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랜 말

본질은 흐려지더라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by 십일아

주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고비는 막는다고 비껴가지 않았다. 고비는 고난과 역경, 즉 힘듦이었기 때문에 빨리 이겨내서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더 얽히기만 할 뿐 고통의 시간은 길어졌다. 관건은 고비가 지나갈 때였으나, 나는 이때를 잘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오지도 않은 고비에 겁을 먹게 되고, 결국은 올 생각이 없는 고비조차 되려 불러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돌고도는 굴레였다. 분명 온 정신과 마음을 쏟아 벗어나려고 해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나쁘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나빠지는 것이 생각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더욱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사람마다 인생의 암흑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둠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둠을 관리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어둠에 잡아먹히는 존재였고, 가슴 한편에 붙잡아 놓은 어둠으로 틈만 나면 나를 찔러 상처를 냈다.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찔러, 흐르는 기억을 보는 것이 덜 아팠다. 그렇게 되뇌고 무참히 밟아내면 한순간은 잠잠했으니까. 다시 또 더 큰 후회가 나를 덮쳐왔지만 그러면 더 짙은 어둠으로 물들이면 되는 것이니까. 더 이상 물들일 하늘이 없다면 아니, 어두워지는 것조차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어둠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짓누르고, 조여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어두운 어둠을 안고서 나를 그토록 찌르다가도,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은 진심이 멍든 마음을 안았다.


언제나 무언가를 한다는 게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되뇌었고, 설령 나를 숨죽이게 하더라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같은데, 속은 텅텅 빈 것 같은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다. 결국 만들어 온 길은 없어지는 것인가, 다시 처음부터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불안이 다가왔다. 그렇게 또다시 복잡해진 내면에서 나는 감정들을 분별하기 위해 선을 긋고 그으며, 방해꾼들이 들이닥치지 못하게 방어를 했다. 그것이 눈앞에 놓인 과제였다. 그런데 그렇게 일일이 다 상대를 하고 있는데도 왜 인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쉬지 않는 방어가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고, 더 가둬버리고만 것이었다. 넘기는 데에만 급급했던 나는 갈수록 나아지지 않는 감정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여러 개의 짤막한 길들이 더 이상 가지 못할 길이 되어버린 것은 내가 그렇게 정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다시 이을 수 있는 선을 잠시 쉬었다고 선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린 건 나였다.


쫓기듯 끊어내는 조바심은 절대 여유를 데리고 올 수 없었으니, 감내해야 했다. 감내한다는 것은 무작정 힘듦을 버티고 고통을 참아내는 것만이 아니다. 결국 그 끝에 이겨내는 것이다.




여정의 답은 정해져있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한없이 망설이고 끊임없이 다독이며 끝을 맴돌았다.

한없이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한없이 멀어져야 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깨닫는다는 건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순간의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이 내가 부정해오던 것이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든 말이다.


숨을 죽이고 모든 것을 걷어냈더니, 무언가 반짝였다.

단 하나, 그 순간 깊이 파고든 무언갈 끄집어냈다.

혼란 속에서 찾아낸 빛이었다.

아무리 캄캄할지라도 언제나 빛은 존재했고, 어둠 속에 가렸다 할지라도 빛은 온전히 제 할 일을 해 나갔다.

진심은 그렇게 변함없이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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