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아웃, 풀업, 앙바 3

이도 저도 아니면 다 쓸데없고 쓸모없는 거라 생각하는 거, 그게 맞아?

by 이나무






“당신, 미쳤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공터의 폐비닐이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에 은영은 내가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은영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갔지?”

은영이 말했다.

“뭔 소리야.”

“개 말이야. 갔네. 다행이다.”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은영은 버스가 다니는 도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급히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홍 사장네 치킨집에도 불은 꺼져있었다.

“개 때문에.”

은영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빨갛게 언 은영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따가웠다.

“개 때문이라니. 돌은 또 왜 던지고 있는 거야. 제정신이야?”

“가만히 두면 계속 이쪽으로 오잖아. 그러다 덫에 걸리면 안 되잖아.”

그 말을 듣고서야 은영의 발 앞에 놓인 포획용 틀이 눈에 들어왔다. 녹이 슬어 표면이 거칠게 마모된 포획 틀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형편없는 사료통 하나가 구리 철판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설마 여태껏 당신이 여기서 개를 내쫓고 있었던 거야? 덫에 걸리지 말라고?”

나는 은영의 손에 쥐어진 돌멩이를 보고 물었다.

“맞아. 문제 있어?”

“아니, 도대체 왜.”

나는 은영의 손안에 있던 돌멩이를 빼내어 공터 바깥으로 멀리 내던졌다. 딱, 딱, 소리를 내며 돌이 바닥에 떨어졌다.

“불쌍하잖아.”

바람이 조금 잦아들자, 은영이 입을 뗐다. 헝클어진 머리를 바로 하고 은영은 흙이 묻어 거칠해진 두 손바닥을 비비며 개가 내려간 도로 쪽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가 불쌍하단 거야? 그냥 들개라고. 지금 개가 죽고 말고가 중요해? 우리 살 궁리부터 해야 할 거 아냐.”

내 말에 은영은 심각해진 얼굴이 되어 눈을 흘겼다.

“마당 개일 수도 있잖아. 중성화가 안 된 개일 수도 있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 중요하냐고. 여기 신도시야. 소문 잘못 나면 한방에 끝이라고.”

그때 다시 바람이 몰아쳤다. 상가 건물에 붙어 있는 대형 현수막들이 바람에 심하게 구겨졌다. 포획 틀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죽어도 된다는 거야? 이도 저도 아니면 다 쓸데없고 쓸모없는 거라 생각하는 거, 그게 맞아?”

은영이 말했다. 발 아래에서 포획 틀의 철창이 헐겁게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밤, 은영은 집으로 돌아와 들개- 은영은 그냥 개, 라고 불렀다- 에 대해 이야기했다. 포획된 개들은 동물보호법에 따른 공고 절차 없이 대부분 안락사를 당한다고 했다. 지자체에서 한 마리에 수십만 원씩 포획 보상금을 지급하니 아예 작정하고 포획이 불필요한 새끼들까지 골라잡아 실적을 쌓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은영은 핸드폰으로 관련 기사에 올라온 사진까지 보여주며 말했다. 사진에는 성인 남자의 팔뚝 크기도 되지 않는 새끼들이, 그러니까 갓 태어나 이제 겨우 눈을 뜨고 몸을 가누기 시작한 새끼들이 철창 속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은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빠진 맥주캔을 들이켰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그리곤 곯아떨어지기를 기대했지만, 며칠 내내 새벽마다 찬 공기를 쐰 탓일까 은영은 밤새 기침을 해댔고, 잠을 설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세 마리는 포획했대. 하천변 공사 부지 빈터에 개들이 모여 살던 자리가 있었나벼. 생각보다 쉽게 잡혔제. 세 마리는 거의 동시에 잡혔고, 나머지 한 마리는 못 잡았다 하더라고.”

다음날, 5동 할머니의 말이었다. 밤사이 은영은 심한 기침과 함께 온몸에 열이 펄펄 끓었다.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향했고, 하루 종일 집에 누워있어야 했다. 가게를 시작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은 한 마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는 어젯밤 공터에서 보았던, 은영이 쫓아내어 덫을 피해 도로 아래로 내려간 들개를 떠올리며 물었다.

“모르제. 한 마리만 남았으니.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 어차피 여기 더 있어봤자 못 사는 개야.”

무성하게 자란 잡풀 사이로 어제 보았던 포획 틀이 보였다. 저렇게 컸었나. 대낮에 훤히 모습을 드러낸 포획 틀망은 고작 개 한 마리를 잡기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마감을 끝내고 하천으로 나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고 계속 버티며 가게를 유지해야 할지, 과감하게 접고 타일이라도 바르러 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진 천변의 산책로는 붉은 흙을 대충 펴 발라 놓은 간이 포장 상태였다. 길 위로 바람에 쓸려 날아온 일회용 컵이나 페트병, 스티로폼이 나뒹굴고 있었고, 때로는 주인을 알 수 없는 공사 인부의 작업화나 마스크, 목장갑 같은 것들도 버려져 있었다. 이제 막 설치된 운동 기구들은 포장용 파란 비닐도 채 뜯기지 않은 상태였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주변은 온통 시커멨고, 그 바람에 그러잖아도 수량이 바닥난 하천은 더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마저 없다면 안되었다. 흙먼지 날리는 삭막한 공사판의 신도시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하천의 봄이라고, 은영은 말한 적이 있었다. 앙상한 벚나무 묘목들이 천변을 따라 엉성하게 심겨 있는 것을 보니, 그런 기대가 영 말이 안 되지는 않았다. 시꺼먼 밤을 끼얹은 텅 빈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때 맞은편으로 들개 한 마리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은 한 마리. 그놈인 것 같았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들개의 형체는 섬세하게 각인한 조각처럼 짙고 선명해서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들개를 피해 천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조차 보이지 않았다. 꽤 안쪽까지 들어온 까닭이었다. 급한 마음에 핸드폰의 손전등을 켰다. 빛을 보고 놈이 방향을 틀기를 바랐다. 달려서도, 등을 보여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개를 도발할 수 있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고, 나는 뉴스에서 본 들개와 마주쳤을 때의 수칙들을 떠올리며 숨을 참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나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좁혀왔고, 들개와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 1미터도 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핸드폰 불빛에 비친 녀석은 생각보다 왜소했다. 포획되었다는 들개의 새끼일지도 몰랐다. 털이 균일하지 못한 데다가 곳곳에 살갗이 울퉁불퉁하게 드러난 것으로 봐서 며칠은 굶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긴 주둥이와 쫑긋하게 솟은 두 귀, 끝이 살짝 말려 치켜 올라간 긴 꼬리, 몸통 군데군데 누런 잡털이 섞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흰 털을 가진 꽤 잘생긴 놈이었다. 나는 핸드폰의 불빛을 좌우로 흔들었다. 개가 조금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불빛의 세기를 낮추자,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짙은 분홍빛의 혀를 내밀고 서서 얕은 숨을 헐떡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뒤편에서 등을 미는 바람이 불었다. 어제와 달리 한겨울의 밤바람치고는 꽤 견딜만했다. 나는 그대로 핸드폰의 손전등 빛을 완전히 껐다. 칠흑 속에서 개의 작고 까만 눈이 빛났다. 개는 천천히 몸을 바닥으로 낮추더니 엉덩이를 완전히 깔고 내 앞에 앉았다. 그건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나도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몸을 낮추었다. 그러고는 녀석을 향해 손등을 내밀었다. 개는 그런 나를 할긋거리더니 이내 길고 푸석한 꼬리를 흔들며 내 손등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개의 따뜻한 숨이 손등 위로 쏟아졌다. 축축한 코의 감촉을 느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나는 녀석이 갈 길을 갈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손등을 내어주고 기다렸다. 그때였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천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맑고, 경쾌하고, 힘 있는 소리였다. 어디에도 거슬림이 없는 거침 없는 소리. 하천에 이 정도로 물이 많았나, 나는 생각했다. 쫑긋하게 선 개의 두 귀가 앞뒤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날 밤에 대해 누구에게도- 심지어 은영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개가 나타나지 않았기도 했고, 그러고 조금 후에는 포획 틀도 완전히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 남았던 그 개는 어떻게 됐을까?”

은영이 말했다.

“어딘가로 잘 갔겠지. 잡히진 않았을 거야.”

그런 말을 하는 내가 낯설다는 듯 은영은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새 동작을 배웠어. 폰듀라는 동작인데, 치즈 퐁듀가 늘어나는 느낌으로 이렇게 다리를 쭈욱 뻗는 거야.”

은영은 부엌의 아일랜드 식탁을 잡고 한쪽 발을 쭉 뻗어냈다. 뻗어낸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은영은 몸살이 낫기 무섭게 다시 발레 수업을 들었다. 발레를 시작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능형근 쪽 아픈 건 좀 나아졌어?”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은영은 왼쪽 어깨를 앞뒤로 움직이며 말했다.

“그러고 나선 이다음 동작.”

은영은 앞으로 뻗었던 발을 냉장고가 있는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뻗었다.

“이렇게 허벅지 안쪽을 바깥쪽으로 빼낸다는 느낌으로 뻗어내야 한댔어.”

은영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잡아끌었다.

“그래야 잘 안 쓰는 안쪽 근육이 강해진다더라고.”

은영의 다리가 떨렸다.

“아니, 근데 이렇게 부들거릴 일이야? 고작 무릎 높이까지밖에 안 올렸는데?”

당황한 듯 은영은 혼잣말을 했다. 지지하고 있던 왼쪽 다리는 힘이 빠져 바깥으로 벌어져 있었고, 축이 잘 서지 않은 몸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식탁에 거의 기댄 상태였다.

“치즈 퐁듀가 다 굳었네.”

내 말에 은영은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뭘 했다고 이렇게 힘들까.”

“내가 좀 잡아줘?”

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영의 이마와 목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1번 발, 턴아웃.”

은영이 양발의 뒷꿈치를 바짝 붙인 채로 발끝을 바깥으로 열었다. 허벅지와 무릎이 쫀쫀하게 붙었다.

“풀업.”

이번엔 목을 길게 뽑아내며 몸 전체를 곧게 세웠다.

“앙바.”

두 팔을 배꼽 쪽으로 둥글게 내려놓으며 은영이 말했다. 그러니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가장 많이 본 은영의 자세였다. 정수리를 뽑아내듯 온몸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 또 세우는 자세.

“이때만큼은 무슨 자세든 다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은영은 그 자세 그대로 두 팔을 단전에서 명치로, 명치에서 머리 위로 세 박자를 거쳐 천천히 올렸다.

“해보자. 제대로 된 치즈퐁듀.”

내 말에 은영은 아일랜드 식탁 위로 두 손을 살짝 올려 잡고 자세를 잡았다.

“올려봐.”

나는 은영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 발목 쪽을 손으로 받쳐주었다.

“몸통에도 힘을 줘야 해. 흉통도 이렇게 꽉 조이면서. 골반은 흐트러지면 안 돼.”

은영은 주문처럼 그 말을 신중하게 내뱉었다. 긴 호흡과 함께 은영은 몸통이 왼쪽으로 기울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런 은영의 호흡에 맞추어 은영의 발목을 받치고 있던 손을 조금씩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은영의 다리가 허리까지 올라갔다.

“거기까지인 것 같아.”

은영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혼자 힘으로 천천히 다리를 내렸다. 은영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흘렀다.

“이 다리가 나중에는 얼굴 높이까지 올라간대.”

은영은 폰으로 발레리나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아한 모습이었다.

“내 모습도 이래?”

은영이 폰 화면 속 사진들을 스크롤 하며 물었다.

“아니, 전혀.”

나는 은영을 조금 웃겨줄 마음으로 말했다.

“턴아웃, 풀업, 앙바. 이거 맞아?”

은영과 같은 자세를 하며 내가 물었다.

“어때? 당신도 그런 느낌이 들어?”

은영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두 발을 바닥에 단단하게 지지하고 한 번 더 몸을 끌어 올렸다. 왠지 모르게 벅차올랐다.

“응, 그런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끝)








© Photo by Alexandre Tsuchi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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