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조용한 밤이었다
앰뷸런스 한 대가 웽웽거리며 지나갔다. 거실의 키 큰 무드 등 하나만 켠 채로 나는 소파에 앉아 거실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꽤 오랫동안 멍하니 내다보았다. 까만 밤하늘 아래로 아파트마다 거실 등이 하나씩 꺼져갔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나에게는 지우였다.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더라도 기꺼이 그럴 수 있게 하는 존재.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 나는 늘 철저하게 계획하고, 실행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위험 요소라 생각되는 것들은 없애거나 피할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은행 앱을 열어 적금 계좌를 확인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우가 다시 이직하게 되는 날, 이 적금을 깨고 그 돈을 지우에게 줄 참이었다. 이직 준비가 길어질수록 계좌에는 더 많은 돈이 모일 것이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숫자들의 배열은 분명 나를 불안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맞은편 아파트의 마지막 거실 등이 꺼졌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정면의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꺼져 있는 텔레비전의 검은 화면에 흐릿하게 나를 바라보는 내가 보였다. 소파의 팔걸이 위에 놓인 리모컨을 잡아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빨간 사각형 안에 흰색 삼각형이 그려진 모양의 버튼. 지우가 언젠가 리모컨의 그 버튼을 누르면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사용자를 선택하라는 화면과 함께 ‘쩡찌’라는 이름이 보였다. 지우의 닉네임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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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목록 이미지가 줄줄이 늘어섰다. 몽골과 붕어빵. 아마도 지우가 자주 본 영상인 것 같았다. 나는 리모컨의 오른쪽 넘김 버튼을 눌렀다. 몽골. 몽골. 붕어빵. 다시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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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으로 영상 목록을 넘기던 중에 딸아이의 얼굴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상의 섬네일 사진 속에서 지우는 흰 목장갑을 끼고 황동 주전자에 붕어빵 반죽을 붓고 있었다. 마치 오늘 아침에 내가 보았던 지우의 모습처럼…. 조회 수 1.7천 회. 1개월 전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영상을 누르자 검은 바탕의 빈 화면에 ‘서른다섯, 1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이어 지우의 얼굴이 빈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지우의 얼굴 뒤로 진한 밤 갈색 책상이 보였다. 제 방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방 안에서는 잠만 겨우 자는 줄 알았는데. 지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회사를 그만둔 이유, 그러니까 그곳에서의 환멸과 무기력감에 관해 이야기했고, 1년 가까이 일을 쉬면서 보냈던 자신의 일상, 내가 지겹도록 봐왔던, 대충 끓인 라면을 먹고, 무릎 나온 운동복 바지 차림으로 분리수거를 하는, 그리고 밤이 새도록 몽골 영상을 보는, 자신의 일상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더 보탠 것도, 일부러 뺀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해 평생 불안을 떠안고 사는 거랑 그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내던져보는 것 중에서 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고요. 그래서 이렇게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거예요. 기록이란 건 어쨌든 확실하게 남는 거니까. 이렇게 기록된 시간은 어떻게든 제 삶에 흔적을 남길 거라 믿어요. 아무튼 다음 영상에선 본격적으로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는 과정을 담아서 보여드릴게요. 오늘 영상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영상이 끝났다.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아니, 숨이 나를 뱉어내는 느낌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바로 다음 영상을 추천해주었다. 지우의 또 다른 영상이었다.
- 붕어빵 팝니다 ep.2 l 붕어빵 장사 시작, 제일 먼저 할 일 l 업체 연락부터 자리 선정까지
영상을 누르자 익숙한 건물들 사이로 붕어빵 수레 앞에 서 있는 지우의 모습이 나왔다. 그곳은 시장에서 아파트로 올라오는 길목이라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붕어빵 수레가 자리를 잡는 곳이었다. 지우는 검은색 조거 팬츠 위에 베이지색 니트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영상 속 지우는 붕어빵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화의 내용은 묵음으로 처리되어 들리지 않았고, 대신 지우의 내레이션이 무음의 영상 위에 깔렸다.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붕어빵 장사를 하고 계시는 분을 찾아가 그분께 정보를 얻는 거였어요. 매년 겨울이면 동네에서 붕어빵을 파시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이분께 찾아가 장사 시작에 필요한 것들을 물어보았어요.”
지우는 아마 붕어빵 수레에서 조금 떨어진 곳, 그러니까 횡단보도 쪽 전봇대 근처쯤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신이 잘 나올 수 있는 앵글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연출된 장면이라고 생각하니 힘없는 웃음이 툭 터졌다.
“사장님에게서 붕어빵 업체를 통하라는 정보를 얻었어요. 업체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붕어빵 기계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조건으로 밀가루 반죽, 팥 등과 같은 식재료는 업체의 것만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곧 영상은 지우가 장사를 시작할 장소를 찾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벌써 좋은 길목에는 다른 분들이 자리를 잡으셨네요. 사회복지관 정문 쪽, 여기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사장님이 바로 길 건너에서 붕어빵을 굽고 계시니까 아무래도 처음 보았던 그 시장 안에 있는 새마을금고 앞이 좋을 것 같네요.”
능숙하게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혼잣말을 하는 딸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래, 지우는 말을 참 잘하는 아이였지. 영상이 끝나갈 무렵 지우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딸아이를 향해 손을 잠깐 흔들 뻔했는데, 지우의 그런 표정이 참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꽤 오랫동안 영상 속 지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13분 21초짜리 영상이 끝났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세 시를 넘기고 있었다.
<지우 엄마, 산청 집에 고무장갑이 어디 있더라?>
남편에게서 카톡 메시지 하나와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가슴 쪽 답답함이 느껴져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머리끝까지 꽉 채우고 있는 열기가 몸 구석구석을 괴롭혔다. 나는 문득 지우의 영상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유튜브 앱을 열어 딸의 영상 아래에 있는 ‘쩡찌’라는 닉네임을 눌러보았다. 화면은 곧 지우의 유튜브 채널로 넘어갔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1년 전부터 지금까지 업로드된 서른 개가 넘는 영상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하나씩은 꾸준히 기록해 온 셈이었다. 그 채널의 영상 목록에는 지우의 지난 1년의 기록들이 단정하게 꽂혀 있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올랐던 뒷산에서, 매주 수요일의 분리수거장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던 아파트 후문 옆 계단과 우리 집 베란다에서, 지우는 그렇게 자신의 불확실했던 날들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허기가 몰려왔고,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 순간 식탁 위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봉지 안의 흰 종이봉투에는 다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 네 마리가 들어 있었다. 봉투 속에서 붕어빵 하나를 꺼내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았다. 팥의 단내가 조금 났다. 문득 지우에게 붕어빵 꼬리를 떼어주던 큰오빠 생각이 잠깐 났다.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갓 구워진 고소하고 바삭한 맛은 아니었지만, 팥앙금이 적당하게 들어간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맛이 좋았다. 그리곤 은행 앱을 열어 그동안 모인 적금 계좌의 돈을 확인했다.
<정리되는 대로 집으로 바로 와요. 우리 딸이 붕어빵이라도 좀 팔아보겠다는데, 개업 축하금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어요? 내일 지우한테 가서 붕어빵도 좀 사 먹게.>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니, 정작 고무장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부엌 쪽에 붙은 작은 방의 문틈 사이로,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잠든 지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우의 까만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독 더 까맣게 느껴졌다. 들숨과 날숨마다 지우의 몸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이를 가는 잠버릇이 있는 지우였지만, 얕은 숨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조용한 밤이었다. (끝)
© 일러스트: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