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여성 2

말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자면, 여기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by 이나무






“유언장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우실 수 있겠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특히 저희 같은 경우에는 죽고 난 후의 정리랄까, 그런 것에 대해 더 세심하게 준비해둘 필요가 있기도 하니까.”

인숙은 말을 끝내자마자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샌드위치 안에 있던 루꼴라가 후드득 떨어졌다. 슬기가 인숙에게 냅킨 몇 장을 건네주었다.

“저부터 할게요.”

선민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첩을 꺼내 유언장 내용을 발표했다.

“하나, ‘어쩌다 비혼’ 아닙니다. ‘그래서 비혼’입니다. 오롯이 나의 의지로 선택한 비혼이니까요. 둘,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아닙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우리 사회가 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셋, ‘나 혼자 산다’ 아닙니다. 항상 함께했습니다. 이 길을 서로 격려해준 많은 비혼여성들과요. 비록 국가의 출산율엔 기여하지 못했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열심히 책임을 다해 살다 갑니다.”

선민은 검은색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돌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어쩌다 보니 비혼이 되었다고 하면, 마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안 한 루저들이 된 것 같잖아요. 그런 식의 비혼이라면 결국 스스로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고, 죽을 때까지 남들 눈치만 보게 될 거예요. 우리는 비혼을 ‘선택’했어요. 그러니까 괜히 막 주눅 들고 그러지 말아야 해요.”

주눅 들어 있는 쪽은 어쩌면 선민 자신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주눅이니 뭐니 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선민이 비혼이라는 선택 앞에서 그런 감정을 의식하며 산다는 걸 몰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사이, 책장 위의 스피커에서는 빌 에반스의 다음 곡이 재생되고 있었다.

“음, 난 선민이 유언장 마지막 부분이 좋아. 보통 비혼여성들은 다 혼자 고립돼서 살거라고 생각하잖아. 근데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아. 우리만 봐도 선민이, 슬기는 애인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그치?”

인숙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아, 두 분은 만나는 분이 계시는 건가요?”

현희 언니였다. 애인이 있는데도 비혼을 결심한다는 것이 의아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나는 선민과 슬기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슬기의 짙은 일자 눈썹이 약간 일그러졌고, 그 표정은 후로도 내내 거슬렸다. 선민은 말을 이었다.

“아, 저 같은 경우는 남자친구가 있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는 원치 않거든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 같고요. 아직까지는 상대방도 제 생각에 동의하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만나고 있는 거고요.”

애인과 함께 사는 비혼주의자라니. 정작 선민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불편했다.

선민의 말이 끝나자, 인숙이 검은색 가죽 호보 백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

인숙은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글을 읽기 시작했다.

“유언자 본인은 이 유언서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인숙은 유언장에서 서초구의 아파트는 동생 안연수에게 상속하며, 본인 명의 예금 및 주식 전부는 본인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면 부모님께 전액 상속, 부모님 사망 시에는 동생 안연수의 두 자녀에게 균분하여 상속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 이거 찐 현실이다. 인숙 언니 조카들은 좋겠다.”

슬기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덧붙여 많은 비혼 여성들에게 전합니다. 경제적 독립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독사가 안타까운 건 혼자 살다 죽어서가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이 돈까지 없이 살다 죽어서 안타까운 거니까요.”

인숙은 유언장의 마지막 부분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맞아요. 그리고 하나 더. 주거의 문제도 중요해요. 주거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비혼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요.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신혼부부 행복주택처럼 공공주택 청약을 잘 활용하더라고요. 아이를 낳으면 거주 기간을 계속 연장할 수 있기도 하니까. 거기에 비하면 비혼 가구는 세금만 부지런히 내는 거죠, 뭐. 대출 한도도 미혼 단독가구주에게는 제한이 걸려 있는 것도 아시죠?”

선민이었다. 그녀는 비혼여성의 주거 문제에 각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듯했다. 선민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비혼여성 주거공동체 관련 소식이 비행기 공식 인스타 계정에 업로드되어 있으니 꼭 참고하라고도 말했다.

“저는 요즘 학교 과제가 폭발이라….”

슬기는 글이 완성되는 대로 본인의 인스타 계정에 올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남은 다과를 먹으며 잠깐 쉬었다. 인숙은 걸려 온 전화를 받느라 바빴고, 슬기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는 것 같았다.

“두 분도 비혼 유언장 한 번 써 보세요. 다음 모임 때 두 분 글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선민은 이것으로 이번 모임을 마치겠다고 했다.


그날 밤, 현희 언니는 카톡으로 ‘박현희의 비 혼 유 언 장’이라는 제목의 글 한 편을 보냈다. 늙은이 혼자 살면 아플 때가 제일 문제니, 건강을 잘 챙겨라, 건강 챙기는 게 돈 굳히는 거다, 남자는 함부로 믿지 마라, 어중간한 놈, 나쁜 놈 만날 바에야 혼자 사는 게 낫다는 내용이었다.

<숙제 너무 빨리한 거 아니야? ㅋㅋ 우리 언니, 이러다 비행기 모범회원 되겠어.>

<너도 하나 써 봐. 경건해진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펜 중에 심이 가장 굵은 것으로 골라 쥐었다. 오래된 스프링 공책에서 종이 한 장을 찢었다. 뭘 써야 할지, 한참 동안 종이와 펜을 번갈아 쳐다보아도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창밖으로 풀벌레 소리만 들려왔다. 달무리가 짙었다. 나는 결국 제목조차 쓰지 못했는데, 그냥 내가 이 고요한 가을밤에 비혼 유언장을 쓴다는 게 영 이상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선민에게서 공지 문자가 왔다.

<작성한 비혼 유언장을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든 읽어주세요. 다음 모임에선 읽고 난 후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나는 결국 유언장을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두 번째 모임에 참석했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읽어주지 않은 거야?”

1층 서점 앞에서 현희 언니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안 했어. 유언장 자체를 쓰지도 못했는데 뭘. 아, 그냥 좀 이상해. 특히 슬기 그 친구, 고작 스물한두 살짜리가 뭣 하러 이런 델 왔을까 싶지 않아? 지난 모임 때부터 이상하게 좀 거슬려.”

“왜, 난 다 괜찮던데? 네가 괜히 슬기를 의식해서 그런 거 아냐?”

현희 언니는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언니의 짝퉁 샤넬 귀걸이가 소란스럽게 흔들거렸다.


“시작할게요. 오늘은 안내 드린 대로 비혼 유언장 후기를 나누어볼 건데요. 쓰는 거랑 남들 앞에서 읽는 거랑은 참 다르더라고요. 다들 쉽지 않으셨죠?”

나는 선민의 눈을 피해 괜히 목덜미를 주물렀다.

“어, 전 글 완성해서 인스타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인친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슬기의 목소리는 지난번 모임 때와 달리 좀 쉬어 있었다. 그녀가 오늘따라 유독 더 불편하게 느껴진 건 그 거칠고 빳빳한 목소리 때문인지도 몰랐다.

“댓글엔 응원한다는 내용이 가장 많았어요. 자기도 20대인데 비혼 결심했다고.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서 부부 갈등, 고부 갈등, 육아의 고충, 심지어 불륜까지, 워낙 보고 듣는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돈 때문에 연애 자체를 포기한 친구들도 많거든요. 연애할 돈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냐. 그런 유형 중엔 남자들도 제법 있고요. 비혼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만든 사회의 문제다. 뭐 그런 얘기 많이 나오잖아요.”

이어 선민은 동거 중인 남자친구에게 글을 읽어주었다가 크게 싸우고 만 후기를 전했다.

“비혼 유언장을 쓸 정도로 비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줄은 몰랐다며 버럭 화를 내더라고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모임 활동 중 하나지, 법적 효력을 갖는 그런 유언장은 아니라고 얘기했는데도 아직까지 저하고 말도 안 해요. 청중을 잘못 고른 제 잘못이죠. 샵에 오시는 단골손님들한테나 읽어드릴 걸 후회했어요. 비혼 유언장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다음은 현희 언니의 차례였는데, 언니는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없었던 것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후배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게 우리가 제일 많이 듣는 소리잖아요. 적어도 여기 있는 우리들만큼은 거기에 대한 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세연 씨 생각은요?”

슬기였다. 갑작스러웠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슬기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편한 정적을 깨 준 건 선민이었다.

“아… 세연 씨, 혹시 비혼 유언장 글은 써 보셨나요? 그러면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을 텐데.”

선민은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아이를 달래는 사람처럼 다정하고 친절했다. 하지만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아이는 늘, 언제나 울음을 터뜨리기 마련이었다.

“아뇨, 써 보려고 시도는 했는데 한 줄도 못 썼어요. 사실, 유언장이라는 말도 좀 부담스럽고, 비혼 유언장이라고 하니 더 어렵더라고요.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와서요.”

선민은 별말 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세연 씨는 비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신 건 아닌가 봐요.”

또다시 슬기였다.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아, 세연이 얘는 아직 종종 소개팅도 나가고 하거든요. 사실 별생각 없는 애를 제가 데려오긴 했어요. 그래도 첫 모임 하고 나선 재밌었다고, 도움 되는 얘기들도 많았다고 했어요, 그치?”

현희 언니였다. 언니는 구원 투수 마냥 이 대화를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언니의 등판은 분위기를 더 악화시켜버렸다.

“소개팅도 종종 나가시는 분인데, 별생각 없이 지인 따라 이렇게 나오실 필요는 없죠. 우리한테 이건 되게 절실한 문제예요. 그냥 재미로 여기서 유언장 같은 거 쓰고 앉아 있는 건 아니라서요.”

슬기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런 말을 준비해뒀던 사람 같았다. 빳빳하고 거친 그녀의 목소리가 사포처럼 나를 긁었다. 인숙은 진정시키려는 듯 슬기야, 하고 말했고, 선민은 옆에서 말없이 조용히 커피만 들이켰다.

“어, 슬기 씨, 세연이 얘, 장난삼아 여기 온 건 아니에요. 유언장 쓰는 게 좀 어려웠다, 그런 얘길 했을 뿐인데…. 좀 공격적이시다.”

현희 언니는 말을 마치자마자 생수 뚜껑을 까서 맹물을 들이켰다.

“뭐, 그렇다고요.”

언니는 구원 투수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이, 정확하게는 자신도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이 혼자 고개만 끄덕였다.

“세연 씨, 하실 얘기 있으면 하세요.”

슬기는 계속해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유독 나에게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불쾌했다.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는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 정도일 뿐인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뗐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면 이렇게 시간 내서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그런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오자마자 비혼 유언장을 쓰라느니, 그걸 또 읽어주라느니 하는 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여기가 점점 불편해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재미로 온 거라면 유언장 글이야 대충 쓸 수도 있었겠죠. 근데 그러긴 싫었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나는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거나, 말이 빨라지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온몸엔 이미 열이 올라 입술까지 바짝 말라 있었다. 반면 슬기는 서늘하리만큼 표정 없이 입을 꾹 다물고 테이블 위에서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를 보자 참고 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말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하자면, 여기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끼리 여기 앉아서 유언장 쓰고 사람들한테 읽어줘봤자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자기네끼리 비혼으로 살면 되지, 뭘 이런 것까지 하면서 시끄럽게 사나, 한다고요.”

하고 싶은 말.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그 행복한 기록들을 보여주겠다며 인스타그램에 비혼모임을 만들고, 취향 좋은 공간에서 그럴싸한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양상추가 아닌 루꼴라가 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서로 멋지다, 잘한다, 하는 소릴 하고 있는 그녀들을, 나는 고작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라는 것.

“솔직한 얘기 잘 들었어요. 세연 씨 같은 사람들, 많이 봤어요. 비혼 하는 여자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길 하고 사는지, 그게 궁금해서 온 거라면 그냥 오늘까지만 하세요. 이렇게 된 이상 저희도 불편하니까. 세연 씨가 말한 유난스러운 이 모임, 기 빨리게 나오지 마시고요.”

슬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민은 슬기에게 잠깐 바깥바람을 좀 쐬고 오라고 말했고, 슬기가 나가자 선민은 이곳에서의 활동이 부담스러우면 활동 과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아뇨, 사실 처음부터 좀 불편했어요. 제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계속 있어봤자 다른 분들께도 민폐일 것 같아요. 제가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곳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건물 출입구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슬기가 보였다.

<딸, 소개팅 하나 더 하자. 엄마 친구 윤옥이 이모 알지? 그 이모 지인 아들이야.>

지하철을 기다릴 때,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고, 나는 그러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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