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기다리는 밤 3

시현은 입에 박카스를 달고 살았다

by 이나무








시현은 입에 박카스를 달고 살았다. 그 당시 시현은 용인의 쿠팡 센터에서 출고 알바를 하고 있었고, 그곳의 직원용 휴게실에는 언제든 꺼내 마실 수 있는 박카스가 상자째로 쌓여있다고 했다.

“내가 누리는 유일한 복지 중의 하나야.”

“박카스 실컷 먹게 해주는 게 무슨 복지야. 커피도 아니고.”

대학가의 라멘집이었고, 길어지는 장마로 덥고 습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현은 마흔이 다 되어가도록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에서 알바를 하며 밥벌이를 했다. 대학교 때 2년 가까이 카페 알바로 돈을 모아 호주 워홀을 계획했지만, 출국 두 달 전에 어머니가 급성 췌장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시현의 인생 계획은 모조리 리셋되었다. 그 후, 편의점 알바는 기본이었고, 식당의 홀 서빙, 주유소, 영화관, 세차장, 피부 관리실의 보조 관리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스포츠 의류 매장 관리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말이 좋아 직장이었지, 전부 알바였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했던 스포츠 의류 매장에서는 매니저급까지 올라갔지만 새로 바뀐 사장과 트러블이 생겨 결국 관두고 말았다. 6개월 조금 넘게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던 시현은 사람과 엮이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아야겠다며 또 한 석 달쯤 일을 쉬었고, 쿠팡 출고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게 바로 그 즈음이었다.

“풀타임 조 출근 명단이라며 도크 번호까지 배정해서 문자 받았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인원 조정으로 당일 근무가 취소됐다고 연락이 왔어. 당일 취소가 말이 되냐? 이딴 식으로 개 같이 까이면 나는 오늘 하루 또 그냥 백수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알바 말고….”

“이번 주는 내내 2인 1조라 화장실도 눈치 보여서 못 갔어. 에어컨을 틀어놔도 하나도 시원하지도 않고. 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탈수증세가 오는데 죽겠더라.”

“누가 하랬니 그런 일. 언제까지 그럴 건데.”

“최정연, 넌 좋겠다. 주말엔 쉬고 휴가도 있잖아.”

“너도 그런 데에서 일하면 되잖아. 왜 안 해? 못하는 거 아니잖아.”

“이 나이에 멀쩡한 일자리 구하기가 어디 쉽냐?”

“해 보기라도 했어? 하다못해 자격증 하나라도 따보려고 공부는 해 봤냐고.”

언제나 열을 내는 건 나였고, 시현은 결국 하던 대로 할 거였다.

“오늘따라 잔소리가 심하시네. 얼른 먹기나 해. 면 다 불겠다. 오늘은 내가 밥 살게.”

한 턱 쏘겠다는 게 고작 대학로의 작은 라멘집에서라니. 나는 시현에게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 돈 받아서 밥을 사긴 뭘 사냐. 됐어. 밥은 내가 사.”

시현의 눈썹이 조금 일그러졌다.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빈 컵 가득 냉수를 들이부었다. 어쩌면 나는 그즈음에서 멈춰야 했을지도 몰랐다.

“윤지가 연락 왔었어. 정시현 아직도 알바만 찾아다니냐고. 네 안부를 왜 다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어. 대답하는 것도 일이야 이젠.”

나는 기름이 둥둥 뜬 라멘 국물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말했다. 국물은 너무 짰고, 라멘 집은 에어컨이 성치 않은 데다 개방형 주방이라 너무 더웠다. 목덜미의 땀을 식히려고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마주친 건 시뻘게진 시현의 두 눈이었다.

“오늘 밥. 내가 산다고 최정연. 나도 돈 벌어.”




시현은 결국 그날 밥값을 계산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건 시현과 나, 우리 둘의 오랜 우정에 대한 계산이었던 것 같다. 계산완료. 습기가 꽉 찬 라멘집의 그 더운 문을 열고 나가면서 시현은 마음속으로 나와의 관계 또한 그렇게 정리한 걸지도 몰랐다. 별 일도 아니었다. 늘 해오던 20년 지기 친구끼리의 투닥거림이었고, 익숙하리만큼 뻔한 대화였다. 조금 달랐던 것이 있었다면 그건 하필 그날, 시현과 내가 단골처럼 찾던 그 라멘집의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거였고, 그래서 우린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나는 값싼 라멘 한 그릇치의 말 밖에는 해 줄 수 없었다는 거였다.

나는 내 삶도 벅찼다.








다음 날 저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을 때, 화단가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 품에 안은 아이. 희선이었다. 희선은 조용히 일어나더니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가로등 빛으로 사방이 환한 탓에 멍투성이인 희선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맞았어요?”

희선의 품에서 아이가 기침을 해댔다. 작은 몸통이 기침 몇 번에 부서질 것 같았다.

“남편 지금 집에 있어요?”

희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경로당에 들어가 있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경로당에 있는 걸 알아요, 애 아빠가.”

“신고는 했어요?”

이번엔 말이 없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희선은 그런 아이를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람이 거셌다.

“왜 그러고 살아요?”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것인지, 희선은 몰아치는 바람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왜 맞고 사냐고요. 애비 노릇도 못 하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맞아가면서 사냐는 말이에요. 애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저런 아빠랑 앞으로 살아야 할 애가.”

아이의 멈추지 않는 기침 소리가 불편했던 걸까. 아니면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멍투성이의 희선을 바라보는 것이 버거웠던 걸까. 온몸에 닭살이 돋았고, 결국 나는 목구멍에 꽉 끼어있던 말들을 쏟아내 버렸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하시네요.”

희선은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매번 나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했던 희선이었다.

“그런 건 참 쉽죠.”

희선은 아이를 자신의 품에 바짝 끌어안았다. 악을 쓰듯 온몸으로 바람을 맞서며 선 희선을 보고 있자니 순간 나는 그녀 앞에서 벌거벗겨진 사람마냥 부끄러워졌다.

“불쌍하죠? 근데 거기까지잖아요. 그래서 뭘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나한테 필요한건 당장 일할 곳이에요. 다른 걸 바란다고 한 적 없어요. 그런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요.”

문득 라멘집에서의 시현이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시현의 마지막 모습. 원망과 실망을 거쳐 마침내 염오로써 무기력해져버린 표정의 시현. 시현에게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때 희선의 폰이 울렸고, 희선은 아이를 포대기에 업어 매고 자기 몸집만 한 패딩을 그 위에 얹어 벤치 뒤 화단을 지나 자리를 떴다. 희선이 떠난 자리에 남은 그녀의 벨소리가 오랫동안 귓가에 웅웅거렸다. 어정쩡하게 부풀어 오른, 맨들한 조약돌 같은 달 하나가 밤하늘에 홀로 아득했다.

아침부터 울려대는 현관 벨 소리에 깨고 말았다. 맥주 세 캔을 연달아 들이키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터였다. 월패드에 비친 사람은 낯선 남자였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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