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기다리는 밤 1

여자는 아이를 담요에 감싸 안고 있었다

by 이나무





한겨울 칼바람을 피해 들어온 듯 여자는 아이를 담요에 감싸 안고 있었다. 목을 겨우 가누는 정도의 갓난아이였다. 놀란 쪽은 엄마와 나였다. 여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낡은 진회색 소파에 앉아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바닥에 딱 붙인 채였다. 그러니까 이곳은 아파트 커뮤니티 내에 있는 경로당이었다. 갓난아이를 안은 여자가 있을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가로등 불빛이 경로당 창문으로 새어 들어와 여자의 얼굴을 누렇게 비추고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아 보였다.

“누구세요? 뭐 하세요?”

엄마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으며 말했다. 경로당 총무인 엄마는 밤 9시쯤이면 늘 이곳에 들렀다. 마지막에 나가는 어르신이 문 잠그는 것을 잊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경로당 입구에서 문이 잠겼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오늘은 희한하게 유모차 한 대가 경로당 입구에 놓여 있는 것도, 문 안쪽의 신발장에 못 보던 슬리퍼 한 켤레가 있는 것도 이상했다.

“여기 입주민이에요?”

나는 불을 켜며 말했다.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굽실거리는 중단발의 머리칼은 기름이 껴 지저분해 보였고, 얼굴을 뒤덮은 기미가 백열등 아래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정수리 쪽에 성깃성깃하게 올라온 흰머리 때문인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엄마는 소파 위에 놓인 노란 에코백 안에 기저귀와 각종 아기용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했다.

“입주민이라 해도 여기 이렇게 허락 없이 들어오면 안 돼요.”

여자는 품에 안은 자신의 아이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는 이 소란 속에서도 깨지 않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화장실만 좀 쓰고 가도 될까요.”

꽉 눌린 목소리였다. 누군가 여자의 목울대를 눌러버려서 온 힘을 다해 말해도 그 정도가 최선일 것만 같았다. 여자는 아이를 소파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옷을 털며 일어섰다. 150 중반쯤 되는 키. 살갗만 남은 앙상한 목과 움푹 팬 눈두덩이. 아이는 소파 위에서 몇 번 발을 꿈틀대더니 이내 숨을 몰아쉬었다.

“죽은 줄 알았네.”

엄마는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 아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애는 깨끗하네. 어쩜 깨지도 않고 이리 잘 자니.”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엄마는 말했다.

“손도 대지 마.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일로 덮어쓰려고 그래.”

나는 엄마의 손등을 때렸다. 지난달, 학원 원장이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 저지하다가 학부모로부터 고소 직전까지 갔던 일이 있었던 터였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는 소파 위에 눕혀뒀던 아이를 다시 끌어안았다. 허연 각질이 부르튼 여자의 입술이 아이의 볼에 닿았다.

“남편하고 싸웠어요?”

엄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여자는 그제야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이내 눈곱이 가득 낀 여자의 두 눈이 경로당 창문 쪽을 다급하게 훑었다. 목 부분이 다 늘어난 밤색 스웨터 위로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가 보였다.

“죄송해요.”

여자는 다시 고개를 떨군 채 입을 닫더니 우리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급히 가방을 챙겨 아이를 업고 나가버렸다. 나는 경로당 냉장고 안에 없어진 음식은 없는지 확인했다. 한 달 넘게 냉장고에 보관 중인 검은콩두유 한 상자와 귤 한 봉지, 단팥빵 서너 개. 나는 엄마를 향해 냉장고 문을 열어 보였다.

“냉장고를 뒤진 것 같진 않네. 정신 나간 여자는 아닌 것 같은데.”

엄마는 싱크대 위의 음식물 쓰레기가 든 비닐봉지를 챙겨 들며 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파 뒤 작은 창문의 걸쇠를 확인했다.

문을 잠그고 나왔을 때는 여전히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있었다. 아파트 중앙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 포장 상자가 요란하게 굴러다녔다. 하늘에는 송곳으로 긁어 놓은 듯이 얇은 그믐달 하나가 떠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게 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엄마가 잠근 경로당 문을 한 번 더 당겨 보고는 집으로 올라왔다.

연이은 학부모 상담과 몇몇 아이들의 레벨 테스트, 그리고 새로 맡게 된 국제중 대비반 준비로 만만찮은 2월의 첫날이었다. 우리 원은 동네에서는 소위 입소문이 난 어학원이었다. 원장은 15년 전까지 대형 학원에서 중, 고등학생들의 영어를 가르치다가 이곳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학원을 열었다. 유명 학원에서의 경력이 먹혀들었는지 이후 줄곧 원장의 수업을 듣기 위해 꽤 먼 거리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올 만큼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치열해지는 학원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업 하나로만 승부를 보기는 힘들었고, 원장에게는 늘어가는 학생과 학부모를 관리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교육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젊고 열정적인 강사진이 필요했다. 그즈음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내가 우연히 원장의 지인이었던 대학원 조교를 통해 자리를 소개받았고, 마침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이 필요했던 나는 큰 고민 없이 그해 가을부터 이곳에서 학원 일을 하게 됐다.

“정연쌤, 은준이 어머님이 또 전화가 왔던데….”

“아, 그 일은…. 은준이 토익 성적이 딱 20점 모자라요, 원장님. 항상 틀리는 RC 유형을 틀리기에 정신차려야한다고 한마디 했었던 거고요. 지난번에도 애한테 어려운 질문 좀 했다고 자존감이 떨어지니 어쩌니 하더니. 이래서야 애들 지도를 어떻게 하겠어요.”

“너무 깊이 생각 말고 그냥 바로바로 사과드려요. 앞으론 그런 일 없게 하겠다고 하고. 자식 둔 부모가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거니까. 더한 진상들도 많은데 그만하면 양반이야.”

사과도 일종의 상담 노하우라며 원장은 나를 타이르듯 말했다. 수업 내용이나 교수 방식에 대해 클레임이 들어오는 건 다반사였고, 일부 학부모들은 나의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묶어라, 잘라라, 어두운색으로 염색하라-처럼 용모에 대한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는 이런 일들이 꽤 주기적이기까지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눈과 귀를 닫고 애써 스스로 주문을 걸듯 마음을 다잡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클레임이 반복되면 나도, 정연쌤도 곤란해져요. 무슨 말인지 알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손이 떨릴 정도로 허기가 진 상태였다. 식은 밥에다 된장찌개를 떠 담아 대충 비벼 삼켰다. 생각보다 매콤한 탓에 사레들린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홍고추를 젓가락으로 골라 빼내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로당. 어제 그 여자가 또 와있어. 잠깐 내려와 봐.”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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