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여성 3

빙글빙글 하늘을 떠돌던 비행기가

by 이나무





남자는 통신설비 관련 사업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대화의 대부분은 ‘주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 18:22 말씀입니다. 결혼이야말로 주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이지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정수리 쪽에 비죽 솟은 흰머리 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는 그런 나를 의식한 듯,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5장 22절 말씀입니다. 아, 물론 남편의 의무도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윤옥이 이모는 매주 절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서 이런 신실하신 분을 찾아오신 걸까. 적당한 타이밍에 대화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죄송하지만 저는 무교예요. 앞으로도 특정 종교를 가질 생각도 없고요. 아무래도 저는 주님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돼서 드리는 얘깁니다.”

우리는 각자 남은 음료를 마저 다 마시고 일어났다. 슬기에게서 문자가 온 것은 그때였다. 아마도 현희 언니가 내 번호를 알려준 것 같았다.





<저예요. 슬기. 잘 지내시죠? 만나 뵐 수 있을까요?>





10월 중순치고는 꽤 쌀쌀한 날씨였다. 어제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진 탓이었다. 슬기는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고, 어딘가 지쳐 보이기도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오신다길래 놀랐어요. 아예 제 연락에 답도 안 하실 것 같았거든요.”

슬기는 나에게 커피잔을 건네며 말했다.

“저도 모임에 안 나갔어요. 우린 정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문득 그 생각이 또 들었거든요. 세연 씨 말처럼 이렇게 살고 싶으면 조용히 그냥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렇게 살면 돼요. 비혼으로 살고 싶으면, 조용히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요. 나는 결혼 주의자예요! 이렇게 떠들면서 사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슬기는 온몸에 힘을 다 빼고 있는 것 같았다. 카페 창밖 어딘가로 시선을 두고 있는 표정에도,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에도. 우리는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고2 때, 처음 여자 친구가 생겼어요.”

슬기가 다시 먼저 입을 뗐고, 그때에서야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 같이 사는 애인도 여자예요.”

짙은 눈썹과 큰 눈. 슬기의 눈은 약간 웃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의 그 명랑함이 묻은 얼굴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엄마한테 소개했죠. 남자친구가 아니라 여자친구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어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응, 여자 친구. 저는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어요. 됐다, 그만해. 엄마의 말은 그게 다였어요. 다른 어떤 말도 없었죠. 그날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어요. 밤이 새도록, 피가 터지도록 얘기할 줄 알았는데.”

슬기는 빨대로 얼음이 든 유리컵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곧 고3이 됐고, 어차피 집에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입시가 뭐가 중요해요. 수능 준비하는 애들은 적어도 나보다 하나쯤은 고민거리가 덜한 애들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해야 하는 것들은 더 하기가 싫어지고, 내 마음 가는 대로만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에, 엄마가 딱 그 말을 했어요.”

슬기는 휘젓던 빨대를 내려놓더니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요.”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슬기는 말을 멈추고 그런 나를 쳐다볼 뿐이었는데, 나는 슬기의 눈을 피하려고 괜히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한 번도 내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던 딸이었는데. 도대체 이제 와서 왜 이러느냐고. 엄마가 그랬어요. 그냥 남들 살듯이 그렇게 살자고, 그렇게 사는 게 속 편한 거라고. 그즈음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여자친구와는 헤어졌어요. 겨우 정신 줄 붙잡고 수능을 쳤어요. 점수에 맞춰 아무 대학이나 일단 들어갔죠. 남들 살듯이는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게 3년 전이고, 대학에 들어와서 만난 새 여자친구와 동거하면서 독립했어요. 같이 살면 주거비용은 아낄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엄마와 만날 일은 더 없게 됐고요. 가끔 연락이 닿으면 엄마는 자주 그 말을 했어요. 슬기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 근데요. 저는 그때까지도 엄마에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어요.……언니, 혹시라도 제 얘기가 불편하면 얘기해요.”

슬기는 그즈음 나에게 언니,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슬기는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그러니까, 작년 겨울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딱 하나 있는 딸까지 연을 끊었으니…. 매일 시외버스를 타고 편도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절에 출퇴근하듯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절 근처 산에 오르셨고……실족사였어요. 겨울 산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했어요. 내 잘못인가 싶어 괴로웠는데…. 내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

슬기는 눈을 떨구며 혼잣말처럼 계속 말을 이어갔다.

“결국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 그리고 엄마에게 듣지 못한 말들만 남았어요. 엄마가 그때의 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줬더라면. 내가 엄마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엄마의 말에 답을 해 줬더라면…. 뭐 그런 생각.”

슬기는 담담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 여기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슬기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는 제 질문에 언니도 아무 말이 없었죠? 그 모습을 보는데, 엄마의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엄마도요. 언니에게 만나자고 한 건 그래서예요. 말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또 그냥 말들만 남을 테니까. 그 말들만 남아서 허공에 떠다닐 테니까. 시끄럽잖아요, 그런 거. 시끄럽기만 할 것 같아요. 이제는 하나씩 잡아서, 제 자리에 넣어보고 싶어요. 그럼, 우리 전부 서로 편안해질 것 같거든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린 이렇게 살고 있다고, 이렇게 살고 싶다고, 우리의 말을 좀 들어달라고, 비행기 모임의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그 시끄러운 말들을 담을 귀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혼과 비혼 사이 둘 중 하나를 빨리 골라, 늦지 않게, 빨리.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그런 말들에 자리를 잃고 허공을 마구 떠다녔다.

“언니는요? 언니는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유가 뭐예요?”

“뭐, 결혼을 할 만큼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고, 비혼을 할 만큼은 용기가 없어서지.”

“왜요?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용기가 없단 건 무슨 의미예요? 어떤 점이 두려운 거예요? 말해 봐요, 언니. 나한테 다 말해 봐요.”


나는 생각했다. 슬기에게 내 귀를 조금씩 더 내어주기로. 그녀의 떠도는 말들이, 아직도 허공의 어딘가에 남은 그녀의 말들이, 누군가가 내어준 자리에 조용히, 편안하게 내려앉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어쩌면 슬기도 나에게 그래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하면서. 빙글빙글 하늘을 떠돌던 비행기가 안전하게 활주로에 내려앉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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