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Jun 26. 2023

이 정도면 괜찮은 공허함은 없다

우주를 떠도는 영혼의 지구 귀환 대작전

 야근이 끝나자, 주말 출근이 이어졌다.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던 그 시기엔 밤낮 없이 일에 나를 쏟아부었다. 다행히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특히 내가 주도했던 디지털 마케팅은 매체 성공 사례로도 등재될 만큼 성과가 좋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마케팅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위에서는 애초에 설정했던 목표와는 전혀 다른 뷰를 가지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번 브랜딩으로 얼마나 수익을 냈는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캠페인을 총괄하던 CMO마저 퇴사했다. 끝내 이 캠페인은 ‘실패한 캠페인’이라는 최종 낙인이 찍혔다.   


 뭘 위해서 그렇게 쏟아부었나 싶어 허무감이 들었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우리 집 대출을 생각하니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전처럼 열심히 달렸다. 그러던 중, 공허함이 불쑥 나를 덮쳤다. 나는 괜찮은 상태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 인생에서 일을 빼면 뭐가 남을까? 그리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다. 


 ‘직장인이 아닌 나’로는 특별히 다른 정체성이 없다고 느꼈다. 나는 회사 대표도 아닌데 회사를 삶의 전부처럼 여기고, 회사에 마음을 많이 썼다. 회사가 없으면, 나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자아를 상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나를 광활한 우주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공허함으로 영혼이 아우성치자, 나는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대개는 임시방편으로써 쉽고 빠른 자극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 ‘필요 이상의 쇼핑’이 그랬다. 내 쇼핑 활동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니까’라는 한 마디로 정당화되었다.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열심히 성과를 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그만큼 보상해 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나 자신에게 보상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진지하게 쇼핑 중독 테스트를 해보라고 내게 권유했다. 테스트를 시작하면서도 “에이, 그래도 중독까지는 아니지.”라며 소심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 경미한 쇼핑 중독 증세가 있었다. 공허함에 대항하려고 했던 알량한 쇼핑 행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까지 잉태한 것이었다. 


 ‘공허함’과 ‘중독’의 2세대에 걸친 공격은 내 영혼을 완벽하게 함락시켰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 없듯이, 공허하다고 아무것으로나 채워버리니 역효과만 유발할 뿐이었다. 내 영혼은 진정한 만족감을 누리지 못한 채로 더 허기져갔다. 태양계를 떠돌던 나는 이제 은하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지구 귀환 작전이 시급했다. 


 우선 나는 ‘쇼핑 중독’부터 끊어야 했다. 적어도 은하계에서 다시 태양계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단순히 쇼핑을 끊는 행위만으로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듯했다. 지구로의 귀환을 위해서는 더 강력한 소환술이 필요했다. 진정으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 필요했다. 나는 다시 자문했다. 내 영혼이 진짜로 원하는 일이 뭘까? 


 회사 일을 제외하고도 좋아하는 것이 꽤 여러 가지가 있었다. 글 쓰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동물과 교감하고 먹이 주는 것, 새로운 곳으로 여행 가는 것, 인생 영화를 다시 보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 보는 것 등. 


 그리고 영혼의 본질적 만족을 위해서 이런 것들을 하는 시간을 따로 빼두기로 했다. 퇴근 후에는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주말 중 하루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잡아두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자주 행복하기 위한 작은 이벤트를 계속 만들었고, 태양계에 있던 나를 서서히 끌어들였다. 드디어 영혼이 지구로 귀환했다. 


 요즘의 나는 조금이라도 공허한 마음이 들려고 할 때면, 영혼을 응시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무엇에 정신이 팔려서 영혼을 허기지게 했는지 돌아본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확인하고, 마음이 있는 곳에 에너지를 쏟는다. 나의 본질을 잊지 않을 때, 나로서 온전히 충만할 때, 내 삶에 공허함이 끼어들 틈이 없어지니까. 



사진: UnsplashVincenzo Malagol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