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아웃, 풀업, 앙바 2

당신 정말 그 6만 원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by 이나무







개들을 처음 본 건 가게를 계약하러 갔던 그날이었다. 체감 온도가 40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가 연이어 울리던 날.



“신도시에서는 편의점 다음이 카페죠. 근데 아직 카페 입점은 아무도 없다니까요. 계획하고 계셨다면 얼른 선점하세요. 무조건이에요.”

부동산 소장은 은영과 나에게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내어주며 말했다.

“하자. 충분히 고민했잖아.”

표면에 물이 뚝뚝 흐르는 커피잔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은영이 말했다.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고 있어서 나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계약을 마치고 우리는 소장과 함께 근처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올 자리 뒤로 나지막한 산이, 그 산을 마주 보는 방향으로는 꽤 높은 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옆으로 푸르다 못해 시꺼먼 산들이 깊고 짙은 녹음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가 원래 그린벨트로 묶여있던 곳이었어요. 오래도록 조용했던 땅인데, 신도시 개발 얘기가 나오고부터는 이례적으로 진행이 빠른 곳이라 전국적으로도 화제가 됐었죠. 땅이 단단하다 하더라고요. 땅을 매립해서 짓는 다른 신도시들하고는 달라요.”

국밥을 다 먹고 나온 소장과 우리는 사정없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하천을 따라 걸었다. 하천은 상권이 형성될 대로변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 하천은 신도시 조성을 위해서 인공적으로 파낸 거긴 해요. 물도 좀 있고 해야 도시가 멋이 있으니까. 신도시 전체를 휘감듯이 도는 형태예요. 저기 아파트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채워질 거니까 깨끗하긴 엄청 깨끗할 거예요. 지금도 물은 좀 보이죠?”

천이라고 하기에는 그 깊이와 폭에 비해 물이 너무 적었다. 물보다 돌이 더 많은 하천이었다.

“수량이 좀 적긴 하네요.”

은영이 말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냥 저대로 두겠어요? 나중엔 물을 다 끌어와서 채울 거예요.”

천변의 산책로는 아직 공사 중이라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도, 잠깐 앉아 쉴 의자 하나도 없었다. 은영은 계속 땀을 흘렸다.

“몸에서 열이 안 빠져나가네. 국밥 때문인가 봐.”

하천이 뻗은 방향으로 이름 모를 새들이 낮게 떼를 지어 날아갔다. 죽어라 기를 쓰고 울어대는 매미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아주 잠깐 바람이 불어왔지만 땀을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 쟤네 좀 봐. 웬 개들이 저렇게 몰려다닌대?”

은영은 건너편의 비포장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개 네 마리가 줄을 지어 이동 중이었다.

“주인이 없는 개들인가.”

은영이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들개네.”

내 말에 은영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개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가자, 이제.”

소장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찜통이 된 차에 시동을 켜고 창문을 열어 차량 내부의 후끈한 열기를 빼냈다. 에어컨의 온도를 최대치로 낮추었는데도 은영은 차 안에서도 내내 더워했다.




산머리 위로 해가 서서히 넘어갈 즈음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보니 겨울이면 해가 빨리 지는 탓에 네다섯 시만 되어도 주변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들개를 포획하겠다네.”

5동 할머니가 뜨거운 테이크아웃 종이컵의 뚜껑을 조심스레 받아들며 말했다. 5동 할머니는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의 픽업을 위해 평일 이 시간이면 늘 카페를 찾았다. 손자의 하원 시간보다 30분쯤 일찍 나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기다리는 식이었는데, 몇 안 되는 우리 가게의 단골이기도 했다.

“1년이 넘도록 지켜봤잖여. 여기는 애기들 키우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도 며칠 전에 손자놈 데리고 가다가 저 앞에서 마주쳤는데 기겁을 했어이. 이제는 덫을 놓든 마취총을 쏘든 잡아가야지.”

오전에 공터 쪽으로 이동하던 들개들이 떠올랐다. 코를 박고 먹을 것을 찾던 들개들.

“아무튼 조만간에 여기 앞에도 포획용 망이 하나 들어오긴 할 건가 벼. 사장님도 조심혀.”

할머니는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여러 번에 나누어 마시며 말했다. 커피 컵의 뚜껑이 잘 닫혔나 몇 번이나 확인하는 탓에 테이크아웃 잔의 플라스틱 뚜껑 한쪽이 다 찌그러질 정도였다. 아파트 놀이터 쪽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어두컴컴한 먹구름 아래에서 잘게 부서졌다.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도 내내 최소 매출액을 겨우 넘겼다. 휴무 없이 둘이서 가게에 매달리는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적자나 마찬가지였다.

“왔어?”

그날도 은영은 발레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발레 연습 중이었다. 은영은 거실 발코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꼿꼿하게 서서 큰 짐볼 하나를 끌어안고 있는 듯이 두 팔을 둥글게 벌린 자세였다.

“1번 발.”

발레 슈즈의 모양을 바로잡으며 은영은 발끝을 바깥으로 벌렸다.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물었다.

“방금 시작했어.”

양발의 뒤꿈치를 바짝 붙이며 은영이 말했다.

“아니, 발레 말이야.”

꼿꼿하게 뽑아 올린 은영의 목덜미에 땀에 젖은 머리칼이 엉켜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다 했다고. 1번 발에서 5번 발로 바꾸어서 한 번만 더 하면 돼.”

은영은 무릎과 허벅지까지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언제 그만둘 거냐고, 발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은영은 그제야 자세를 풀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당신 정말 그 6만 원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발레를 도대체 왜 하려는 거냐고, 엄마는 은영에게 이유를 물어야겠다고 했다. 합격도 못 할 시험에 무모하게 매달린 5년의 시간도 결국은 돈 낭비, 시간 낭비였다고, 그것만 아니었다면 우리 부부가 아이 계획을 포기할 일은 없었을 거라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지금 상황의 시작은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고.

“아까워. 6만 원이면 커피가 서른 잔이야. 알잖아. 서른 잔 파는 게 얼마나 조마조마한 일인지.”

“이제 막 시작했잖아. 아직 한 달도 안 됐어.”

목이 다 늘어난 은영의 흰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어쭙잖게 시작해서 매달릴 거면 그냥 하지 마.”

내 말에 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럼에도 은영은 빠짐없이 발레 수업을 갔고, 수업이 없는 날에도 발레 연습을 쉬지 않았다. 정수리를 뽑아내듯 꼿꼿하게 선 자세로 발바닥을 바닥에서 차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바닥에 주저 앉아 다리를 찢고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상체를 바닥에 눌러 붙인 채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날도 있었다. 한 달 치 수강료를 냈으니, 은영으로서도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삭혔다. 그럴 때면 유튜브 검색창에 부업, 창업, 알바와 같은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성공, 실패, 가능, 불가능. 끝도 없이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면, 나는 천천히 화면을 내리며 성공이 많은가, 실패가 많은가 세어보았다.

일당 40만 원을 번다는 타일공이 타일을 바르는 영상을 눈이 뻑뻑해지도록 보다가 잠이 든 날이었다. 새벽에 잠깐 깬 건 치킨집 홍 사장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홍 사장은 카페의 창문이 다 열려있으니 내려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은영은 또 나간 모양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은영은 밤잠을 설쳐 바깥바람을 쐬러 자주 나갔다 왔다. 갑갑해서. 은영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어오는 길에 카페를 한 번 둘러보고 오라고 하려 했지만, 은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패딩 하나를 껴입고 나갔다.

홍 사장의 말대로 카페 전면의 유리창이 열린 채로 바람에 헐떡이고 있었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던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창문이야 내가 닫아줘도 되는데 혹시나 해서.”

창문을 닫고 인사를 전하러 갔을 때 홍 사장이 말했다.

“미친 사람 이야기 못 들었어?”

“무슨 말씀이세요?”

“새벽에 한 번 씩 상가 주변에서 보인다더라고. 쭈그리고 앉아서 허공에다가 돌인지 뭔지 뭘 막 던진대.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이니까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괜히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안에 없어진 건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보고 가라고.”

홍 사장은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빈 종이 상자 하나가 발에 치였다. 근래 들어 새벽마다 바람을 쐬겠다며 나갔던 은영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추운 겨울에 바람을 쐬러 나간다는 것부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홍 사장이 가게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은영에게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들어가려다 담배가 당겨 편의점 뒤 공터 쪽에 섰다. 찬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귀도, 코도 다 빠질 것 같았다. 이 정도 바람이면 제대로 잠그지 않은 창문이 열려서 덜컹거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미친 여자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바람을 등지고 서려고 몸을 돌린 그때 건너편 임시 공용주차장 쪽에서 흰색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담배를 쭉 빨아들이며 그쪽을 응시했다. 이어 딱, 딱, 단단한 것들끼리 부딪히는 소리. 나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흰 천, 흰 현수막, 흰색의 잡비닐……. 이 추운 겨울밤에 그런 게 바람에 펄럭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생각해 보면 바람에 딱딱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거나- 이 정도 바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 짐승이 내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여기는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니까- . 굳이 가까이 가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뭣 하러. 가게나 잘 살폈으면 된 것을.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서 은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난데없이 겪은 황당한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친 여자, 나도 봤어, 라고 은영이 말해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돌을 던지고 있었다. 흰 롱패딩을 입은 은영이었다. 개를 향해서.

(3편에서 계속)








© Photo by Alexandre Tsuchi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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