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Jan 07. 2024

남들의 기대에 자신을 밀어넣지 말 것

당신 자신이 되는 삶을 살기를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지인은 아들의 문제로 종종 속상해했다. 이유는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는 질문으로 종종 선생님을 난감하게 했다. 또 주의가 산만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자주 핀잔을 주었다.


 그러다가 가족이 다 같이 미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 그곳에서 아이에 대한 평이 달라지는 걸 경험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문제아’ 취급했지만, 미국에서는 ‘독창적인 아이’로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미국에서라도 인정받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받은 인정은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이어져 영향을 주니까.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다름을 싫어할까? 생각해 보면 한국은 유독 남들 눈치를 많이 ‘본’다. 동시에 남들에게 눈치를 많이 ‘준’다. 마치 상대의 삶을 저당 잡아 놓은 것처럼 거리낌 없이 상대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언제 대학가니? 언제 취직하니? 언제 결혼하니? 언제 애낳니? 언제 둘째낳니? 언제 셋째낳니? 언제까지 낳니? ‘언제무새’들은 우리의 삶이 평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참지 못한다. 


 더불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집단주의 성향이 내려오다 보니, 개인의 개성이나 가치관이 침해받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회는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두는 것에 그다지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듯싶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집단의 가치관이 사실은 개개인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도 주변을 둘러보면, ‘착한 아이 증후군’을 지닌 이들이 많다. 이들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고, 미움을 받게 될까 봐 “no”를 잘 외치지 못한다.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너는 왜 그래?”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임으로 최대한 튀지 않고, 자신의 삶을 남들의 기대라는 틀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만다. 


 나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을 잘 안 듣는 축에 속하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치 않은 일을 부모님 때문에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느낄 ‘내 행복의 크기’보다 ‘부모님의 불행의 크기’가 더 크지 않을까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모님이 “잘한다, 잘한다”를 외쳐주시면, 기어코 나는 회심한 청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한국에 출시되자마자 온갖 랭킹을 싹쓸이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이것이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 문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우리가 얼마나 남을 의식하느라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는지, 동시에 그간 얼마나 남들의 삶에 아무렇지 않게 관여해 왔는지 반추하게 된다. 


 물론 적극적으로 미움받으려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남들과 등질 필요는 없지만, 남들의 요구를 듣기 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맞는지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현재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내 삶이 남들의 기대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이를 끊어내지 못하면, 내 인생에 개입하려는 이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결국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의 나는 누군가 내 인생에 개입하려 들면, 오히려 너스레를 떤다. 마치 내 인생에 ‘네가 보태준 거 있냐’는 태도나 ‘그래서 앞으로 네가 보태줄 거냐’는 태도로. 예를 들어 “남편 밥은 잘 차려주니?”라는 말에는 “어유~ 저는 돈 버느라 바빠서요. 대신 좀 차려주실래요?”라고 답한다. “아이는 낳아야지?”라는 말에는 “꼭 낳아 주실 것처럼 이야기하시네요? 그런 건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할게요!”라고 답한다. 그러다가 상대가 뿔이 나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난 뿔은 스스로가 풀어야 할 일이다. 상대가 뿔나는 게 싫거나 두려워서 내가 원치 않는 삶을 사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살 것!

 남들이 좋아하거나, 남들이 바라는 모습 말고. 

 




“모든 불행은 남의 눈을 의식할 때 온다.”

- 쇼펜하우어 -



사진: UnsplashDiversity Photos

                    

이전 04화 울퉁불퉁한 길로 가도 괜찮다는 것을 알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