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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Jan 27. 2024

삶의 기쁨도 슬픔도 모두 끌어안을 것

때론 기쁨의 춤을 추고, 때론 슬픔을 즐기기도

 나는 드라이브만 하면 생각에 여과기가 없어지고, 아무 말이나 해대는 버릇이 있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마음을 덮고 있던 겉옷도 같이 날아가 버리나 싶다. 친구와 함께 드라이브하던 그날도 마음이 나체 상태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날것의 생각을 불쑥 꺼냈다.


 “삶에는 영구한 기쁨도 없고, 영구한 슬픔도 없잖아. 그럼 좋은 일에 크게 기뻐할 것도 없고, 안 좋은 일에 크게 슬퍼할 것도 없지 않아?”


 내 말에 친구가 답했다.


 “그럼 사는 게 무슨 재미야? 난 기쁠 땐 엄청 기뻐하고, 슬플 땐 또 슬픔 그대로를 즐겨. 내 안에 들어오는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거지. 그래서 새로운 감정이 나를 찾아올 때, 그 감정이 반가워. 그게 좋은 감정이든, 안 좋은 감정이든, 날 찾아오는 모든 감정이 소중해.”


 친구의 말은 그럴싸했다. “오…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슬픔도 즐긴다니…너는 변태가 분명하구나…!’ 하지만 묘하게 친구가 멋졌다. 기쁜 감정은 그렇다 쳐도, 슬픈 감정마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친구의 모습이 변태 맞지만, 동시에 ‘진짜 어른’ 같았다.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표출하는 것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점을 내보이는 것 같이 느꼈다. 특히 슬픔은 더더욱 그랬다. 우리집에서는 이유가 뭐든 간에 ‘울면 혼나는’ 집이었다. 그래서 눈물을 보이는 일에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천천히 감정을 억눌러 왔고, 내가 느끼는 감정의 대부분은 밀도가 낮았다. 내 감정이 뭔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조차도 잘 모르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삶이 생기가 없이 단조로워지고, 무슨 일을 하든 감흥이 잘 안 생겼다. 뭘 해도 호응이 없는 방청객처럼 내 삶을 놓고 구경했다.


 얼마 전엔 회사에서 동료가 내게 슬픈 칭찬을 했다. “이현님은 감정 기복이 정말 없어요. 늘 안정적이신 것 같아요!” 가면을 쓰는 일은 참 쉽다. 나는 일할 때 의도적으로 어떠한 감정도 지니지 않으려하고, 감정이 생겨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서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거나, 남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게 싫으니까.


 이런 태도가 직장생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확신해 왔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인 삶에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기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슬픔도 맘껏 표출하지 못하는 내가 조금 불쌍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친구들을 보니, 감정의 빈부격차가 느껴져 내 삶이 더 메말라 보였다.


 나도 내 감정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을까? 당장에 감정 부자로 살 순 없어도, 적어도 감정이 찾아왔을 때 내쫓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싶어서 매일 감정에 대한 일기를 구체적으로 썼다. 그리고 새로운 감정이 생기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체성이 흐리멍덩했던 감정들이 일기를 통해 분명해졌고, 그동안 회피해왔던 내 감정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은 계속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쓴 일기들을 시계열로 놓고 조망해 보니, 기쁨은 언젠가 슬픔이 되기도 하고, 슬픔은 언젠가 기쁨이 되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은 애초에 좋다, 나쁘다로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감정의 순환 고리 어딘가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인생은 그렇게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정의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순환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감정의 순환 고리 안에서 자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인생에 선물과 같이 찾아오는 감정을 그 자체로 환영하기로 했다. 감정은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조미료와 같으니까. 그리고 감정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사람은 높은 정서 지능과 자존감을 지닐 수 있게 되니까.



사진: UnsplashJules 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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