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기다리는 밤 2

지나친 연민. 나는 부녀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by 이나무





경로당으로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틀림없이 자기 손주를 안고 있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정연이 니가 결혼했으면 요만한 애가 하나 있었을 거 아냐. 봐라, 봐. 얼마나 이뻐. 안아볼래?”

나는 엄마를 향해 눈을 흘겼다. 서른 후반에 접어들며 딸에게서 반쯤 내려놨던 엄마의 손주 타령이 다시 도질 것만 같았다. 여자는 어제처럼 경로당 소파에 앉아 두 발바닥을 바닥에 딱 붙인 채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내보내. 손도 대지 말라니까 정말. 이러려고 날 부른 거야?”

불쑥 올라오는 화를 간신히 참으며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입술의 양 끝이 부르르 떨렸다.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이를 안은 두 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얘 봐라. 어제는 잠만 자서 몰랐는데 이리 잘 웃어. 낯도 안 가리고. 애가 희한하네.”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상한 우유에서나 날 법한 냄새였다. 저녁을 때려 넣듯 급히 먹고 나온 탓에 속이 울렁거렸다.

“냉장고에 두유 있는 것 좀 내어 와. 장에서 이불도 좀 가져오고. 애 좀 눕혀두자.”

“괜찮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텁텁하고 거칠었다.

“먹어요. 그리고 오늘은 얘기 좀 해요.”

집으로 올라가려는 나를 불러 세운 엄마는 결심한 듯 여자에게 말을 꺼냈다. 여자는 엄마가 내어 준 두유 팩 빨대의 비닐을 손끝으로 긁기만 할 뿐 또 아무 말이 없었다. 바싹 마르고 주름진 손에 끼워진 은색 반지가 여자의 손가락에는 좀 커 보였다.

“애기 아빠는 집에 있어요?”

엄마는 아이를 눕힐 이부자리를 펴며 물었다. 들뜬 바닥 장판에서 쩍쩍 소리가 났다.

“예.”

여자의 얼굴에는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퍼석하게 말라 움직일 때마다 마른 낙엽이 바스러지듯 여자의 몸에서도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애기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엄마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결혼하곤 돈을 갖다 준 적이 없어요.”

여자의 머리카락이 눈을 가려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그럼 새댁이 돈을 다 벌어다 쓰는 거예요? 그게 가능해요? 이 핏덩이를 두고?”

엄마는 나에게 기저귀, 라고 말하며 여자의 노란 에코백을 가리켰다. 가방 안에는 씻지 않은 젖병과 여자의 핸드폰, 교회에서 받은 물티슈 두어 개가 뒤섞여 있었다.

“아이가 생겨버려서…. 결혼하기 전에 모아둔 돈이 있었어요. 그걸로 지금 집 보증금도 내고 월세도 내고….”

엄마는 능숙하게 아이의 기저귀를 벗겼다. 울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오줌에 불어 터져 있었다.

“애기 아빠는 그럼 맨날 집에 있어요? 어떻게든 일을 구해야지.”

여자는 손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다.

“애 아빠가 집에 들어온 날은 여길 오는 거였네. 맞죠?”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푹 꺼진 볼 때문인지 광대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어쩔 거예요, 새댁은. 이 갓난애를 두고 어디 일하러 갈 수도 없을 거고. 친정 식구들은 없어요?”

“엄마는 아프세요. 오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연락이 끊겼고요.”

쇄골 쪽에는 어딘가에 긁힌 듯한 상처가 보였다. 여자는 상처 부위 주변을 긁어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리카락을 쇄골 쪽으로 빗어 내렸다. 그때 가방 안에서 여자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 받아요?”

엄마는 여자를 향해 받아보라는 고갯짓을 했다. 깨진 액정 화면으로 ‘남편’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여자는 황급히 아이를 들어 안았다. 조용하던 아이가 자지러질 듯 울어댔다.

“가봐야겠어요.”

어딘가에 홀린 듯이 가방을 챙겨 든 여자는 경로당의 얇은 홑이불에 아이를 싸안은 채로 정신없이 경로당을 빠져나갔다.

“저 여자… 어제도 저랬니?”

엄마는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어제는 그래도 애를 포대기에 업고는 갔지.”

“아니. 저렇게 다리를 절뚝였냐고.”

그 밤, 엄마는 경로당의 문을 잠그지 못했고, 나는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여러모로 까슬한 밤이었다.

여자에 대한 문제가 아파트 내에서 공론화된 것은 이틀 뒤 저녁이었다. 엄마와 내가 경로당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우연히 107동 동대표가 보게 됐고, 원래도 무언가를 캐내는 일에 특화된 사람인 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긴급하게 입주자대표 회의가 열렸고, 엄마와 나는 회의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우리 아파트 입주민인가요?”

회장 김 대표였다.

“입주민 맞습니다. 108동 살더라고요.”

8동이라면 임대동이었다.

“월세라면서요.”

짧은 백발의 머리를 한 남자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월세 내면 입주민이 아닌가요?”

엄마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엄마에게 향했다. 원래 참관인 자격으로는 그 어떤 발언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입주자대표회의 원칙이었지만, 아무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경로당에서 없어진 물건은 없나요?”

잠깐의 정적 후에 다시 김 대표였다. 엄마는 없어진 물건은 없지만, 냉장고에 있던 두유 몇 개를 여자와 나누어 마셨다고 말했다.

“어차피 남아서 버리는 게 반이에요. 어르신들 잘 드시지도 못하고.”

감사직을 맡고 있는 1동 대표였다. 50대 초반의 그녀는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처녀였다.

“그렇다고 해서 경로당 회원 자격도 없는 사람이 경로당 시설을 이용하는 건 원칙에 어긋나죠. 원칙대로 합시다, 원칙대로. 매뉴얼대로 하면 문제 생길 일 없어요.”

백발의 남자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도 노숙자들이 종종 들어오곤 했으며, 그때마다 쫓아내는 것만이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부녀회에서는 의견 없나요? 맘스 카페. 차라리 그런 곳을 쓰게 하는 건요?”

“어휴, 맘스 카페는 저녁 6시면 모든 전기, 난방을 다 꺼요. 그에 비해 경로당은 밤늦게까지 운영하니까…. 뭣보다 아이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맘스 카페인데… 그런 사람을 들여서는 안 되죠.”

부녀회 회장은 작년에 이곳으로 입주한 여자다. 부부 모두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어린이날이니 크리스마스니 할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아파트 내 크고 작은 행사를 주최하여 입주민들 사이에서 신임이 높았다.

“어차피 경로당은 지원받는 돈에 비해 시설 이용률이 떨어져요. 입주민이잖아요. 당분간은 이용할 수 있게 해 줍시다. 우리가 운영하기 나름이에요.”

1동 대표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볼펜을 탁탁 치며 말했다.

“우리가 뭐 유니세픕니까? 그런 식이면 끝도 없어요. 남의 가정사까지 다 돌봐야 할 이유는 없다고요. 가만 보니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 같던데, 경찰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관할 주민 센터에 신고하면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요즘 워낙 그런 취약계층 쪽은 잘 챙겨주니까.”

7동 대표는 주민 센터에 본인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며, 그를 통해 알아보겠다고 했다.

“힘들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 여자처럼 행동하진 않아요. 그 여자 사정까지 다 봐주면서 도와주겠다는 건 지나친 연민이라고 생각해요.”

지나친 연민. 나는 부녀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우리는 원칙대로 하는 게 맞겠습니다. 설 연휴 잘 보내시고요.”

김 대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여자 문제는 주민 센터로 넘기기로 결정됐다.


새벽 내내 몇 번이나 잠이 깼고, 화장실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몇 시쯤 되었을까. 거실로 나왔을 때, 엄마는 부엌에서 대파를 썰고 있었다.

“내가 봐줄까 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엄마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파만 썰어대며 말했다.

“뭘? 누구를? 애를?”

도마 위에 칼질 소리만 울려 퍼졌다.

“손주 같은 애 보는 거야 내가 늘 노래를 부르던 일 아니니.”

“아니 남의 새낄 엄마가 왜 봐줘. 그 여자 일에 휘말려서 어떻게 하겠단 거야.”

도마 위에 엄마의 대파가 가득 쌓여있었다. 눈이 따가워졌다.

“빨리 썰어 논 거 지퍼백에 넣기나 해. 산적에 끼울 거만 남기고. 올 설은 왜 이렇게 명절 기분이 안 나니.”

도마 위의 대파를 음식물 쓰레기마냥 지퍼백에 가득 털어 넣었다. 그리곤 냉동실에 지퍼백을 구겨 넣고 냉동실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냉동실의 냉기가 가슴 위로 쏟아졌다.

(3편에서 계속)









© 사진: UnsplashThe Cleveland Museum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