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늦은 거라면, 한두 번쯤은 돌아봐도 괜찮지 않아?

3.

by 십일아


멀쩡한 색을 입히자.

멀쩡한 말들을 적고, 멀쩡한 끈으로 묶어 멀쩡한 상자에 담자. 그래, 아무것도 아닌 듯 아무 일도 아닌 듯 내려놓자.

간혹 불안해질 때면 더 짙은 색으로 칠하고, 더 냉정한 말들을 적자. 더욱 꽉 묶어 소리칠 일 없게 깊은 상자에 실어 보내자.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주 무서운 것들이었으니까. 그것들을 예쁘게 포장했다면 그걸로 다행인 거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그건 결코 아쉬운 마음이 아닐 테니까.

이젠 볼 수 없을 거야.

왠지 가여운 마음에 이제 와서 묶어버린 끈의 틈을 아무리 파고들어도. 단단히 묶여버린 마음은 작은 공간조차도 허용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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