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모임의 주제는 안내드렸던 대로 ‘비혼 유언장 쓰기’예요
“별로였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냉수 한 컵을 들이켜는 나를 보며 엄마는 3초쯤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나보다 키가 작아.”
컵을 탁, 내려놓으며 나는 말했다.
“네 키가 문제지, 너한테 맞는 키 큰 남자 찾기가 어디 쉽니?”
엄마는 내가 내려놓은 컵을 잡아채 싱크대에서 바로 물로 씻어냈다.
“대한민국 남자 평균 키가 173이라던데. 평균치도 안됐다고. 솔직히 170만 넘으면 돼. 나보다는 커야 그림이 좋잖아. 남자 쪽도 그게 좋을걸?”
“남자 쪽은 어린 게 좋을 거다, 이것아. 키가 문제야? 여자는 나이가 벼슬이야. 오늘처럼 동갑 만나는 건 네 쪽에선 땡큐, 고맙습니다, 하고 만나야 될 판이야.”
나는 방으로 들어와 원피스를 벗었다. 원피스 뒤의 지퍼가 잘 내려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불렀다.
“이거 좀 내려줘.”
지퍼를 내리는 엄마의 손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 하지 말고, 무조건 한 번은 더 만나 봐. 너 해 넘어가면 이제 소개팅하고 싶어도 못 해.”
엄마는 지퍼를 내리는 그 막간을 이용해 또 잔소리를 이어갔다. 술 때문에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평생을 고생하고, 하나 있는 자식 뒷바라지로 속 편할 날이 없는 엄마가 도대체 왜 이렇게 결혼에 목을 매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 그냥 혼자 살래. 학교에 보면 혼자 잘 사는 쌤들도 많아. 우리 학년 부장님도 그렇잖아. 자기 커리어 쌓으면서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육아에 찌들일 일이 있나, 시댁 스트레스가 있나. 소개팅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지친다고. 그럴 시간에 나 하고 싶은 거나 실컷 할 거야. 아 몰라. 혼자 사는 게 맘 편해.”
비혼으로 사는 옆 반 부장 교사가 때때로 온몸이 텅 빈 것처럼 지독하게 외로울 때가 있고, 갈수록 그 외로움이 무섭도록 깊어진다고 한 것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따로 독립해서 살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눈칫밥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 나는 이러고 사는 게 서른다섯이나 먹어서 할 짓인가 싶다가도 이 나이 되도록 부모님 곁을 지키며 사는 나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효녀가 아닌가 하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웃기고 있네. 결혼해서 예쁜 손주 보게 하는 게 시대를 초월하는 진짜 효도다.”
엄마의 말은 아무래도 반박하기 힘들었다.
“세연아, 언니 이제 비혼녀다. 나, 비혼으로 살 거야.”
현희 언니는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미니 백을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언니의 비혼 선언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였다.
“왜, 또 누가 괴롭혀? 어떤 놈이야, 이번엔. 애 딸린 과장 그 새끼가 또 그래?”
“진짜 거지 같아. 마흔 넘어 미혼이면 아무나 들이대도 넘어올 거란 생각이 진짜 더럽지 않냐? 더럽게 찝쩍거려.”
나와 현희 언니는 15년 전, 요가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어머, 이제 스무 살? 어리다. 난 스물아홉인데. 거기는 첫차, 나는 이제 막차. 그래도 같은 20대니까 우리 친하게 지내요.”
50대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일한 20대였던 현희 언니와 나는 그렇게 친해졌다. 함께 요가 수업을 들은 지 세 달쯤 됐을 때, 언니는 본인의 우울증이 요가를 통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고, 그 우울증은 그해 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의 배신 때문이었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놈이었어. 4년을 기다려줬는데 합격하니까 싹 말을 바꾸더라. 뭐, 자긴 아직 결혼이 급하지 않은데 나를 붙잡고 있을 수 없다고. 그랬던 놈이 나랑 헤어지고 반년도 안돼서 딴 여자랑 날 잡더라. 여자 집이 좀 살더라고.”
그 후로도 언니의 연애는 번번이 부모님이 재래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있고, 노후 준비가 제대로 잘 되어 있지 않으며, 5천만 원 정도의 빚까지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까지 가지 못했다. 그렇게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언니는 이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비혼주의자가 된 거였다.
“그래서 나 뭘 찾아봤는지 알아? 세연아, 이거 봐봐. 나 여기 가입했다니까.”
언니는 핸드폰을 내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인스타그램 화면이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비행기.’
“뭐야, 이 비행기는?”
언니는 나를 보며 긴 집게손가락으로 화면을 톡톡 치며 가리켰다.
“비, 비혼여성들의! 행, 행복한! 기, 기록들!”
기가 막히지? 혼자서 삼행시를 읊고 난 현희 언니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언니는 두 눈썹을 높게 치켜뜨고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이런 데까지 찾아본 거 보니 진심인데?”
언니는 입꼬리를 지그시 올리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여기 오프라인 모임도 있어. 교대 근처더라. 야, 가보자. 아니, 이 언니를 위해서 같이 가줘.”
주말마다 실패하는 소개팅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어쩌면 이곳이 더 생산적일 지도 몰랐다. 나는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쭉쭉 빨아 마셨다. 얼음이 녹아 영 싱거운 맛이었다.
그 주 화요일 저녁, 교대역 앞에서 현희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어깨 셔링이 잡힌 소라색 쉬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준비됐지? 나 좀 떨린다.”
언니는 명치 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떨릴 게 뭐 있어. 어차피 다 여자들일 텐데.”
모임 장소는 교대역 4번 출구 쪽 서점 건물 2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습기가 물을 뿜어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층 서점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적 전용 공간이었다. 잠시 뒤,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둘은 양손에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있었다. 오늘 모임에서 마실 것인 듯했다.
“어머, 두 분 먼저 오셨네요. 현희 씨, 세연 씨 맞으시죠?”
문을 열고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둘은 양손에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있었다.
상아색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워 보이는 하얀 피부와 점이 찍힌 듯 옴폭하게 들어간 양 볼의 보조개를 잘 활용할 줄 아는 미소였다. 보조개 여자는 자신을 이선민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전 임슬기예요.”
보조개 여자 뒤로 함께 들어온 키 작은 여자가 이어 자기소개를 했다. 누가 보아도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통이 큰 청바지에 엉덩이까지 덮는 헐렁한 갈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건 마치 몸의 윤곽을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새까만 칼 단발 머리카락에 짙은 일자형 눈썹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명랑한 인상을 주었다.
보조개 여자는 우리를 안쪽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옅은 회색빛 세라믹 테이블의 중앙에는 샌드위치와 미니 초콜릿, 투명한 통에 든 다과용 쿠키가 종류별로 올려져 있었다. 슬기라는 여자가 들고 있던 음료들을 그 옆에 하나씩 꺼내 올렸다.
“먼저 오신 분들이 먼저 골라가세요.”
다섯 명인가 봐. 현희 언니는 음료가 다섯 잔인 것을 확인하곤 조용히 입속말을 했다. 그 사이, 진한 플로랄 향수 냄새를 풍기며 숏컷 머리의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아마도 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 것 같았다. 가습기 소리만 나던 백색의 공간에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선율이 채워졌다.
“시작해볼까요? 오늘은 두 분의 신입 회원과 함께하는 기쁜 날이네요. 두 분은 서로 아는 사이시죠?”
보조개 여자가 테이블의 가운데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숏컷 여자는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빼서 가방에 넣고 있었고, 슬기라는 여자는 에이포 용지를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제가 데려왔어요. 사실 얘는 비혼을 완전히 결심해서 온 건 아니긴 한데….”
“아.”
맞은편에 앉은 보조개와 숏컷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라는 여자는 고개를 숙인채로 여전히 에이포 용지만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히 테이블 위의 미니 초콜릿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럼 신입 두 분을 위해서 저희도 각자 소개를 좀 해볼까요?”
보조개 여자가 먼저 시작했다. 이선민. 85년생. 신도시 쪽에서 에스테틱 샵을 운영하고 있는데, 개인 샵을 차린 건 3년쯤 됐다고 했다. 오프라인 소모임의 주최자라고 했고, 온라인 모임에서는 SNS 홍보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숏컷 여자의 차례였다.
“안인숙이에요. 회계 법인에서 일하고 있어요. 일이 많이 바쁠 때는 모임 참석하기가 힘들지만, 지금은 좀 여유가 있는 시즌이라 동생들 만나러 이렇게 나와요.”
인숙은 크림색 블라우스의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며 말했다.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실루엣이 고급스러웠다.
“아, 나이는 올해 반백 살 넘겼어요. 대단하죠? 결혼했으면 슬기만 한 딸이 있었을 텐데, 그치?”
슬기라는 여자가 짧은 머리를 찰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꽤 친해 보였다.
“전 임슬기예요. 아까 인사드렸죠? 모임 내 유일한 20대이고요. 학교 다니고 있어요. 애인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선 결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비혼 생각했어요. 오프 모임에선 제가 총무예요. 온라인에선 선민 언니랑 SNS 홍보 업무 같이하고 있고요.”
슬기라는 여자는 손목에 레터링 타투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귀밑과 쇄골 옆에도 있었다. 나는 슬기가 아무래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비혼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나와 현희 언니까지 소개를 마치자, 선민이 본격적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안내드렸던 대로 ‘비혼 유언장 쓰기’예요. 현희 씨, 세연 씨는 준비가 되지 않으셨을 테니 오늘은 그냥 다른 회원들 이야기 편하게 들어보세요.”
선민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혼 유언장이라니. 나는 그냥 유언장조차 써 본 적이 없을뿐더러, 남의 것을 읽어본 일도 없었다. 당황해하는 나를 의식한 듯 인숙이 샌드위치를 접시 위에 올려 담으며 말했다. 얇게 저민 햄과 치즈, 그리고 루꼴라가 듬뿍 들어간 잠봉뵈르 샌드위치였다.
(2편에서 계속)
© 사진: さみ ねこ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