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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ul 03. 2023

친구가 로또에 당첨되었다

로또를 사기 전에 알아야 할 것

 친구가 로또에 당첨되었다. 6개의 숫자 중 5개의 숫자가 일치했고, 마지막 1개의 숫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정말 1등에 당첨되는 건가 싶었다. 아쉽게도 마지막 숫자가 불일치하고, 보너스 숫자도 불일치해서 3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날의 흥분한 친구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정말이지 세상 아쉬운 표정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다.


 옆에서 친구를 지켜보며 당첨 등수별로 만족도 조사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등은 당연히 만족할 테다. 2등과 3등은 숫자 1개 차이인데 3등이 이렇게 아쉬워한다면 2등은 억울해서 입원이라도 할 것 같다. 4등은 적당히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당첨 당시의 만족도는 제일 높을지도 모른다. 5등은 별 감흥 없이 당첨금으로 다시 로또를 살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로또 1등에 당첨될 ‘뻔한’ 친구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날의 흥분이 가라앉은 이후에 친구에게 물었다. 그때 진짜 1등에 당첨되었으면 뭐 하려고 했냐고. 친구는 “몰라, 그건 당첨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라고 했다. 친구의 대답은 마치 어차피 그럴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를 전제로 하는 듯했다.


 토요일 저녁만 되면 집 근처 로또 명당 앞에서 사람들이 홀린 듯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걸 보면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은 마치 희망에 찬 사람들 같기도 하고, 분노에 찬 사람들 같기도 했다.


 나는 로또에 관심이 없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그 ‘어느 날’은 직장에서 매우 힘들었던 날로 기억한다. 나의 로또 구매 행위에는 ‘로또만 당첨되면 직장은 바로 그만둔다’라는 현실 도피성 염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로또를 구매하는 빈도수는 높아져 갔다. 나 또한 길게 늘어선 로또 명당의 줄에서 ‘희망찬 분노자’ 중 한 사람이었다.


 희망찬 분노자는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매주 로또 예찬론자처럼 살아간다. 현재의 삶에 자족하며 행복을 찾기보다, 자신의 운에 지갑을 맡겨버린다. 무서운 믿음이다. 나는 매주 로또를 사더라도 도박과 같이 재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로또 구매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었다. 이 행위 자체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헛된 희망으로 로또의 뒤꽁무니를 쫓던 나는 인생이 더욱 불행하다고 느꼈다. 갈구하면 할수록 현실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로또만 당첨되면 소원이 없을텐데...!’라고 생각하며 매주 로또에 당첨되는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문득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찾아보니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로또를 했을 때의 가장 큰 불행은 ‘실제로 당첨이 되었을 때의 불행’이었다. ‘로또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첨자는 불행했다. 물론 원래 잘 살던 사람이 당첨되거나,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금액에 당첨된 경우에는 기존과 동일하게 일상을 잘 유지하면서 더 잘살게 되는 케이스도 있었지만 매우 드물었다.  


 당첨자의 불행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실제로 당첨이 되었을 때의 흥분과 동시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이 소란은 당첨금을 찾으러 간 은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 가지 상품을 권유하며 어떻게든 당첨금을 내어 주지 않으려는 은행과 대치하게 된다. 이후로 가족과 지인들이 당첨 소식을 알게 되면서 당첨자를 향한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여기저기 생기고, 혈연이니까 당연히 돈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족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런 소란함 속에서 주변과의 관계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혈연관계가 끊어지기도 하고, 이혼하기도 한다. 수중에 갑작스럽게 큰돈이 들어오니 흥청망청 돈을 다 써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돈을 버는 건 그토록 어려웠는데, 돈을 쓰는 건 이토록 쉬웠던가. 그 많던 돈이 엉뚱한 투자나 무절제한 과소비로 인해 곧 바닥을 드러낸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후 당첨자들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사기 치거나, 파산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당신이 아직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큰 축복이다.


 당첨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왜 불행이 찾아올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풍요롭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또 당첨자 중 대다수가 파산한다는 통계 자료를 보았다. 이들은 일확천금을 바랄 줄만 알고, 다룰 줄은 몰랐다.


 정신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상태에서 일확천금이 생기게 되면, 건설적인 방식으로 재정을 관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물질적인 풍요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로또를 습관처럼 즐겨하지 않는다.


 어쩌면 습관적으로 로또를 사는 행위는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현실이 너무 힘겨워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히려 반유토피아를 추구하라고 쉬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로또를 사기 전에 한 번쯤은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매주 헛된 희망으로 자기 자신을 더 고달프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물질적 풍요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맹신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다. 행복한 삶을 위해 로또라는 희박한 확률에 기대기보다는 내 일상을 돌보는 힘부터 길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도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그때 네가 로또 1등에 당첨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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