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아, 거기선 보여?
가무잡잡한 얼굴에 짙은 눈썹, 두꺼운 쌍꺼풀과 미간의 깊게 팬 주름 때문에 꽤 강한 인상이었다.
“누구세요?”
“경로당 사모님 좀 보러 왔습니다.”
화면을 통해 남자의 컬컬한 목소리가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엄마는 새벽 일찍 교외에서 밭을 가꾸는 이모네에 가고 없었다.
“누구신데요?”
희선의 남편임을 직감했지만, 모르는 척 남자에게 물었다.
“박희서이 남편입니다. 문 좀 열어보이소.”
남자가 문을 퉁퉁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보이소. 나쁜 사람 아입니다.”
희선은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하러 온 게 맞다면 희선도 같이 왔을 확률이 높다. 남자는 잠시도 고개를 가만히 있지 못했다. 카메라를 잠깐 쳐다봤다가도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얼른 돌려버렸고, 이내 가래를 긁는 기침까지 심하게 해댔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요. 돌아가 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남자에게 최대한 정중해야 했다. 어쨌든 지금 나는 혼자이고, 남자는 우리 집인 걸 확인했으니까.
“사모님요. 앞으로는 느므 집 일에는 신경 좀 꺼주이소. 예? 내 새끼는 내가 알아서 키울테니까. 씨발.”
나는 현관문의 걸쇠가 잘 잠겼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씨발. 개 같은 년. 문밖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후로도 남자는 욕설을 내뱉고 발을 쿵쿵거렸으며 문 앞에다 가래를 뱉기까지 했다. 5분이었을까, 10분이었을까. 어쩌면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더럽고 공포스러운 소리가 잦아들고서야 나는 월패드의 카메라를 켜서 문밖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한참 동안 마른침만 삼키며 월패드 카메라를 통해 문밖을 지켜보았다. 희선은 어디에 있을까. 온몸이 미친 듯이 가려워졌다.
경로당에는 희선의 노란 에코백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엿새째였다. 아쉬운 대로 에코백 안에 기저귀 몇 개와 분유 두 통을 채워 넣어두었지만 그날 이후, 희선은 경로당에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집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고 했다.
“경로당에 애 맡긴 후로 그 남자가 더 심해졌었다 하더라고. 내 딴에 돕는다고 도운 건데. 괜한 짓이었나 싶어.”
엄마는 나물 몇 가지와 찰밥을 식탁에 올리며 말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입맛이 돌 법도 했지만 엄마도 나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경찰차가 108동 앞에 와있던 걸 누가 봤대. 신고받고 왔겠지.”
희선과 아이는 시설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희선의 일은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된 것으로 하자고,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시원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학원은 별일 없어? 신경 쓸 게 많지?”
나는 젓가락으로 나물만 뒤적거렸다.
“너도 고생이 많다. 한 숟갈 얼른 떠. 식으면 맛없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도 식탁 위로 애꿎은 행주질만 해댔다. 창밖으로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보며 밥 한 숟갈을 퍼 넣었다. 목이 콱 막혀왔다.
눈발은 점점 거세지더니 급기야는 함박눈이 되어 쌓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원장은 제본사에 맡겨 두었던 아이들의 교재가 기상 악화로 배송이 지연될 거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나를 불러냈다. 눈길 운전은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왕복으로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학원에 제본 박스를 내려놓고 상담실에서 원장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길 건너편으로 대규모 어학원의 지역 캠퍼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원장은 최근 들어 부쩍 더 피곤해 보였다. 답이 없는 신세 한탄을 주고받다가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에서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한창이었다. 볏짚과 대나무, 수숫대로 세운 달집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윽고 거대한 불길이 20m가 넘는 달집을 서서히 죄어오자 사람들은 달집 주변에서 농악을 울리며 환성을 질러댔다.
“눈썹만치 얇았던 게 언제 저렇게 또 차올랐대. 저 달 좀 봐라. 여기선 눈 때문에 보이질 않는데.”
엄마는 방금 막 건조된 보송한 수건들을 개며 말했다.
“엄마, 여기 어딘가에도 보름달이 있겠지?”
“얘 좀 봐. 그럼 저기엔 있고, 여기엔 없니? 참 내.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엄마는 갠 수건을 집어 들며 옅게 웃었다. 어느새 달집태우기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둥근 보름달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고, 그건 마치 내 눈 바로 앞에 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희선 씨가 다시 경로당에 오면 또 봐 줄 거야?”
나는 눈앞의 보름달을 보며 물었다. 엄마는 뒷짐을 진 채로 거실 발코니 너머로 희뿌예진 밖을 내려다볼 뿐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면, 엄마는 또 결국 그렇게 말할 거란 걸 나는 안다. 당연한 소릴 하고 있다고 말이다.
큰 우산 하나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불빛 바로 아래에서 눈발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다행히 눈은 잦아들고 있었다.
그날 이후 오래도록 나는 시현에게 할 말을 썼다 지웠다. 말들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은 너무 무심했고, 어떤 날은 곧 쏟아질 듯 넘치게 느껴져서 덜어내고 덜어내다 결국 아무 말도 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져서 한동안은 일부러라도 그 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했다. 물론 버렸던 말들 중에서는 다시 저도 모르게 떠올라 환하고 따뜻해지는 것들도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우산 위로 눈발이 타닥거리며 튀어 올랐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떤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을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손끝이 아릴정도로 추웠지만 막상 손바닥 위로 내려앉자 눈은 시시하리만큼 금방 녹아 버렸다.
희선을 다시 본 것도 그 때였다. 검은색 롱패딩을 껴입은 데다 모자까지 둘러써서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게 희선임을 확신했다. 경로당을 지나 서둘러 아파트 후문 쪽으로 빠져나가는 그녀의 품에 노란 에코백이 보였다. 마치 큰 보름달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시현아, 거기선 보여? 보름달.
오래도록 생각한 말 치고는 시시하리만큼 싱거운 말이었다. 손바닥 위의 눈처럼 녹아버리기 전에 이 말을 시현에게 전하고 싶어졌다.
시현에게 보낸 메세지 앞의 숫자 ‘1’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나는 내리는 눈을 보며 달을 기다렸다.
경로당에는 박카스 한 상자가 더 놓여 있었다. (끝)
©사진: Simon Cullen-Haven on Unsplash