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하기 1이 뭐야?
다음 날 새벽, 지우가 부엌에서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둑했고, 침실 창밖으로는 제법 세차게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었다.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통조림 햄 캔을 따는 지우를 보았다.
“엄마, 김치가 없네. 김치가 있어야 하는데.”
변기 위에 눈을 감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는데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치 없는 척 괜히 한 마디 던져보는 건 엄마와 딸의 기 싸움이 지속될 즈음, 먼저 휴전을 제의하는 지우의 오랜 전략 같은 거였다.
“오늘 수레 받으면, 바로 붕어빵 팔 거야. 새마을금고 앞에서.”
나는 지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와 다시 이불에 몸을 구겨 넣었다. 잠시 뒤 지우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몇 번이나 뒤척이다 설핏 얕은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오전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뭐가 그리 바빠서 새벽부터 움직인 걸까. 나는 지우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닥에는 충전기 선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책상 위로는 각종 영수증과 붕어빵 장사 계약서가 보였다. 4개월 이상 주 5회 이상 장사할 것, 임대 물건을 훼손하지 않을 것, 본사에서 보내주는 반죽과 앙금만을 사용할 것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실감이 났다. 피로감이 몰려와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는 시장에 갈 채비를 하여 집을 나섰다.
시장 입구 쪽 3층짜리 건물이 새마을금고였다. 새벽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서서히 그치는 중이었다. 건물 앞에 ‘용궁 붕어빵’이라고 적힌 수레가 보였다. 주황색 포대 가림막으로 수레 주변을 둘러놓아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채로 흰 목장갑을 끼고 반죽 주전자를 기울이고 있는 지우가 보였다. 급히 건물 모퉁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람이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고, 그 소리가 귀에서 엉켰다. 그렇게 나는 한참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우 엄마!”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며 부른 건 아랫집 유경 엄마였다. 50대 후반의 유경 엄마는 키는 작지만 보기 좋게 살집이 있어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말투와 행동이 유쾌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것은 유경 엄마만이 가진 에너지였다. 지우보다 다섯 살 아래인 유경이는 4년째 이 동네에서 향초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 나 잠깐 뭐 좀 사러.”
나는 패딩 주머니에 구겨 넣어 왔던 시장 가방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유경 엄마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붕어빵 사러 왔지? 어제 우리 유경이가 얘기하더라. 대단하다, 지우. 어떻게 붕어빵 팔 생각을 한 거야?”
내 속도 모르고 유경 엄마는 팔짱을 끼며 벙싯거렸다.
“집에만 있으니 좀이 쑤시나 봐. 재미로 한번 해 본다더라고. 경험. 어. 경험이지, 뭐.”
슬쩍 웃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입 주변뿐만 아니라 콧방울과 눈 주변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찔거릴 뿐이었다. 시뻘겋게 열이 올라있을 내 얼굴을 생각하니 정말로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아침에 지우 도와주고 장 보러 가는 건가 봐?”
지우가 있는 쪽으로 고갯짓을 하며 유경 엄마가 물었다.
“뭐, 겸사겸사…. 춥다. 얼른 가, 유경 엄마.”
펼쳐 들었던 시장 가방을 다시 구겨 접었다. 유경 엄마를 보내고 그곳에서 수레 쪽을 지켜보는 삼십 분 남짓 동안, 지우는 서너 명의 손님을 받았던 것 같다. 은행 업무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지우를 무심히 바라보며 지나갔다. 바람이 여전히 너무 거세서 나는 패딩 모자를 덮어쓰고 턱 끝까지 지퍼를 끌어 올렸다. 얼굴을 외투 속에 파묻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날 오후 늦게, 남편은 산청 집 수도관이 터져 정비를 위해 주말 동안 그곳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지우가 집에 돌아왔을 땐 해가 저물고 있었다. 계란찜을 하려고 그릇에 계란을 풀고 소금 간을 조금 하여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개업 붕어들 남았어.”
두 볼이 얼어 꽝꽝해진 얼굴로 지우는 검은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조금 시큰둥한 목소리였는데, 그뿐인 듯 다른 의도는 없어 보였다. 며칠 사이 얼굴이 겨울 볕에 더 그을린 것 같았다. 선크림 좀 잘 바르고 다니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나는 딸아이가 안쓰러워 조심스레 다시 말을 꺼냈다.
“지우야. 붕어빵은 재미로 한번 해 보는 걸로 해. 곧 여기저기 상반기 채용 기간이니까 거기에 더 신경 써.”
삐익. 전자레인지의 종료음이 울렸다. 문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김이 피어오르는 계란찜 그릇을 꺼냈다. 수분이 날아가 가운데가 푹 꺼진 모양이었다.
“엄만…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순간 목덜미가 저릿해졌다. 온몸이 꼿꼿하게 경직되어 나는 지우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오늘 매출 13만 1,600원. 재료비랑 이것저것 빼고 나면 절반쯤은 남으니까, 6만 5,800원이 내 돈이네. 생각보다 많지? 엄마한텐 아무래도 이렇게 확실한 숫자로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지우는 핸드폰 계산기 화면을 나에게 내밀어 보였다. 동그랗게 뜬 눈 위로 지우의 짙은 눈썹이 더 또렷한 아치 모양이 되었다.
“1 더하기 1이 뭐야?”
실컷 계산기를 두드려놓고는 맥락 없이 갑자기 1더하기 1을 묻다니. 종잡을 수 없는 대화였다.
“2라고 할 거지?”
입을 비죽거리며 묻는 지우를 향해 나는 콧방귀를 꼈다.
“1보다 큰 수. 라고 하면 틀린 거야?”
지우는 기다렸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2라는 확실한 숫자로 대답하는 대신, 1보다는 큰 수, 라고 그냥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 오답은 아니잖아? 2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나 봐.”
계란찜에서 불쾌하리만큼 비린내가 났다. 어쩌면 지우가 가져온 붕어빵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데 엄마…. 난 그걸 믿어. 불확실한 거. 알고 보면 그게 진짜거든.”
(4편에서 계속)
© 일러스트: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