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것이 돌아갈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밀려오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또렷해지는 정신을 애써 무시했다. 잡은 만큼 비껴가는 것들도 있을 거라며, 확신에 찬 말들로 속삭였지만 뚜렷하지 못했던 마음은 끝내 막연함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마치 모든 것이 삭제된 것처럼,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어렴풋한 향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잊히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듯이 보였지만 다른 차원 속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았다. 기억을 머금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말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강했지만 누르고 억누르다 집어삼켜진 소리는 침묵 속에 던져졌다. 그렇게 조용하게, 소리 없이, 잠자코 떠다니던 것들이 가려졌다.
걸어 잠근 자물쇠를 열고 이따금씩 하나 둘 꺼내보는 잠잠한 기억들과 막막한 기억들이 잔잔하지 않게 쓸려올 때면, 나는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없는 만만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엇갈리는 것들에 의미 따위란 없었다.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다는 말 따위는 꺼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래도 가끔씩은 잠긴 마음 앞에 서서 받을 수 없는 말들을 물었다. 지금의 마음이 그때의 기억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을까. 더 이상의 다짐이 필요치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면 모든 걸 놓아줄 수 있을까. 하며, 이제 와서라도 답답한 마음을 도려내고 싶어 했다.
밤의 끝자락, 어둠이 머금고 있던 빛을 토해내는 시간으로, 자욱이 깔린 안갯속 희미해진 별자리를 따라 기억이 감춰지는 순간으로 가고자 했으나, 흐릿하고 몽롱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아득하게 잠긴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