 이렇게 쓸데없이 고민하냐는 말을 해야 비로소 ‘남들에게 보여줄 사진 고르기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아니이…그래도 이왕 내 소식을 올리는 거 나에게도 보기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기 좋은 걸 올리면 좋잖아.”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작은 화면에 갇혀있는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나는 애송이였다. 오히려 소셜 미디어를 전혀 하지 않는 남자 친구가 현명했다. 나 같은 인간에게는 소셜 미디어가 독이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완벽해지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그런 인간.
돌이켜보면 인스타그램은 인생을 보정해주는 하나의 ‘필터’ 같다. 이 필터는 성능이 대단해서 인생을 예쁘게 보정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하게 보정한다. 사람들의 인생에 ‘인스타그램’이라는 필터를 끼우면 좋은 것으로만 가득해진다. 인생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좋은 것에 파묻혀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내 인생이 잘못된 것 같고, 불행하다는 현혹에 빠지기도 한다. 자꾸만 비교하는 마음과 자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나를 순식간에 불행자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비교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비교하는 마음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연결되어 있어서 아예 안 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부정적 비교’와 ‘긍정적 비교’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쟤는 있는데 나는 없으니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부정적 비교다. 반면에 “쟤는 저렇게 멋지구나!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라며 자극받고 도전심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 비교다. 그리고 가장 피해야 할 건 ‘무턱대고 비교’다.
비교를 안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때는 적어도 나만의 기준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저 사람은 멋지지!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면 만족하겠다”라는 나만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남들보다 앞서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때 찾아오니까.
다른 이들의 화려한 삶에 현혹되지 말고, 내 삶에 집중해 보자.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해 보자.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갈 때 가장 행복해진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신이다.” - 이채의 아빠 -
사진: Unsplash의Adeolu Ele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