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은 발레를 배우겠다고 했다
은영은 발레를 배우겠다고 했다.
1년 반 만에 들어온 발레학원이었다. 이사를 온 후, 은영이 하는 운동이라고는 유튜브로 하는 20분 내외의 ‘층간소음X 유산소 다이어트’ 영상이 전부였다. 카페를 운영하는 2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으니, 운동할 시간이 없는 건 당연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견갑골 안쪽 말이야. 왼쪽. 자세 문제인 것 같은데, 발레가 도움이 될까 해서.”
능형근 통증으로 고생 중인 은영이었다. 10년 넘게 만성으로 달고 사는 통증이었다.
“오픈 이벤트로 성인 발레는 반값 할인을 해준다잖아.”
목을 오른쪽 어깨 쪽으로 기울여 내리며 은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능형근 쪽이 아플 때마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었다. 부쩍 많아진 기미와 움푹 꺼진 눈 밑, 축 처진 볼살로 꽤 깊은 팔자 주름까지, 맨얼굴의 은영은 서른 중반의 제 나이보다도 훨씬 많아 보였다.
“주 2회 한 달에 13만 원인데, 지금 등록하면 6만 원인 거야. 완전 괜찮지?”
원두를 채우며 은영이 말했다. 손님 하나 없는 공포에 가까운 적막을 뚫고 원두 통에 원두가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그 정도는 나한테 좀 써도 된다고 생각해.”
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은영은 대뜸 누군가에게 조금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대걸레로 카페 바닥을 괜히 한 번 더 닦았다. 이미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바닥이었다. 손님들이 오가며 바닥이 흙 범벅이 되어도 좋으니 더러워진 바닥을 실컷 닦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은영은 얼마 전까지도 그런 말을 했었다. 올겨울은 유독 매출이 바닥을 치는 탓에 은영은 가게 바로 옆 부동산 사모님이 꺼내어 놓은 붕어빵 수레를 인수하여 카페 앞에서 붕어빵이라도 같이 팔아볼까 생각도 했다. 큰길 건너 농협 앞에 이미 수레 하나가 자리를 잡아 버려서 포기해야 했지만, 그 정도로 가게 매출을 걱정하던 은영이었다. 그런데 그런 은영이 발레를 하겠다니.
“발레 옷은?”
나는 은영이 있는 쪽으로 대걸레를 밀며 물었다. 저렇게 단숨에 넘어간 걸 보니 누군가의 꾐에 넘어간 건 아닌가 싶었다. 발레 수강을 빌미로 발레 옷 공구나 바디프로필 사진 촬영이니 뭐니 하는 부가상품을 얹어 파는 전형적인 상술일지도 몰랐다.
“옷은 무슨. 그냥 집에 있는 편한 옷 입고 해도 된대. 발레 슈즈 하나만 사고.”
“슈즈는 얼만데.”
“초보들은 천으로 된 거 신는대. 쿠팡에서 한 만 원짜리면 되겠지.”
오픈 후 두 시간이 지났지만, 포스기에 찍힌 건 아메리카노 석 잔, 라떼 한 잔과 딸기 마카롱 한 개가 전부였다. 다 합쳐봐야 2만 원도 되지 않았다. 둘의 최저 시급도 나오지 않는 아침. 은영의 한 달 발레 수강료를 벌기 위해선 몇 잔의 커피를 더 팔아야 하나,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다 문득 태연하게 본인이 마실 커피의 샷을 내리는 은영을 보자, 장사를 하면서부터는 수년째 이어오던 친구들과의 계모임에도 나가지 못하는 걸 보고 내심 미안해했던 마음까지 쑥 들어갔다.
“저녁 수업은 여덟 시에 있더라고. 그 시간엔 우리 손님도 거의 없잖아. 당신 혼자 가게 좀 봐줘.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돈 괜찮지?”
컵에 얼음을 퍼 넣으며 은영이 말했다. 나는 대걸레를 창고 문 옆에 세워두고 그런 은영을 유심히 바라봤다.
“같이 하자고 해도 안 할거잖아. 할 거야?”
은영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그게 나에게 동의를 받은 것인 양 그대로 발레 학원에 등록해 버렸다.
은영과 나는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서 만났다. 그때 은영은 공부 중이라고 했다.
“무슨 공부긴요. 공무원 시험이죠.”
서른한 살의 여자가, 그것도 일이 많기로 소문난 업계에서 6년이나 근속 중인 경력직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의아하기도 했지만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당시 주변에는 공시생들이 많았다. 워낙 취업이 힘들기도 했고, 어렵게 취업이 된다 해도 기업에서는 사람 한 명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이고 워라벨도 좋은 공무원의 인기가 치솟던 때였다.
“퇴사하고 공부할 용기는 없어서요. 어정쩡하게 발붙이면서 하는 거라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해 보는 거죠.”
나는 일을 끝내고 사무실에 남아 공부를 하는 은영을 위해 커피와 빵을 사서 갖다주기도 했고, 시간이 되는 날엔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러는 일은 점점 잦아졌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생각하는 진지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은영은 시험에 떨어졌다.
“은영이 걔가 열심히 하긴 한 거야?”
엄마는 그런 은영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아주 그냥 쫄딱 망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떻게든 버텨지니까 저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 아냐.”
그 후로도 은영은 공부를 계속했다. 왜냐고 물으면 은영은 도리어 되물었다.
“왜? 하면 안 돼? 계속 떨어지니까? 그러면 또 하면 안 되는 거야?”
은영은 가능성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을 자주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 말이 버거웠다.
은영이 공부하는 동안 은영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은 교통사고로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치며 하고 있던 택시 기사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즈음 은영의 남동생은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파혼했다. 상대방 귀책이었다.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갈수록 높아졌고, 정권이 바뀌는 동안 시험 정책 또한 바뀌어 실컷 공부한 과목 하나가 완전히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시험의 경향은 매년 예측할 수가 없어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듣느냐에 따라 합격 일수도, 불합격 일수도 있게 됐다. 은영은 한 번도 허투루 한 적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은영에게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고, 간절함이 없다고, 욕심이 너무 많아서 분수를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
“이제는 그만하려고.”
유방암 판정을 받은 그해 봄에서야 은영은 말했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떨어진 직후였다.
우리의 첫 신혼집은 B시 중심구의 2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 전세였다. 은영이 수술을 끝냈을 즈음 우리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은영의 말에 B시 외곽에 지어진 이곳 신도시로 이사를 결정하게 됐다. 외곽이 아니고서는 전세금을 빼서 갈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기도 해서였다.
“여기 오는 사람들, 우리랑 비슷할 것 같아. 모아둔 돈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깨끗한 새집에서 새출발 해 보고 싶은 사람들.”
집을 계약하던 날, 은영은 모델하우스를 나서며 분양계약서와 계약 선물로 받은 흰쌀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분양 후 입주를 기다리는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은영과 나는 버티고 버텼던 직장 생활을 끝내고 창업 준비에 올인했다. 카페 하나를 차려보자고 했다. 저가형 카페가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이미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던 친구도 있었고, 은영은 카페에서의 알바 경험도 있었던 터라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아이 계획은 미뤄지게 됐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은 그것뿐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구시가지는 이미 상권이 형성되어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대학로 쪽은 우리 같은 초보 장사꾼들이 치고 들어가기에는 특성화된 개인 카페나 스페셜 티 카페가 너무 많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들어갈 아파트 상가에서 시작하자. 신도시잖아. 아무것도 없어.”
은영이 싸구려 쫀디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창문을 열면 헐거워진 방충망 사이로 온갖 잔 벌레가 들어오는 성가시고 진득한 여름밤이었다. 즉흥적인 제안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아두었던 돈과 퇴직금으로 카페를 차리고, 카페에서 번 돈으로 매달 대출을 갚아 나가는 동안 신도시에는 꾸준히 사람들이 유입될테니,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둘이 먹고 살기에 큰 어려움을 없을 거였다.
“괜찮지? 대박 터지는 거 아니야?”
캔맥주 두 캔을 연달아 까고 얼굴이 시뻘게진 은영이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박을 예감한 은영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가게를 열고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우리 가게에서 5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아래쪽 대로변 모퉁이에 다른 저가형 카페 하나가 들어오고 말았다. 커피값이 더 싼 것도, 커피 맛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희한하게 아래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신도시 특성상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경우 대다수는 대로변에 있는 카페를 이용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마 샌드위치나 디저트 상품을 내세워 구멍 난 매출을 채우고 있었지만, 설상가상으로 한 달 전, 바로 맞은편에 샌드위치 전문점까지 생겨 버렸다. 비어 있는 점포에 무언가가 들어온다는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났다.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법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점심때가 지나자, 운동복 차림의 깡마른 사내 하나가 옆구리에 공인중개사 수험서 한 권을 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한 후 가게를 나갔다. 12월의 강추위에도 매일 아이스만 마시는 남자를 보며 은영은 그도 속에 천불이 끓는 사람일 거라고 했다. 슬리퍼를 끌며 아파트 후문 쪽으로 걸어가는 사내 뒤로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이 대로변 쪽으로 연이어 바쁘게 내려갔다.
“오늘도 아래집은 사람들이 줄을 섰네. 배달도 많은가 봐.”
은영이 어닝을 펼치며 말했다. 눈에 잘 띄라고 설치한 새빨간 어닝이었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흐린 거야.”
은영의 한숨이 희뿌연 입김이 되어 공기 중으로 힘없이 흩어졌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건너편 공사장 터를 가로지르고 있는 개들이었다. 주변을 경계하며 코를 박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걸 보니 먹을 것을 찾는 것 같았다. 들개들. 그러니까 2년 전 여름에 보았던 들개가 확실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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